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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의 여정 Aug 27. 2023

감사할 줄 안다는 건 정말 멋집니다.

감사는 예의 중에 가장 위대한 형태이다. - J 마르뎅


한국학교 내 큰 문제 중 하나는 왕따입니다.

이 문제는 사실 어느 나라 학교에서든 크고 작은 형태로 있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일본은 이지매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놀림(Bullying)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미국은 이 놀림 (Bullying)이 학교 내 총기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나 왕따는 있지만, 한국은 이 왕따가 좀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의 왕따는 좀더 집단적이고 장기적이라고 합니다. 한 학생을 타겟으로 한 학기나 한 학년 내내 이뤄지는 괴롭힘은 피해를 당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엄청난 심리적 상처가 될 겁니다. 남은 인생에 큰 상처로 정신적 성장에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럼 왜 왕따가 생겨날까요?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눈치가 없거나, 답답한 모습에 학교 내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학업능력이 떨어지고, 말로만 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주변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이유가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를 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맞을까요?

아닙니다. 분명, 그래서는 안됩니다.


한국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놓여 있습니다.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에 부합한다는 게 마음과 노력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한국학생은 나와 함께 공부하는 내 곁의 학생들을 친구로 바라보기 전에, 내 치열한 경쟁자 중에 하나로 먼저 바라봅니다.

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얘기하고, 서로 어루만지고, 치유받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라는 존재를 얻을 수 있는 이 시기에, 내 곁에 있는 학생은 친구가 아닌 경쟁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 공감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출세주의로 흘러갑니다.

이 경쟁에서 낙오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은 무시하고 경멸하는 분위기가 생겨납니다.

친구가 아니고 경쟁자로서 그 경쟁대열에서 낙오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겁니다.

우리 교육의 모습은 학업성적에 따라 모든 것이 판가름 납니다.

성적이 우수해서 의대나 SKY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이라면 그 학교에서 대부분의 상황 아래 존중을 받거나 이해를 받습니다. 그렇지 못한 학생은 학교와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져 갑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없어져 갑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단지 의대나 SKY대학에 몇 명을 합격시켰는지로 평가받을 수 없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학생들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과도하게 치열한 경쟁 속에 먼저 놓이고,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가 먼저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정작 배워야 할 여러 가치들이 간과됩니다.

존중과 배려를 배우고 경험하고 느낄 이유는 없습니다.

앞으로 AI 환경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해 지는 자기주도적 학습과 평생학습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려운 모습이 되어 갑니다. 공부에 진저리가 나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공부와 책은 아예 손에서 놓게 됩니다. 오히려 대입 이후부터 진정한 공부를 해야 하지만, 대입에 성공하면 공부가 사라져버립니다. 경쟁 속에서 억지로 해 온 공부이기에 공부에 진저리가 납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은 조금 과도하게 설명하면, 선행학습을 얼마나 먼저, 효과적으로 하느냐의 게임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좀더 시간을 쓰는 게 대입 관점에서 유리합니다.


그래서, 한국학생들은 진정한 친구가 없거나, 적습니다.

살면서 보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와 함께 하는 벗이 있다는 겁니다.

기쁜 일이 생겨서 친구와 그 기쁨을 나누고, 속상한 일이 생겨서 속상함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합니다.

내 주변의 학생 모두가 경쟁자인 상황에서 주변의 학생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마음을 열 수 없는 데 진정한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요?

이렇게 커가다 보니, 친구를 만들고, 그런 친구와 즐기고 공감하기 보다는, 편가르는 데 익숙해집니다.

진정한 친구를 만들고 그 관계를 가져갈 줄 아는 아이는 다양함을 이해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비슷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다른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도 유지도 됩니다. 비슷함과 다름이 모두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등과 꼴찌가 벗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감사의 가치를 배울 기회가 줄어드는 겁니다.

감사한다는 마음은 삶의 행복을 가져오는 첫 출발점입니다.

작은 감사를 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들과 친밀해질 수 있고, 협력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감사는 배움으로 얻어진다기 보다는 습관입니다.

습관이기에 교육의 현장에서, 가정 내에서 꾸준히 쌓여야 합니다. 선행학습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투자보다 어찌보면 돈 없이 쉽게 나의 아이를 정말 '멋지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갖고 대학을 들어가기 보다는, 자기 인생을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먼저 배우고 대학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들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바람직한 게 아닐까요?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와 미국시민권자 한국인 하버드 대학생과의 대화>

"저는 알버트에요."

"안녕하세요, 알버트!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지금 4학년 2학기 재학 중입니다. 저는 부모님, 특히 엄마가 학원을 운영하세요. 저를 키우고, 교육하시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셨어요. 그렇게 저를 키우고 교육해 주셨고, 수십만 달러를 제게 써 주셨어요. 저희 가족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알버트! 당신은 여기에 있잖아요."

"네, 저는 여기 하버드에 있죠. 그래서, 그게 제 질문이에요. 제가 졸업한 후에, 엄마이자, 딸이자, 역사학자이자, 작가로서의 경험으로, 어떻게 하면 저희 엄마에게 감사함을 말씀 드릴 수 있을지 얘기해 주세요. 제게 해 주신 모든 것들에 어떻게 하면 감사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까요?“

“이런…. 저 울어야겠는데요, 알버트. 너무 아름다워요.“

그리고, 이민진 작가는 정적 속에 잠시 웁니다.

“당신 어머니는 분명 알버트 당신을 자랑스러워 하실거에요.“

한동안 이민진 작가는 말을 옮기질 못합니다.

“제 생각에는 당신은 이미 감사의 맘을 전했어요. 그리고, 당신 어머니께 가서 얘기하세요. 당신의 교육은 너무나 훌륭해서 작가를 울렸다고 말이죠.“


이 영상을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이 하버드대학에 들어간 것보다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이 멋진 학생을 둔 부모님이 진심으로 부러워집니다. 당신의 교육은 정말 너무 훌륭했어요.


교육은 이 세대가 오는 세대에게 진 빚이다. -파이보디


[사진 출처 : Unsplash]

[Reference]

https://youtu.be/OKva7dVgzGg?si=TGKHDAsYZVS1Gm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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