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쓰게 되는 글
마구 써 내려가는 가벼운 나의 글
삶이 벅차오를 때
하얀 노트를 가슴에서 꺼낸다
차가운 달을 끌어안고
어두운 밤길을 지나
푸른 잔디밭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꽃들이 바람에 사정없이 내팽개칠 때
예쁜 석양이 기울 때
이유 없이 눈물 흘릴 때
세상의 각진 모서리를 둥글게 깎으며
하얀 노트에 적어 내려간다
음지와 양지
중심과 어긋남
삶과 죽음
죽었다가 깨어난 알갱이들을
허공에 번쩍 눈을 맞춘 다음
또 한 편의 글을 엮는다
창밖에 떨고 있는 싸늘함과
떨리듯이 앙상한 허기와 맞닿으면
습관처럼 하얀 노트에 물들인다
때로는
달빛에 그 별이
왜 기웃거리는지 궁금해질 때
별빛이 사랑스럽게 속삭일 때
괜히 삶의 눈물이 내 발등을 적실 때
건조하게 반복적으로
써 내려가는 씀의 연속
시를 가르치던
스승님이 하시던 말
시에서 인간적인 피냄새가 나야 한다고
피냄새가 종이에 젖고
욕조가 젖고 대지가 젖어야 한다고
천리길을 더듬어 희망이 찢어지고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을 묘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시던 스승님의 언어들
그 묵직한 주문은 어렴풋하게
기억을 할 뿐이다
이도 저도 아닌 나의 글
흔적 없이 날아가는 가벼움만 지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