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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Jul 08. 2023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인생의 소울푸드

난리가 났다. 난생처음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이다. 처음 맡아보는 고기 굽는 냄새에 누나와 난 휴지를 찾아서 뛰기 시작했다. 두루마리 휴지를 두 칸 때어, 콧구멍 한 개에 한 칸씩 코가 터지도록 쑤셔 넣었다. 내 나이 12살, 그렇게 삼겹살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그래서 고기라고 하면 응당 생선을 말하는 것이었다. 저녁 반찬은 항상 생선이었고, 엄마가 자주 끓여주는 미역국에는 양태나 도다리가 들어갔다. 된장찌개에는 개조개나 대합이 들어갔고, 모든 육수는 멸치로만 우려냈다. 육고기를 아예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름이면 한 번씩 백숙을 먹어보기도 했고, 잔치가 있을 때면 수육이나 편육을 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물에 빠진 고기였다.


우리 동네에는 아주 오래되고, 규모도 꽤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 따라 시장에 가곤 했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면 아지매들이 가판에서 생선 파느라 왁자지껄했다.

“지금 막 자갈치에 배 들어와 가꼬 진짜 싱싱타, 잔말 말고 가지 가라”

“고등어 눈 까리 보면 모리것나, 아침에 막 잡아 온기다”

“쪼매라도 남는 기 있어야 장사를 할 꺼 아이가, 한 마리 더 끼아 주면 남는 기 뭐가 있노”

이런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다 보면 과일 파는 리어카가 몇 대 보이고, 야채 파는 가판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렇게 조금 더 지나 올라가면 또다시 생선 파는 가판이 쫘악 펼쳐진다.

“아지매, 갈치 이거 시 마리 오 천 원에 가지 가이소, 오늘 마 떨이 하고 치아 뿔란다.”

“그거 밑에서 얼마 주고 샀는교, 아따 바가지 겁나 씨아 뿐는 갑네”

“요거 개조개 가지 가서 된장 찌지 무라, 싸게 주꾸마”

이렇게 시끌벅적한 생선 가판을 지나면, 그릇가게, 양말가게, 참기름가게, 방앗간, 건어물가게 등을 지나게 된다. 그러면 시장이 끝날 즈음에 만나는 가게가 있다. 정육점과 닭 집이다. 정육점은 달랑 하나이고, 그나마 닭 집은 두서너 집이 있다. 시장의 풍경이 이러하듯, 생선은 저렴했고 고기는 비쌌으며, 생선은 지천에 늘렸지만 고기는 구경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우리네 부산사람들의 식습관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듯 고기는 쉽게 접하거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쌀가게를 하고 있던 우리 집 옆에 떡 하니 정육점이 들어왔다. 빠알간 불빛아래 뻐얼건 고기가 길가에서 잘 보이게 진열이 되어 있었다. “장사는 동네인심으로 한다”며 무엇을 사든지 아는 사람에게 팔아주는 우리 엄마, 옆집에 정육점이 개업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드디어 우리 집도 말로만 듣던 삼겹살을 구워 먹게 되었다. 일단 삼겹살 굽는 냄새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맡아보는 돼지기름 냄새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와의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때쯤, 삼겹살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색깔이 완전히 바뀌고 나자, 아빠가 이야기했다.

“이제 무도된다”

나는 조심스레 젓가락을 가져가서 삼겹살 한 점을 집었다. 후~후~ 길게 두 번 바람을 불고 입안으로 넣었다. 삼겹살을 처음 맛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콧구멍을 꽉 막고 먹은 삼겹살 맛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그날 이후로도 부산에서 삼겹살을 먹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생선은 넘쳐났지만 고기는 구경하기 힘들었고, 횟집은 많았지만 삼겹살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삼겹살을 자주 접하게 된 것은 부산을 떠나 회사생활을 하면서였다. 저녁 겸 술 한잔 할 때도 삼겹살이었고, 회식자리도 단연 삼겹살이 인기가 제일 좋았다. 삼겹살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먹는 단골 메뉴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삼겹살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삼겹살을 먹을 때면 으레 집게와 가위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냉동삼겹살이냐 생삼겹살이냐 따라 굽는 방법이 틀려지고, 두께에 따라 뒤집는 타이밍이 달라진다. 가위로 어느 크기로 자르는 지도 맛을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는지도 아주 중요하다. 상추, 깻잎, 무쌈, 명이나물로 쌈을 싸 먹으면 좋고, 두세 개를 겹쳐서 싸 먹어도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늘, 양파, 땡초, 버섯을 함께 먹어도 좋고, 취향에 따라 당귀나 쑥갓, 미나리를 넣어 먹으면 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김치를 돼지기름에 볶아서 먹으면 맛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며, 여기에 잘 만들어진 쌈장과 잘 버무려진 파절이나 양파절임이 있다면 맛은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삼겹살과 소주는 궁합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소주가 없는 삼겹살은 상상할 수가 없다. 왼손에는 잘 싸인 삼겹살을, 오른손에는 소주 가득한 술잔을 들고, 소주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뒤 먹는 삼겹살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지 척’ 하는 최고의 맛일 것이다. 하루를 힘들게 버텨낸 고단한 육신과 스트레스에 찌들 대로 찌든 정신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이, 소주 한 잔에 먹는 삼겹살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퇴근 후 먹던 삼겹살과 소주 한 잔은 힘든 세상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 꼭 찾게 되는 소울푸드가 있다면 나에게는 ‘찰떡궁합’ 삼겹살과 소주가 으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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