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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Jun 10. 2024

글쓰기에 관한 추억 한 스푼

그 시절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아직 학교 내에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기 전이었고 집에 있는 전집들은 거들떠보기도 싫게 생겼었기에 고로 나는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빠가 열심히 사다가 나르던 아이큐점프 만화 잡지나 집에서 정기구독하던 어린이 잡지에서 만화만 겨우 찾아서 볼 뿐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늘 내주곤 했던 독후감 숙제는 당연히 우리 집엔 없고 옆집에는 있던 세계명작 전집 중 몇 권을 빌려다가 뒤쪽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는 것을 베껴서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6학년쯤부터였나. 고학년이 되어보니 학급문고라는 것이 생겼고 그곳에 있는 책들을 몇 개 읽던 나는 책이라는 것도 재미가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슬슬 받기 시작했던 듯하다.

 학급문고는 아이들이 집에서 읽지 않는 책을 가져와서 다 같이 돌려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다섯 권 정도가 기억이 나는데 이걸 기억한다는 게 참 우습지만 내 생애 첫 책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것들이니 아무래도 제목정도는 기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중 한 권은 의외로  대우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이 특히 재밌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참 대통령 선거철이었고 회장 출신 대통령 후보들이 자서전이라는 것을 여기저기 그냥 막 뿌려대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A급 대필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지어낸 약간은 소설 같은 내용이었다고 하지만 나름 꽤 재밌었다. 

또 하나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이 기억난다. 누가 이 책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다. 이 심오한 책을 5, 6학년인 내가 제대로 파악했을 리는 없지만 꽤나 인상적이었고 가난에 대해 뭔지 모르는 정의감 비슷한 느낌과 아픔을 느꼈던 듯하다. 꼭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자신이 없어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그 외에 몽실언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등 지금도 좋은 책들을 그때 읽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에는 도서관도 학급문고도 없었다. 다만 국어 책에 짤막하게 나오는 단편소설들이 왜 이렇게 재미있고 그 뒤가 궁금하던지 집에서 썩어가고 있던 먼지 쌓인 전집들 속에서 단편소설들을 찾아내어 읽어 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단편소설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나는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학교에서 개최되었던 교내 글짓기대회에 불쑥 소설을 써서 제출을 해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지극히 소심한 인간이다. 어디 나서는 것과 튀는 행동들을 웬만하면 하지 않는 성격인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거침이 없었다. 소설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잊고 싶은 기억이기에 잊었을 것이다. 그래도 소설의 취지 정도는 어렴풋 기억이 나는데 당시 우리 집에서 운영하던 세차장의 조금 지능이 낮은 직원 아저씨에 대한 내용이었던 듯하다. 그분을 대하는 나의  퉁명스러운 행동들과 안쓰러운 마음 간의 혼란을 표현하고 싶어 했었지 않았나 싶다.  


드디어 글짓기대회 수상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 왔다. 발표는 교내방송으로 이루어졌고 스피커에서 한 명 한 명 당선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우리 반에서 당선자가 나왔다. 이름은 윤은정! 비록 가작 정도였지만 당선은 당선이다. 

그러나 나는 이 윤은정이라는 이름을 듣고 내가 당선이 된 줄 알고 순간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모른다. 옆 짝꿍도 '야! 너 아냐?'라고 했을 만큼 윤은정이라는 이름과 내 이름 유문정은 참 발음이 비슷하다. 결국 나는 당선자가 내가 아니라 윤은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혼자 속으로 너무너무너무 수치스러웠다. 잠시나마 내가 당선됐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순간이 며칠 동안 이불킥을 할 만큼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끝이 났다. 그 뒤로 나는 절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의 바람 같은 몰입의 시간들이 꽤나 있었나 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또 책이 좋아져서는 한참 소설들을 읽어대던 시절이 잠깐 있었는데 그때가 마침 고3수험기간이었네. 참말로.

그리하여 야자시간에 태백산맥 3권을 읽고 있는데 담임이 왔다 갔다 하더니만 다음날 나를 부른다. 곧 수능이 코앞인데 태백산맥 전권을 읽으려는 참이냐고. 소설 한 권씩 읽는 건 괜찮지만 대하소설은 좀 그렇지 않으냐고. 그것은 나중에 수능 끝나고 읽는 게 좋겠다는 아주 좋은 충고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책 읽기 흐름이 끊겼고 또 나는 그 뒤로 책을 읽지 않았다. 누굴 탓하랴. 바람처럼 오는 몰입의 시간을 꾸준히 이어나가지 못한 내 탓인 것을.  


세월이 흘러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어쭙잖은 나의 글을 남기고 있지만 그때 만약 내가 그 과정을 이겨내고 좀 더 글쓰기에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 꼭 당선되지 않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내면의 힘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그리하여 나만의 글을 써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가 아는가. 만약 내가 고3시절 태백산맥을 다 읽었더라면 어쩌면 대하소설을 쓰겠다고 덤볐을지.  하다못해 국문학과에 가겠다고 했을지도. 

그때는 그럴 수 있었던 시절이니까. 뭐라도 될 것 같았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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