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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ni Jul 27. 2024

유럽에 와서 영어를 다시 공부한 이유

인생의 주파수가 달라지다.

나는 한국에 살 때 영어와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를 좋아했던 탓에 시험 점수는 잘 받았지만, 막상 시험이 끝나면 데면데면했던 사이.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지만 한국의 영어교육 특성상 읽기에만 한정된 능력이었다. 자막 없이 미드를 본다거나 외국인에게 영어로 말을 건다거나 내 생각을 영어로 써내려가는 등의 영어 실력은 갖추질 못했었다. 나름 실생활 영어를 배우겠다고 온라인 펜팔을 사귀었는데 내가 쓰는 문장이 계속 어색해 보여서 고치고 고치다 한 시간이 훌쩍 흐른 적도 있다. 그때의 난 영어를 읽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구사하진 못했던 듯하다. 그러다 대학교 때 유학을 오게 되었다. 다행히 학창시절 쌓아둔 영어 읽기 실력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공부한 덕에 첫 과목이 어렵진 않았다. 시험 점수도 잘 받았고 발표가 있으면 외워서 하면 됐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문제점을 깨닫다

학기가 시작하고 친해진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는 분명 아이엘츠 리스닝이 8.0인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들리지 않으니 그에 맞게 대답하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교수님이 과목 이해를 위해 유튜브 영상을 추천해 주셨는데 내용이 귀에 꽂히지가 않았다. 문장 단위로 해석은 하겠는데 그게 빠른 속도로 한번에 들어오니 머리에서 과부하가 걸린 기분이었다. 교과서를 읽을 땐 이해는 되는데 왠지 뭔가 불편했다. 같은 양을 읽어도 한국어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쉽게 지쳤다. 나는 학창시절까지 학생 수준에 맞춘, 오로지 시험만을 위한 짧은 글을 읽는 것만 연습해 왔기에 어려운 용어가 담긴 전공책을 읽는 데는 서툴렀던 것이다. 처음에 유학을 올 때는 모든 걸 영어로 읽고 생활해야지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편하게 사용되지 않는 영어에 점점 한국어 자료를 찾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학교 공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외국인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말이 잘 안 통해도 일단 어찌저찌(?) 간단한 대화로 친구하면 될 거야, 대화보다는 마음이 중요한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친구들끼리 서로 친해져서 어떤 토픽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도저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교성 있어 보이는 간단한 말과 손짓으로 때우는 건 첫만남에서나 통했다. 이미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깊게 쌓아가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화'가 필요했다. 뭐든 웃고 농담하고 넘어가는 사교성이 아니라. 여기서 크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려면 언어를 잘 해야 한다. 물론 성격이 아주아주 좋다면 더듬거리면서 간단한 표현만 써도 분위기를 띄우면서 대화에 잘 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순간 한계가 온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파티하고 술마시며 놀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진지하고 밀도 높은 대화를 종종 갖기 마련이다. 이때 서로 영어를 쓰면서 빠른 속도로 끊김없이 생각을 말하는데, 그 속에서 아주 단순한 표현을 쓰며 어눌하게 끼어든다면, 말하던 사람들이 대화가 방해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둘째치고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편이 아니라면 본인도 민망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는 대화가 필수적이고, 대화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글로벌한 국가에서는 그 언어가 영어이다.





10개월 간의 노력

그때부터 영어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공부했다. 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을 찾아 틀어두고, 이코노미스트를 다운받아 뉴스를 읽고,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펜팔도 새로 몇명 만들었다.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다 보니 현지인 애인도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몇달 반복하며 학교공부와 연애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정말 내게 영어가 편해져 있었다. 리스닝과 스피킹은 주로 친구나 파트너와의 대화 속에서, 리딩과 라이팅은 학교 공부에서 많이 늘었다. 그러려고 노력한 건 아니지만 한국인과의 교류가 많이 없던 탓에 내 일상은 오랜 기간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10개월이 흐르고 어느 순간, 전에는 읽는 게 어려워 책장에 처박아두었던 영어 원서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힐 때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나를 처음 보는 한국인들에게는 어릴적 유학을 했냐는 소리를 듣게 됐다. 아이엘츠 스피킹 6.0이라는 점수를 받을 때에는 정말 쉬운 문장도 버벅이던 내가 이젠 복잡한 문장도 줄줄 끊기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네이버보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하는 게 편했다. 교수님께 이메일을 쓸 때도 어떤 단어를 골라써야 할지가 보였다.


세상에는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자료가 있었다.

영화를 볼 때 한국어 자막이 필요 없었고,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올려준 설명 영상을 보면 됐다. 네이버에서 찾을 수 있는 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면 구글에 더 자세히 나와 있었다. 답변의 신뢰성이 100%는 아니라도, 쉽게 묻기 힘든 주제가 있을 땐 레딧에 들어가서 눈팅을 하면 웬만한 건 궁금증이 풀렸다. 한국어로 된 자료만 찾아다녔던 나의 눈이 뜨이는 경험이었다. 내가 세계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니. 나는 영미권 유학을 하지 않고도 이제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영어가 공식 언어인 곳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바이링구얼이 되었다.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내 기존의 활동범위가 언어 때문에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한국에도 훌륭한 자료들이 많지만, 5천만 인구가 모여 구성하는 지식 체계와 전 세계 영어사용자가 구성하는 지식 체계의 양은 비교할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본인의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고 싶다면 적어도 세계에 널린 자료들은 모두 이용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세계 공용어인 영어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자료들은, 그게 학술적 문서이든 아니면 문학이든 관계없이, 번역의 수준에 따라 최초 제작물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 용어가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작가의 문체가 망가져 번역되었거나 등등 한국어판 번역본만을 믿고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또한 영어를 공부하면 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가 본인의 활동 범위가 된다.

한국에서 작은 쇼핑몰을 하려던 사람도 영어를 구사하면 전 세계에 본인의 물건을 팔 수 있다. 한국에서 석사를 하려던 사람도 영어를 잘 준비하면 비용이 저렴하고 해외 경험까지 얻을 수 있는 선진국 석사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중에 따로 글을 쓰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비용 차이가 크지 않은 유럽의 석사 과정들이 많다. 영어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냥 원서쓰고 출국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대학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해외 취업을 꿈꾼다면 한국 대학원은 몇 바퀴나 돌아가는 길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유학 준비하면서, 또 실제로 유학을 하면서 일찍 깨달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의 지식체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글로벌한 관점을 세계와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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