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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Dec 11. 2023

세계는 넓고, 지구는 둥글다

지구 반대편의 초상(2011)

    살다 보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세계 뉴스를 듣고, 해외여행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여행 중인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를 팔로우하고, 지구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국가 간 거리가 좁아졌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글로벌한 세계”란 추상적인 관념에 머무르고 만다. 집, 일터, 휴일에 즐기는 잠깐의 일탈… 모든 것을 다 포함하더라도 내 세계의 반경은 얼마나 될까? 셀 수 없이 많은 일상의 순간 속에 가끔 그런 생각이 떠오른 적 있는가? “지구 반대편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런 순간에 무중력 상태로 떠서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면 어떨까? <지구 반대편의 초상>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영화가 가진 몰입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크고 둥근지 느껴지게 한다. 드론 카메라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게 하고,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이동시키면 그 끝에 대척점에 있는 도시가 90도나 180도로 회전한 상태로 나타나게 한다거나, 대척점 문화권의 전통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 오묘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는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마치 하늘에서 커다란 손 하나가 나타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집어 우주 끝까지 들어 올린 후, “여기, 네가 살고 있는 지구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모여 있는지 한번 봐!”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이처럼 단수 세계에서 복수 세계로 관점을 넓히는 것에 멈추지 않고,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  관점으로 한 발 더 나간다.  엔트레 리오(아르헨티나)-상하이(중국), 파타고니아(칠레)-바이칼 호수(러시아), 하와이(미국)-보츠와나 순으로 각 대척점에 있는 두 지역을 소개하고 각 지역에 있는 주민들의 삶을 조망하는데, 캐슬포인트(뉴질랜드)의 대척점에 있는 미라플로레스(스페인)에서 소개하는 거주민은 다름 아닌 개미, 나비, 애벌레와 같은 곤충들이다. 동일한 방법과 중요도로 미라플로레스에 살고 있는 미물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관객이 자연스럽게 자연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우주 끝까지 관객을 들어 올린 손이 이젠 “여기, 네가 살고 있는 지구에 인간 외에도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고 있는지 한번 봐!”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에서 “이웃”으로, 더 나아가 “자연”으로 관점을 넓혀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른 환경 영화와는 다르다. 환경 영화는 보통 환경 파괴로 인한 폐해를 보여주고 이대로 가면 인류가 생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경고로 마무리된다. 이런 종류의 환경 영화를 본 후에는 보통 무력감과 공포와 같은 감정으로 점철된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초상>에서는, 인간이든 곤충 같은 미물이든, 같은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동질감에 호소하여 환경 문제를 재고하도록 한다. 그래서 무력감보다는 크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 일반적인 환경 영화가 부정 강화의 방식이라면, 이 영화는 긍정 강화의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시간과 삶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일 뿐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인생 대부분은 “드라마”보다 “지루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루한 부분”을 잘라내서 “드라마”로 만든 것이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는 대부분의 영화라면, 이 영화는 인생이라는 원석 그대로를 가져다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맞다. 사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지루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거나, 수영하거나, 가끔 지나가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출근하거나, 밭일하거나, 밥을 짓거나… 영화는 이런 매우 일상적인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 없는 그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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