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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pr 20. 2023

하늘과 호수, 나무와 길, 예술이 공존하는 가을

- 과전 서울대공원의 둘레길

한국의 가을은 짧지만 매력적이다. 이때를 놓칠 수 없어 과천 서울대공원에 갔다. 동물원 둘레길을 걸으며 울창한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에 몸이 상쾌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다다익선, 모네와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하며 마음도 넉넉해졌다. 군데군데 물든 단풍과 가을꽃, 호수에 비친 하늘의 구름과 산 그림자를 보며 가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다정한 친구 같은 길

동물원 둘레길은 동물원 입구에서 북문까지 이어지는 총 4.5km의 외곽순환길이다. 동물원 관리 차량이 다니는 길이라 비 오는 날도 우산 쓰고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봄에는 왕벚나무, 여름엔 느티나무가 우거져있으며, 특히 가을에 가장 인기가 좋은 이 길은 서울시가 아름다운 단풍길로 선정한 곳이라고 한다. 둘레길 시작점인 스카이리프트 옆에 카페 GOGOS가 있다. 마블 어벤져스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어 특이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GOGOS에서 산 커피를 손에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카페 옆 계단을 오르자마자 앞에서 걷고 있는 팔십 대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그들의 굽어진 뒷모습에 애잔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뒤를 따라가며 허락받지 않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1984년 개원 후 38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나무가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서서 호위해주는 느낌이었다. 그늘이 넓어 내리쬐는 뙤약볕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단풍이 아직 완전히 물들지 않았는데, 길바닥엔 벌써 낙엽이 꽤 나뒹굴었다. 생명을 다하고 떨어지는 것에게 애정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곳곳의 쉼터엔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있었다. 즐겁게 웃고 담소도 나누며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 삼삼오오 친구끼리, 부부가, 또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채 혼자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동물원 둘레길은 누구나 쉽고 편히 찾을 수 있는 다정한 이웃이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친구 같은 존재였다.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과 같은 공간

동물원 둘레길이 끝나는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2023년 2월 26일까지 <다다익선:즐거운 협연>과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두 전시회가 이어진다. 둘 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무료일 때가 많아서 걷다가 쉽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무료 티켓을 받아 들고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 ‘라운지 디’에 들렀다. 이탈리아 식당으로, 음식 맛이 좋은 편이며,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메뉴와 음료도 있어 미술관 관람 중에 잠시 쉬기 좋은 공간이다. 공휴일이라 사람이 좀 많았지만, 조금 기다리니 야외 테이블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다다익선:즐거운 협연>은 오랫동안 꺼져 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복원하여 다시 켜는 것을 기념하는 전시다. <다다익선>의 제작 배경, 작품 세계와 관련된 자료,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생소했던 비디오 아트의 세계와 백남준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2시에 다시 켜진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다양한 색채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평범한 사람이 창조의 세계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작품을 계획하고 만드는 모든 과정에 열정과 집중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껴졌다.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에서는 샤갈, 달리, 피사로, 모네, 고갱, 르누아르, 미로, 피카소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파리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혹은 동료로 만나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 주며 20세기 서양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간 거장들이라고 한다. 이 거장들의 작품을 한 사람이 소장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사람, 새, 별

이 있는 밤의 풍경을 추상화한 미로의 <회화>였다. 단순한 선과 색감이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었다. 샤갈의 <결혼 꽃다발> 앞에서도 한참을 머물렀다. 작품을 보는 전문적인 안목이 없어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임이 분명하다.


평온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호숫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야외 조각장에서 오후의 하늘과 구름을 보며 감성에 젖었다. 주차장을 향해 걷다 보니 호숫가 둘레길이 눈에 띄었다. 호수 주변의 넓은 잔디밭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누워 있는 사람, 책을 보고 있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꼬마들, 그냥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구름 낀 하늘과 그 사이로 보이는 오후의 햇빛, 일렬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와 검은 산이 호수에 드리워져 있었다.

10월의 어느 토요일에 만난 서울대공원은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구름이 멋있는 가을 하늘과 잔잔한 호수,수령을 자랑하는 나무와 평온한 길, 일상적인 삶과 창조적 예술까지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이웃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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