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 그게 뭐죠?
예전에 해외브랜드 화장품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진 나는 서른여덟 살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취업시장이라는
쉽지 않은 생태계에 몸을 내 던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는
나와는 맞지 않은 형태의 사업을
했었고 매출은 났지만 내 주머니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전혀 아니었고
식솔들만 재미 보는? 뭐 그런 형태였다.
아이가 태어나는 마당에 더 이상
그런 형식의 일을 할 수 없어 접었고,
한 달 보름 동안 100여 군데 정도
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두 번,
직접 이력서를 넣고 지원한 곳에서 두 번,
이렇게 총 네 번의 면접을 보았는데
그중의 한 회사에서 대표면접을 다시
제안받아 대표면접 치르고 영어면접 보고,
영어 시험까지 통과하여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사실, 그쪽 방면으로는 일 해 본적도
없는데 나이가 많아서 그냥 과장 자리를
주신 것 같았다.
지금껏 사회에 나와서 맡은 직위는
내가 내 브랜드를 냈으니 대표였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매번 브랜드의
핵심적인 일들을 다루었기에
그 브랜드의 대표와 대등하게 의사를
타진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의 직책을 맡아 살아왔다.
그렇게 일에서 만큼은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방식의 일을 해 오다가
'과장'이라는 중간에 껴 있는 애매한
직책을 달고 회사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매번 그렇듯 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또,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고 더 잘하려고
분석했다. 나는 항상 어떤 회사에 몸
담고 있던지 간에,
'이건 내 회사야, 내 모든 건 회사 것이고
회사에 있는 모든 것도 내 거야.'라는
마인드로 살아왔고 그 공동체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뭐든 솔선수범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궂은 일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내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그렇게 움직인다.
'난 그냥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대표의 눈에
들었는지 많은 사원이 보는 곳에서 대놓고
칭찬을 받았고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었는데
그 대표는 몇몇 사원을 지목하며
나와 비교를 하며 공개적으로
질타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화근이 되었다.
나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 몇몇이 무리를
이루더니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자리를 네 번이나 옮기게
만들어 주었고 직무를 세 번이나
바꿔 주었으며 해 본 적도 없는 일을
퇴근시간에 던져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일을 못하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힘들었다.
내가 일을 하고 매출이 나니까 대표는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럼 칭찬을 받고
그럼 또 비교가 되고, 날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형태로 돌아가다 보니
내 윗선은 그게 못마땅했고 나를 아예
일에서 배제를 시켰다.
'난 할 일이 없었다'
하루종일 일터넷 기사보고 전화나
몇 통 받고 그게 일의' 전부'였다.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회사의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이 회사가 잘 되길 바라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당장이라도 대표에게 달려가
이 회사 망하게 하려면 저런 사람들
계속 데리고 있으세요.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회사라는 게
뭐, 또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안 되는 조직이기에 나는 그냥 나대로
회사에서 카톡이나 하고
웹서핑이나 하며 보내고 있었다.
와, 그냥 이렇게 놀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월급을 따박따박 주니까
사람들이 이 맛에 회사를 다니나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이게 매우 힘들었다.
일을 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막으니
그게 힘들었지만, 태어날 아기를 위해
숨죽여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앞자리에 있는 사회생활
2년 차에 그 회사는 8개월 차의 스물여섯
여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 회사에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친구들은 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고
난 그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던
내 앞자리의 그녀를 활용하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회의에서 내가 낸 아이디어와
의견을 제시하며 내 아바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
.
.
매출이 작았던 곳이지만
무려!! 1000% 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그 대표는 또 호들갑 떨면서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친구에게 칭찬 세례와,
더불어 옆에 있는 같은 직급의 어린 친구에게는
핀잔을 주며 이렇게 좀 해보라는 식의
상처를 입혔다.
그렇게 내 아바타 역할을 했던 친구는
대표의 칭찬을 독차지하게 되었지만
무고한 희생양이 생겨났고,
또! 그 무리들은 이 친구를 타겟으로 삼아
괴롭히기 시작했다.
'회사가 아주 자~알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얼마가지 않아
희생양이었던 친구는 퇴사를 결정했고
마음이 편치 않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대로 비교가 되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입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의 마음이라
퇴사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 회유로 인해서 남긴 남았지만
고작 한 달의 시간을 뒤로 미룬
결론적 퇴사였다.
내 아바타 역할을 해 주었던 친구는
어둠의 무리로부터 나와 같은 양식장안에
가두어지게 되었고 원래대로 최소한의
권한만을 부여받은 채 묵묵히 일을 해 나갔다.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니까
아무 성과도 없고 매출도 없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표가 어느 날 내 앞으로
찾아와,
"아니, 어떻게 된 거야 O과장.
처음에 뭔가 하는가 싶더니, 아주 조용해
안 되겠어. 백화점 행사하는데 나가서
우리 물건이나 좀 팔아."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다.
마음은 엄청나게 큰 환호성을 질렀지만:)
드디어 나한테 일을 시키는구나ㅋ
나에게 일이 주어 졌구나!!
백화점 행사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우리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에 그것도 백화점 행사 매대에
웬 검은색 정장과 코트를 입은 남자가
화장품코너에 서 있으니까 이상하게 보였는지
50대 정도의 고객들이 뭐가 있나 싶어서
모여들었고 난 아주 열심히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물건들은 잘 팔리기 시작했고 재고가
없어 우리 제품을 못 산 고객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며
"연락 주시면, 행사기간 후에라도
행사가격으로 제가 꼭 드리겠습니다.
저희 제품 꼭 한번 경험해 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드리는 것이니 연락 한번 주세요."
