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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Apr 05. 2023

진주식 "비건" 비빔밥 feat.비트 육회

중요하지 않아서 가능한 것들을 생각해 보며

육회 대신 데친 비트를 양념해 식감과 색감을 더한 비건 비빔밥



예전에 비빔밥의 종류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진주비빔밥. 우거지가 들어간 국도 곁들인다던데 우거지가 없어서 시래기로 들깨시래기감자국을 곁들였다. 비트를 양념하고 나물을 준비했고, 고추장에도 고기가 들어간다길래 파기름을 내 고추장을 살짝 볶은 뒤 기름기를 더했다. 무생채도 도라지도 하나하나 정성을 다했다. 나를 위해. 우주의 먼지 같은, 하나도 안 중요한 나를 위해.



그래서, 중요하지 않아서, 자유롭게 비빔밥을 만드는 나의 오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최근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원래는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들을 필사해 보며 읽는 게 목적이었는데 읽다 보니 필사는커녕 올라오는 감정들을 추스르기 바빴다.



그 책을 처음 읽던 시절의 나는 무척 행복했던 편이다. 살면서 이만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느꼈던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가 딱 일 년 전쯤인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운동을 했고, 안정적인 관계들 속에 있었다. 일이 힘들어도, 수월한 편이었다. 그래서 책을 재밌게 읽기는 했어도 룰루 밀러가 말하던 혼돈은 내게 멀리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얼마 되지 않아, 그 혼돈이 내게도 찾아왔다. 거의 한 해에 걸쳐 혼돈은 나를 예기치 못한 곳으로 끌고 갔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이 차례로 부서졌다.



혼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혼돈에 관한 이 책에 손을 뻗었다. 다시 책을 읽었다. 이전과 달리 작가의 여정과 감정의 변화가 꼭 나의 것 같았다. 책을 읽을 때 적막이 싫어서 자주 듣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 Async를 재생하곤 했다. 책장을 덮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던 그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혼돈이 또 한 번 세상의 주인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위로가 되던 책을 다 읽어버렸고, 위로가 되던 음악가가 세상을 떠났다. 슬퍼진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거의 나였다면, 아마도 친구들을 불러 고기 안주, 이를테면 육회 같은 걸 시켜두고 소주를 진탕 마셨을 거다. 지금의 나는 비건 와인을 하나 사서 집에 들어온다. 그리고 천천히 마시며 내일의 비빔밥을 준비한다.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재료가 들어갈만한 비빔밥을 고른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진주비빔밥을 만들기로 마음을 굳힌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지만, 요리하다 보면 나의 시간을 조금 더 곱씹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비빔밥을 만들어 올린다고 했을까.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손이 은근히 많이 드는 게 제대로 된 비빔밥이다. 하지만 나의 사소함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이 무용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면 진주식 비빔밥을 혼자 분주하게 만들어 올릴 시간도 여유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중요한 누군가는 다른 식으로 귀중한 경험을 하겠지만.


들깨시래기감자국. 들깨, 시래기나 우거지만 넣어도 국이나 탕의 맛이 진해진다.



작년과 다르게 더 크게 와닿는 나의 사소함이 차이를 만든다. 적어도 나는 진주식 비빔밥을 비건으로 만들어 본 몇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 자유롭다. 그래서 내일도 비빔밥을 만들 거야.



안 중요한 모두가 자유롭긴 힘든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 무용한 짓을 할 자유가 오늘의 내겐 너무 소중하다.



Recently I read “Why Don’t Fish Exist” by Lulu Miller again. I was planning to transcribe some quotes but this time I was overwhelmed while I was reading it. I was just busy dealing with my emotions that the book brought me.



When I first read the book, I was quite happy. I couldn’t think of a better time and I felt like I was “The master of my fate”. It was about a year ago. I worked out daily, I had very stable relationships with people (at least in my thought back then). I didn’t love my job enthusiastically but I had no difficulties at work. And I enjoyed the book. I just didn’t fully think chaos that the book often mentioned can visit me at any time. Chaos came to me not long after I finished the book. Then it dragged me into unexpected (mental) place. Things that I believed as firm were shattered.



I am not important. That’s how chaos makes me think about myself.



Chaos, I can’t help thinking of the word, thus I picked up this book talking about chaos all along again. It felt different compared to the first time I read it. It felt like the author’s emotional journey was identical with mine. I used to play an album called Async by Ryuichi Sakamoto while I was reading the book. A few days after I completed the book, I heard that he passed away. It was sad. I was sad. Chaos in this world seems like getting even stronger.



If I were like myself in the past, I would meet friends to drink sorrow away and get over it easily probably. I would eat heaps of meat as Anju for soju too. Now I buy vegan wine for my saddened self, come back home alone, drink wine slowly and try to think of which bibimbap can have more ingredients than other bibimbap. Suddenly I realise that I wanted to make vegan Jinju bibimbap once. I start to prepare, cook some ingredients for another day’s another bibimbap. Then, again, The sentence comes up on my mind. “I am not important. I am nothing.” At least cooking alone at night is a good chance to dwell on my own time and life. Even if I am having some darker period in my life, I prepare meal for myself. It’s somehow like I put a lot of effort just for myself.



Then, again, I think, “Why am I making bibimbap again when nobody asks me to do it?”. Cooking proper bibimbap takes a lot of work than how it looks. But my insignificance, nothingness and smallness allowed me to make veganised Jinju style bibimbap and do such a meaningless but kinda fun thing. If I was really that important, I wouldn’t have time to do such a silly thing and also I wouldn’t be able to experience this veganised bibimbap at all.



So, I think, at least for now, I feel free since I am insignificant.


Not all the insignificant beings out there can feel free in this world but this freedom that allows me to do this silly little thing is "signific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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