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흑백 필름
흑백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색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사진은 더 쉽게 가치를 잃는 거라고 생각했다. 흑백에서 컬러로 진화해 온 기술의 순서 때문인지 몰라도 흑백은 나에게 그저 오래된 기억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어찌보면 큰 도전이었던 흑백사진.
필름 세 번째 롤. 그리고 첫 번 째 흑백 필름. Ilfordhp5
필름 가격부터 시작해 현상 비용까지 흑백사진을 받아 들기 위해선 일반 컬러사진보다는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꼬박 3일을 기다려 받은 첫 흑백 필름 사진은 그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을 정확히 했다.
11월의 어느 날. 후암동, 그리고 현상소.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일상의 관찰, 그리고 기록.
흑백을 위한 공간을 찾아서 1.
첫 번 째는 송리단길 카페 사브레. 유리창과 빛, 오브제의 질감이 조화롭던 곳.
흑백을 위한 공간을 찾아서 2.
만리재 옛길에 위치한 언더스테이티드 카페. 햇살과 내부 인테리어의 조화는 흑백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그리고 같은 건물 4층에 위치한 쇼룸. 모뉴멍.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찍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흑백의 도전은 처음 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고, 신중하고 차분하게 찍는 필름의 감각이 무언가 어른의 기분이다. 두 눈으로는 색채를 입은 세상을 보며 빛의 흔적을 따라 무색의 사진을 남기는 일.
흑과 백의 세상에선 상상의 여지가 더 크게 남는다.
흑백의 매력은 이런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