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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을 대고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코가 약한 편이다. 코를 파는 습관까지 있었다. 코피가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다. 치료와 관리를 소홀히 했다. 축농증으로 번졌다. 급기야, 코 안에 혹이 생겼다. 잠이 들었다 수차례 일어나는 밤이 허다했다. 밥을 먹다가 쉬어야만 했다. 호흡과 식사를 한꺼번에 하는 입이 버거웠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꽉 막힌 기분이었다. 하루 정도 지난 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지혈을 돕기 위한 스펀지를 빼냈다. 하나. 둘. 셋. 그 이상은 세기가 어려웠다. 어지러웠다. 휘청하는 나를 어머니의 손이 잡았다. 어렸을 때 피가 멎지 않는 코에도. 축농증으로 잠들기 어려워하는 나에게도. 아들의 건강을 비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손이 있었다. 내 건강을 찾는데 수술만큼 중요한 것은 그녀의 손길이었다.




어머니는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녀는 40대에 암을 겪었다. 병원이 무서워졌다. 아프면 자연치유에 맡겼다. 자녀의 혼인. 손주 두 명의 릴레이 육아. 제거한 자궁으로부터 오는 피로감. 결국,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받은 정기 건강검진에서 아우성치는 몸을 마주했다. 갑상선과 임파선, 폐와 유방, 그리고 방광. 의심 또는 확신으로 보이는 종양들에 무너졌다. 식욕이 떨어졌다. 배출은 괴로웠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배의 통증으로 일어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누워있는 어머니와 코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이가 겹쳐 보였다. 나를 살렸던 손길처럼, 나도 그녀의 건강을 찾고 싶었다. 몸져누운 어머니를 바라본다. 나의 손으로 뭐라도 해야 했다.




매일 오전 9시가 되면 손이 바빴다. 업무를 개시하는 시간이자, 병원 예약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통화목록에 여러 번 찍혀 있는 번호를 누른다. 보이는 ARS로 넘어가는 주소창을 터치한다. 진료 예약 변경. 등록번호. 수화기로 들려오는 예약과 직원이 묻기 전에 본인확인을 먼저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앞선 진료시간은 없었다. 작년 가을에 발견된 갑상선의 종양을 제거해야 했다. 의료파업이 마무리되는 시점. 대학병원 교수들은 퇴직을 하고 개원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예약과 수술은 뒤로 밀렸다. 조직검사는 3개월 뒤. 수술은 9개월 뒤. 다급한 손으로 하루에 두 번씩 예약 변경을 요청했다. 3개월 뒤는 2개월 뒤로. 2개월 뒤는 3주 뒤로. 하루에 두 번씩 통화기록이 쌓이는 만큼, 조금씩 조직검사일이 앞당겨졌다.




익숙한 집. 익숙한 침대. 어머니의 모습만 낯설다. 손주의 기운을 전하고자 본가를 찾았다. 어머니에게 괜찮길 바라는 바람을 담아 묻는다. 그녀는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아지는 주문처럼 대답한다.


“괜찮아?”

“괜찮아.”


통증이 감도는 배에 가만히 내 손을 얹는다. 새삼, 따뜻한 손이 고마워진다. 겨울이 되면, 언 손이 녹는다며 여자 친구에게 칭찬받은 손이다. 그 손길이 어머니에게 향한 적은 몇 번이나 되는가.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엄마 손은 약손’을 ‘아들 손은 약손’으로 바꿔 부른다. 장난기 어린 노래와 진심이 담긴 손길이 몇 번 반복된다. 그제야, 피가 멎지 않는 어린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 사랑을 내 손에 이어 본다. 조금씩 통증이 잦아든다.




나는 어린이집 하원 담당이다. 일찍 퇴근하려면, 이른 출근이 불가피하다. 회사에 가기 전에 보는 아이의 얼굴은 대부분 잠든 표정이다. 아이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댄다. 어머니가 나의 코를 쓰다듬었던 손길을 기억한다. 아픈 어머니의 배를 따뜻하게 한 사랑을 담는다. 신에게 빈다. 온몸 구석구석 보호해 주길. 지금의 해맑음을 기억하길.


13 손에 손을 대고 02.jpg 24년 11월의 봄. 출근 전에 새근거리는 숨에서 생명을 느낀 아침. 어머니의 사랑 위에 내 사랑을 얹는다. 아이가 건강하길 신에게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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