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Jan 09. 2024

비프: 성난 사람들(2023)

<버닝>, <기생충>, <드라이브 마이 카>의 꼴라주

이 작품을 보고 <기생충>, <버닝>,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생각났다. 이 작품을 쓰고, 기획하고, 감독한 이성진 작가는 아마도 이 세 작품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버닝>의 캐릭터

먼저 가장 눈에 띈 건 배우 스티븐 연이 맡은 역할 대니다. 부스스한 까까 머리에 후즐근한 옷차림, 표출되지 못하고 쌓이고 쌓이다 한꺼번에 폭발하는 분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배우 유아인이 맡은 종수와 겹쳐졌다. 재밌는 건 <버닝>에도 스티븐 연이 출연한다는 거다. <버닝>에서 스티븐 연은 기름이 좔좔 흐르는(?), 미스테리한 부자집 도련님(이면서 잠재적 시리얼 킬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의 역할, 즉 미국판 종수 역할을 맡았다. 아마 연기하면서 자신이 출연했던 <버닝>의 종수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비프: 성난 사람들>의 대니와 <버닝>의 종수

<기생충>의 집

그리고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떠올랐다. 에이미가 대변하는 상류층과 대니가 대변하는 하류층은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그들이 사는 집을 통해서 드러난다. 에이미가 가족이 사는 모던한 저택은 <기생충>의 박사장 가족의 저택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미국 대니는 미국판 반지하식 집이라고 해도 무방한 모텔/콘도에서 산다.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두 세계를 대비시킨 것이 <기생충>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에이미와 박사장의 집 모두 모던 스타일로, 인테리어마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더해  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올라가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그것이 정점에 달했을 때 폭발하며 볼링핀이 넘어지듯 한꺼번에 무너지는 내레이션도 <기생충>과 비슷하다. 미장센으로나, 구조로나, 주제로나 <기생충>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비프: 성난 사람들>의 에이미 집과 <기생충>의 박사장 가족 집

<드라이브 마이 카>의 치유 모티브

마지막으로 두 주인공, 대니와 에이미가 극적으로 화해하는 과정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와 미사키가 떠올랐다. 에이미와 대니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성격도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비슷하다. 둘 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한국인의 특징인 화병을 미드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로드 레이지로 맺어진 악연으로 시작한 이들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격으로, 제 삶에서 쌓인 불만을 엄한 상대인 서로에게 마구 터뜨린다. 작은 불씨는 점점 커지고 번져 서로를 완전히 삼켜버린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대자연 속에서 발가벗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야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아니 어쩌면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치유의 경험을 한다. 그렇게 분노는 사랑으로 치환된다. 이 과정이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비프: 성난 사람들>의 대니와 에이미,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와 미사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최근 동아시아권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 세 개에 영향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프: 성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좋은 작품의 요소들을 미국 고유의 배경과 문화 속에서 동아시아의 주옥같은 작품을 소화해 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