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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Jul 04. 2023

마음의 상처에는 무엇을 발라야 하나요?

백두대간 소백산을 걸으며...

  출근을 하지 않고 산으로 갔다. 며칠 전부터 회사일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치유가 필요했다. 마음에 난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해야 하나? 연고를 바를 수도 없고, 고약으로 고름을 짜낼 수도 없고, 그냥 가만두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어제는 술에도 취해 봤고, 소리도 질러 봤다. 후련하기는 한데 치유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고, 산으로 갔다. 어제 먹은 술로 인해 쓰린 속을 부여잡고 소백산을 향했다.


  소백산에 갈 때면 나는 매번 죽령에서 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연화봉에 오를 수 있고, 백두대간을 따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오르는 바람은 시원했다.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 준다. 죽령에서 두 시간을 걸어 연화봉에 도착했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연화봉이다. 작년에는 연화봉 오르기 직전에 아기 멧돼지 세 마리를 봤었다. 황금색의 귀여운 아기 멧돼지였다. 이른 새벽녘이라 나도 놀라고 아기 멧돼지도 놀라고, 서로 도망가기 바빴다. 앞으로 연화봉에 오를 때면 아기 멧돼지가 만들어준 추억이 입꼬리를 살짝 올라가게 만들 것이다. 연화봉에서 비로봉 쪽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아마 백두대간에서 가장 멋진 능선 중 하나일 것이다.


  잠시 땀을 식힌 후 비로봉으로 향한다. 한 시간 남짓 가야 하는 거리다.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백두대간의 정기와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야생화의 천국답게 아직도 수많은 야생화가 내가 더 예쁘다고 뽐내기 바쁘다. 산새들은 내기라도 하듯 자신의 소리가 더 아름답다고 신비에 가까운 소리를 연신 들려주고 있다. 비로봉으로 가는 능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을 절로 느낀다. 소백산은 ‘어머니의 산’이라고 했던가. 그냥 아무 말없이 가만히 다가가 안기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한 풀들은 작은 키로 소백산의 능선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너무나 완벽한 자연의 조화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다본다. 오르는 내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상처가 조금 아무는 듯하다.



  

  어제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을 보내야 했다. 잘 몰라서 행한 실수가 화근이 되어, 오해를 사게 되었다. 결국 오해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깊이 안은 채 떠나가 버렸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세세하게 챙겼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인데,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직원 한 명도 지켜주지 못하는 바보 같은 관리자가 되어버렸다. 한때는 사람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을 멀리 하게 되었다. 가까이하더라고 깊이 있게 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방법이 잘 못 되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내 마음에도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이제 비로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산을 가득 메운 초목이 가보지도 않은 알프스를 연상케 한다. 넓은 비로봉 정상에 아무도 없고, 다람쥐들만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겁 없는 다람쥐들이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열심히 구애 중이다. 과자 한 조각 던져줬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세 수십 마리가 모여들었다. 다 먹일 식량이 내게는 없어서 발길질로 돌려보냈다. 그래도 숨어서 혹여나 하고 날 계속 쳐다보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비로봉에 혼자 앉아 며칠간의 과정을 돌아보았다. 무엇이 잘못이고 문제였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달려왔던 게 화근이었을까. 상대를 배려하고 믿어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런 조직문화를 만든 것도 관리자인 나의 책임인 것을 반성했다. 어머니 품 같은 소백산에 기대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에 빨간약 바른 정도의 효과가 있는 듯했다. 완전한 치유는 시간이, 그리고 나의 성찰이 더 있은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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