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나의 첫 차는 카셰어링이었다. 앞다투어 서비스를 시작하던 2013년. 필요한 시간만큼만 저렴하게 빌리는 제도가 매력적이었다. 월급의 일부를 저축하기에도 빠듯했던 서른 즈음. 친구들을 태우고 미사리에 초계국수를 먹으러 갔다. 첫 운전이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목적지만 바라보는 운전. 당연히 차량 상태는 안중에 없었다. 모든 자동차는 쓰레기와 얼룩이 있는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아내의 차를 셰어 하게 되었다. 가끔 아내가 ‘내부 세차’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나에게 세차는 주유하고 받는 할인권 속 단어였다. 추가 서비스 정도로 여기고 넘겼다. 아기가 태어났다. 카셰어링의 문구처럼 나의 ‘Next driving style’이 시작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안전하게 아내와 아기를 이동시켜야 하는 날. 산부인과 퇴원일. 자동차에 설치한 카시트에 신생아가 처음 타는 순간이었다. 차 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양가 부모님도 함께 오셔서 두 사람을 맞았다. 코로나19 속의 출산이었다. 부모님은 마스크 안으로 활짝 웃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긴장된 입꼬리를 마스크 안에 숨겼다. 안타깝게도 나는 마음의 준비만 했다. 카시트를 고정만 시켰지, 아기를 태우는 법을 숙지하지 못했다. 안전벨트처럼 버클만 끼우면 되는 일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엉거주춤 앉은 아기와 벨트 사이에 공간이 꽤 남았다. 불안해 보이는 아기. 더 불안한 아내의 눈빛. 이 상황을 내가 만든 것 같았다. 두 사람에게 미안했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상하게 분노가 먼저 나왔다. 얼굴이 굳었다. 손길이 거칠어졌다. 과속방지턱을 그냥 넘어갔다. 머리가 천정에 닿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원망이 섞인 아내의 눈길이 느껴졌다. 산후조리원으로 향하는 길. 우리 가족의 마음 조리도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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