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40대에 보이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다가 마흔을 넘어서자 저 멀리가 보인다. 노안이 오면 멀리 있는 게 잘 보이듯. 책 한 권을 읽어도 그 속의 깊이 있는 생각을 읽어낼 줄도 안다. 그러한 것들을 하나씩 느끼던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약간은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타면서 한마디 했다.
" 아~ 이래서 옛말에 마흔을 지천명이라 했나 봐. 훗"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들은
"야! 근데 마흔은 불혹 아니냐?"
"푸하하하하"
하며 웃기다고 난리가 났다.
무식이 탄로 나는 순간이다.
뭐 난 사실 가끔 이렇게 단어를 틀리게 말하곤 한다. 그래서 맹하다는 소릴 많이 듣기도 하지만 50이 지천명인 것을.. 아직 10년이나 남은 것을.. 조큼, 아 조큼! 부끄러웠다.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지천명은 하늘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단단함을 갖추었는가?
아니요. 아직도 확신에 찬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확신에 찬 인생을 산다면 사교육에 투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하늘의 이치를 알겠는가? 그건 더더욱 아니요.
하지만 진짜 내 나이가 50이 돼어 이제 좀 인생을 알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정녕 온다면 그땐 아이들이 성년이 되 있을 나이군요.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애들 걱정에 손 놓고 있지 말고 ‘나나 잘하자’이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에는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그 옆에는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사는 부모님이 계시다. 특히 중학생인 여자 주인공의 엄마는 늘 바쁘다. 이유는 늦깎이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딸의 진로 문제에도 관심을 두는 좋은 엄마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게 이제 막 직장에 들어왔을 때였는데 그때는 아름다운 배경과 젊은 학생들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 예쁘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보니 이제는 그 엄마가 보인다. 엄마가 학업에 바빠서 오히려 딸들의 챙김을 받는 면이 있기도 하다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딸들에게는 귀감이 되고 좋은 모델이 되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있고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한다. 그래서 지천명에는 하늘의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기를 바라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해나가고자 한다. 또 한번 더 지천명을 이순이라고 말하는 무식을 범하기 전에 롸잇 나~~~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