라고 내 권한에도 없는 멘트를 날리고
아쉬워하는 고객분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평소보다 매출이 훨씬 높이 찍힌걸
대표가 확인을 하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에 갑자기 몰려왔고
행사 매대에 매니저와 판매사원이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 후로 이틀 정도 지났나?
내 명함을 받아갔던 고객분에게 회사로
전화가 왔다. 내가 자리에 없던 사이
같이 일을 하던 대리님이 전화를 받았고
행사장에 있던 나를 찾았는데 없자,
나에 대한 미담을 해주시며
우리 제품을 여러 가지로 구매해 주셨다.
이 이야기가 대표의 귀에 들어갔고
그때부터는 대표가 '직접' 나에게
업무지시를 했다. 아싸!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게 다시 열심히 일을 시작했고
그게 성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의 무리들은 나를 찍어내려고
더 많은 업무를 그 위에 얹어 줬고
나는 신나게 더 열심히 일했다:)
일하는 게 너무 재미가 있었다.
어차피 일이 다 손바닥 안에서
해결되는 일인데 어려울게 전혀 없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회사를 나가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궁금하고 흥미진진해서 와이프에게
"나 정말 이 회사 다니는 게 재미있어!
나를 못 살게 굴려고 일을 마구잡이로
던져 주는데 내가 그걸 다 처리하고도
시간이 남아ㅋㅋ 그런데 부장 얼굴은
항상 썩어 있어ㅋㅋ 난 그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런 시트콤 같은 일이 나에게 생겨서
너무 신나."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나는 정말 재미있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일이라는 건 어차피 내려주는 건데
그 일도 아는 선에서 내려 줄 수밖에 없다.
일을 모르는데 일을 어떻게 시킬 수가 있나.
그러니 결국엔 매출과 상관없는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서 시키기 시작하는데
무슨 미션 해결하는 것 같고 문제 푸는 것
같기도 하고, 처리를 다 해 놓고 나면
뿌듯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나날이었다.
그 부장은 내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나중에는 출근 때 아침 인사도 안 받아 주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시작조차도 그 사람의 분위기대로
이끌어가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책상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손뼉을 두 번 짝! 짝! 쳤다.
"부장님, 일에 열중하셔서 제 인사가
안 들리셨나 봐요. 윗사람에게 눈 보면서
인사하라고 아버지께 초등학교 때 배워서요:)"
이러니까, 그제야
"으.... 응..." 이러신다.
그렇게 난 회사에 완벽 적응하고
나를 싫어하는 무리들에게도 잘 처신하고
그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부장은 이하 모든 젊은 직원들이
싫어했는데 생일이라도 맞이하면
나는 개인 사비를 털어 케이크에다
꼬깔모자까지 사서
"이거 부하직원들이 조금씩 각출해서
준비한 거예요. 생일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직원들 다 모아다가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초까지 끄게 만드는,
그런 낯 두껍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나와 같은 양식장에 갇혀있던
대리와 팀으로 엮였으니 어떻게 하면
매출을 낼까 항상 궁리했다.
같이 모여서 회의하면 또 싫어할 거
뻔히 알아서, 우린 카톡으로 회의하고
결정하고 적용시켰다.
다시 매출이 뛰기 시작했고
사장은 다시 호들갑을 떨면서 그 여직원을
추켜 세웠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둠의 무리들은
아주 작정을 하고 이 친구를 괴롭히는데
이 친구도 한계가 왔는지 나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래서 난 절~~~ 대 안된다고
이대로 나가면 결론적으로 니 인생에서
겪은 경험치로 밖에 환산이 안되니까
아직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니 몸값은 올리고
나가.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두 달만 참고 기다려."
나는 이 회사의 대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고
뭘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 제품 중에는 뭘 제일 아끼는지
알고 있고 왜 그런지도 아주 잘 안다.
나와 그 친구는 대표가 가장 아끼는
제품에 주력을 했고 결과는 판매성장으로
이어졌다. 매 번처럼 대표는 신이 났고
평소보다 오히려 더 들떠 있었다.
매주 우상향으로 제일 좋아하는 제품이
성장이 이루어졌고 총애는 그 친구에게
돌아갔다.
'지금이야, 그만두고 싶다고
퇴사의사를 밝혀.'
부장라인을 통해 퇴사의사가 대표에게
들어갔고, 대표는 난리가 났다.
회사에서 매출 가장 잘 내는 직원이
그만둔단다. 과연 '대표의 마음이 어떨까?'
이내 부장으로부터의 답변은 회유였다.
단! 급여를 올려준다고 밝혀왔고
얼마를 원하냐는 물음이었다.
당시 그 친구는 사회생활 2년 차에
연봉 2600을 받았고 얼마를 불러야 할지
내게 물었고, 소심하게
"과장님,,,2800...이라고 하면 될까요?"
나는 단호하게 "아니! 3200 불러.
대신, 소심하게 3200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책상바닥 쳐다보면서 조용히 이야기해"
라고 알려줬다. 부장을 통해 그 이야기가
대표에게 올라갔고 결과는 이게 웬걸...
3300으로 올려줬다는 거다:)
그날 그 친구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너 그때 그냥 나갔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도
2800밖에 못 받아. 그런데 지금 3300으로
다른 데 가봐. 네가 연봉으로 얼마를
부를 수 있을까? 직장 2년 차에 그 정도
연봉이면 다른 데 가서도 너의 값어치를
높게 평가할 거야. 대신 그런 값어치가
되도록 네가 열심히 일해야겠지?
너 정도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느 회사와 무슨 일을 해 왔든지
그만둔 뒤 한참이 지나서도 동료들에게
문득문득 연락이 온다.
회사 차원에서 명절 선물이 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든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주어져도 한계나
범위를 두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일에
대처한다.
비록 지금은 대표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표처럼
생각하고 일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대표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