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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Sep 20. 2023

진정한 마스터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사람

마스터(2012)

    살면서 삶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해줄 “스승”을 만나고 싶은 적이 있는가? 스타워즈 제다이에게 요다가, 드래곤볼 손오공에게 무천도사가, 취권 황비홍에게 (비록 알코올 중독자에다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무술 고수인 소화자가 있었듯, 길 잃은 영혼인 내게 해답을 제시해 줄 현명한 스승 말이다. 만나기면 하면 내 특별함을 알아보고, 재능을 끌어내 주고, 진리를 알려주고, 행복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줄 스승이 어딘가 있고, 언젠가 만나게 되리라는 판타지와 같은 믿음이 내게도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해군 참전 용사 프레디 퀠은 그 누구보다 현명한 스승이 필요해 보이는 인물이다. 참전 후 명백한 PTSD와 성도착증 증상을 보임에도 그는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생활도 잠시, 욱하는 성질과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행실로 인해 곧 직장을 잃고, 술과 약에 쩐 생활을 이어간다. 언행으로 보자면 프레디는 문제가 있다. 한 문장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일관적이고 흐트러진 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해 보이는 행동,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불같이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 도움이 절실해 보이면서도, 구제 불능으로 보인다.

    그런 프레디가 우연히 랭커스터를 만난다. 랭커스터는 작가, 의사, 핵물리학자, 철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주변인은 그를 “마스터”라고 부른다. 랭커스터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학자 정도로 보이지만, 그에게는 뭔가 신비한 에너지 같은 것이 있다. 주변을 압도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우주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듯한 자신감, 다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무엇보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프레디가 전생에 자신과 함께했던 “특별한” 존재이며, 동시에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또 프레디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해줌은 물론, 자신이 고안해 낸 방법으로 프레디를 “치료”하고자 한다.

    프레디는 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치료 과정에서 프레디는 남에게는 터놓지 못한 아픔과 기억을 내놓는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언행도 나아지고 폭력성도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프레디가 스스로를 치료하고 새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관객 모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극장을 나섰을 것이다. 불량배가 갱생해서 바른길로 나아가는 따뜻한 우화를 그 누가 싫어할까?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감사하게도) 이런 클리셰로 영화를 마무리 하지 않는다.

    대신, 랭커스터가 얼마나 평범한 인간임에 불과한지를 보여준다. 그를 중심으로 한 단체 “더 커즈”의 부조리와 불완전성, 주변인들이 랭커스터에 대해 가진 의심, 랭커스터 스스로가 가진 의심도 보여준다. 마스터도 완벽하지 않다. 아니, “마스터”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일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가진 강한 반종교적 성향과 인간 자유 의지와 선택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옹호는 랭커스터와 프레디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불현듯 랭커스터의 곁을 떠난 프레디는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를 다시 찾아간다. 랭커스터의 열렬한 신봉자인 부인은 프레디가 아직 “치료할 준비가 아직 안 돼”고, 그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포기한다. (물론 프레디는 이에 콧방귀 수준으로 응답한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다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바람과 같은 프레디, 원하는 곳 어디로든 가게. 대지가 없는 무한한 바다와 같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행운을 비네. 그리고 마스터가 없이 사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 알려주겠나?”


    영화 속에서 마스터로 불리는 것은 랭커스터이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암시하는 진정한 마스터는 프레디다. 그러나 프레디는 인간적으로 존경할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불량배에 삼류 인생이다. 영화 마지막까지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만난 여성과 원나잇 스탠드를 하며 잘나 보이기 위해 랭커스터에게 배운 기술을 써먹는 추접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프레디는 다른 존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인생을 살아간다. 그 선택이 무모하고, 잘못된 것이어서 실패한 하류 인생일진대, 랭커스터와 같은 종류의 영적 스승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고스란히 결과를 받아내고 살아내는 프레디가 진정한 마스터이다.

    이런 면에서 감독의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졌다. 종교와 악인에 가깝게 느껴지는 비호감 주인공, 둘 중에서 감독은 후자의 편을 든다. 신, 영적 스승, 종교 같은 것에 의지해서 살 바에는 차라리 악인으로 살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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