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희 Jul 18. 2023

남편의 화원

  남편은 새로 부임한 적벽돌 예배당 둘레에 정면을 제외하고 빙 둘러 담쟁이덩굴을 심었습니다. 묘목을 한꺼번에 심는 것도 아니고, 교우 집 담장이나 들, 산 등지에서 보일 때마다 두 세 뿌리씩 가져와 심어가곤 했습니다. 뿌리도 별로 없는 가느다란 줄기가 과연 살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죽으면 또다시 심고, 들며 나며 물을 주어가며 지성껏 보살폈습니다. 생명력이 강해서인지 정성이 지극했던지 담쟁이덩굴은 안간힘을 다해 예배당 벽을 타고 팔을 위로 뻗쳐서 드디어 지붕까지 다다랐습니다.


  봄에는 죔죔 하던 손을 쫙 편 아기의 손바닥처럼 잎을 냈고, 여름엔 초록으로 빛나는 것이 마치 플라밍고 춤을 추는 스페인 여인의 드레스에 달린 스트라이프 같았습니다. 가을엔 벽돌의 붉은빛을 이고 적갈색·황갈색 단풍으로 물들어서 계절의 정취를 짙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교우는 물론이고 방문객들도 즐겁게 셔터를 누르는, 썩 괜찮은 포토존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적벽돌 벽 위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담쟁이덩굴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출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그 담쟁이 벽 밑에 얼마간 흙을 넣어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다홍색, 하얀색의 영산홍으로 울타리를 하고, 그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흰 나리꽃. 백합(百合)을 심었습니다. 그는 예배당 뜰에 심는 것들은 성경에 나오는 것들로 심고 싶어 했습니다.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남편은 영락없는 성직자, 메소디스트였습니다. 지갑을 털어 알뿌리를 사 와서 간격을 두고 빈틈없이 심었습니다만, 더러는 나지 않은 틈도 있었습니다. 이 백합꽃이 활짝 필 때에 예배당은 향기롭고, 밝고, 고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면 안개에 갇혔던 백합화 향기는 온몸에 더욱 짙게 배여서 명품 향수처럼 종일을 은밀히 스멀거렸습니다.


  코흘리개 어린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들로 자랐습니다. 교우도 늘었습니다. 예배, 교육, 교제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 교육관이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마을의 성도들이 오래전 손수 지어 올려 무허가 상태였던 적벽돌 예배당을 허가 예배당으로 등록을 하고, 몇십 년 멀리 내다보며 땅을 사고 재정비해서 근처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 예배당을 신축했습니다. 신축 예배당을 봉헌하기 위해 남편은 더 할 수 없기까지 헌신했습니다. 신축된 예배당은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소문이 나서 방문객의 발걸음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시간만 나면 작은 수레에 잡초, 돌, 유리조각, 쇳조각, 나뭇가지, 쓰레기 등을 주워 담았습니다. 덕분에 예배당 안팎은 늘 깔끔했습니다. 남편은 조경석 바위틈에. 잔디밭 가장자리에. 화단의 크고 작은 화목 사이사이에 노랑, 하양 수선화를 심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발들여 놓을 틈이 없다 할 정도로 수선화가 만발했습니다. 꽃동산. 수선화 만발한 동산이 되었습니다. 어느샌가 교우들이 사는 인근 마을들에도 수선화가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수선화 피는 마을엔 예수님의 이야기도 내음 따라 퍼져 나갔습니다.


  남편은 예배당 실내 장식에 썼던 수국 화분에 꽃이 져서 물리면 화단에 옮겨 심고 관리를 했습니다. 청수국이 여름철에 시원하게 돋보여 화분을 사다가 장식하곤 했었는데, 화단에 옮겨 심으면 알칼리성 성분에 수국 꽃이 분홍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배당 화단을 수놓은 분홍빛 수국의 기품은 훌륭했습니다. 가을엔 계단 장식용 국화를 화단으로 옮겨서 가꾸기를 거듭해, 꿀벌들 잉잉대는 국향 가득한 풍요로운 정원이 되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은 자연산 국화차는 덤이었습니다. 서리가 오고 눈이 내리기까지 예배당의 화단에는 설국, 동백꽃, 매화 등의 꽃이 연이어 피었습니다.


  남편은 교우네서 기증한 대봉감나무 이십여 주와 단감나무, 무화과, 살구, 보리수, 앵두나무 등의 과수를 신축 예배당 바깥 경계에 심었습니다. 손수 쇠똥 거름을 얻어다 나무마다 거름을 주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식목일 즈음에 그는 5일장에 가서 왕대추나무 세 그루를 사다 심었는가 봅니다. 대봉감이 너무 많이 열려 가지가 휘어질 때 가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만류하는 아내조차 모르게 심은 대추나무엔 대추가 주렁주렁 익어갔습니다. 어느덧 숲이 된 정원수 사이를 오가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습니다. 창조주의 선물은 순전했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뇌경색) 조기 은퇴를 생각하던 어느 날, 중직회의에서는 적벽돌 예배당의 담쟁이덩굴을 치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물에 지장을 준다고, ‘결자해지’라고 했습니다. 심어 놓은 남편에게 처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남편은 심던 때와 건강상태가 달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건물 높이 올라가기 어려웠지만 지붕에까지 벽을 타고 뻗어 오른 담쟁이덩굴을 며칠에 걸려 다 뜯어내어 불살랐습니다. 예배당 경계에 심은 감나무 등 과수도 베어낸다고 했습니다. 뿌리가 벋어서 신축 예배당 밑을 파고들어, 건물에 무익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남편의 화원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두 해 남짓하여 남편은 먼저 떠났습니다. 영원한 화원에 안식하기 위해 서둘러 가셨습니다. 스물여섯 해 동안 가꾸던 남편의 화원에서 남겨진 교우들, 가족들은 참 소중한 많은 것들을 누렸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어딘가에서 각자의 꽃밭을 가꿀 그들을 그려 봅니다. 아름다운 미소, 순결한 희생과 향기, 열매, 나눔의 씨앗들이 꽃피는 화단을.


  <동무생각>을 입 속으로 부르며, 남편이 좋아했던 백합을 화병에 담습니다. CC로 만났던. 때론 친구 같던 남편과 글 속에서라도 청라언덕의 백합화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내가 네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작가의 이전글 라벤더 뻬쓰띠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