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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한 그릇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예상하지 못했다. 갑상선을 제거만 하면 될 거라고 믿었던 그녀였다. 재발방지를 위한 치료라고 해도 마음이 무너졌다. 입원하는 날. 휴가를 내고 부모님을 모셨다. 아버지의 표정은 돌처럼 딱딱했다. 치료 특성상, 보호자가 함께할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했다. 병원 인근 상가의 지하로 향했다. 간판에 적혀있는 30년 전통. 여름 한정 메뉴 민어탕. 어머니가 여름이면 끓였다는 음식. 해물을 좋아하는 아버지. 사장님이 볼멘소리를 할 정도의 저렴한 가격. 식사에 곁들이는 소주 한 잔. 모두 우연이었다.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뜨끈한 국물과 함께 풀어진다. 불안은 소주잔과 함께 꺾인다.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기도 했다. 농담조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오늘 며느리 생일인데, 아버지가 생일상을 받았네?”


너털웃음을 보이신다. 그 표정이 손주보다 더 해맑았다. 밥 한 끼만으로 하루를 생일로 만드는 아버지가 부러웠다. 민어 한 마리로 행복할 수 있다니. 그 비결이 궁금했다.




엄마가 이상이 없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하네요.
우리 가족 걱정, 기도, 응원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문자를 받자마자 떠오른 곳은 일식당이었다. 지난주 식사 중에 어머니도 함께 오면 좋겠다는 말을 연발한 아버지였다. 한여름에 보양식이 필요한 어머니였다. 홀가분한 표정의 두 분을 만났다. 민어살 한 점에 축하를 전했다. 개운한 무 한 조각에 건강을 전했다. 한 그릇을 다 비우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했다. 반주를 곁들인 아버지는 불콰해진 얼굴로 그 순간을 담담히 회상하셨다.




지현아. 몇 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니? 그때는 아빠가 아버지에게 참 서운했다. 집이 경매에 팔리게 되었었지. 조금이나마 도와달라고 아버지를 찾아갔었다. 매년 설과 추석. 우리가 용돈으로 조금씩 드렸던 돈을 메모해 놓으셨더구나. 그리고 그 금액을 합친 돈만 건네며 말씀하셨다.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두 분의 사랑이 이 정도인 것처럼 여겨지더라. 참 서러웠다. 20년도 더 지난 즈음에,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1년 365일 중에 280일은 찾아뵌 것 같다. 그제야, 누워계신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태어나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갔었던 트라우마. 본가로 돌아왔을 때, 너희 집은 여기가 아니라고 놀리는 형제들을 향한 분노. 힘들 때 도와주시지 않았던 서운함. 그럼에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함. 신기하게도, 빚이 조금씩 줄어들더라. 가족과의 응어리가 풀리니까, 일이 더 잘 되더라. 통장에 잔고가 늘면서 매주 외출과 외식을 시켜드렸다. 고생하시는 요양보호사님의 간식거리를 챙겨드렸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있었다. 임종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즈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싶더라. 이상하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왔다.


“아버지. 부족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 고맙다. 미안하다.”

“아버지. 가족끼리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다. 사랑합니다.”


지현아. 가족은 그런 거야. 가족은 하나야.




단순히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 게 가족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잘못하고, 실수하더라도 존재 자체로 사랑인 것이 가족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그것만으로 서로에게 자랑인 것이 가족이었다.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을 보면서 그가 행복한 비결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가족으로 충분하니까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나도 일상에서 행복을 다시 찾고 싶었다.


지난밤 잠든 흔적이 남은 침대를 정리한다. 돌돌이로 털과 먼지를 제거한 후에 눌린 베개를 팡! 팡! 두드린다. 구겨진 이불을 높이 올렸다 빠르게 아래로 내린다. 두어 번 반복해서 자리 잡힌 이불의 윗부분을 잡는다. 베개 아랫부분에 길이를 맞추고, 남은 부분은 각을 잡아 내려 접는다. 이불에 남은 잔주름까지 펴내며, 내 몸에 남은 피곤과 무기력도 떨쳐낸다. 출근하기 전에 뭔가를 이루어낸 기분이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것이 분명하다.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족이 있으니까. 오늘따라 현관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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