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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희야 Apr 13. 2023

가계부 쓰기로 정돈된 삶

우리 집은 아이가 둘인 외벌이 4인 가족이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살뜰 사는 것이 내가 아는 삶이었다. 엄마도 그렇게 살았기에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욕심내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만큼에 만족하고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매달 급여 통장에 입금되는 돈에 맞춰 살았고 언젠가는 내 생활도 넉넉하고 풍요로울 수 있을 꺼라 믿었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 않던가. 나중을 보고 살았다.


남편이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희망이 불안으로 변했다. 남편이 30대일 때는 정년퇴직은 아주 먼 이야기였다. 40대가 되면서 퇴직이란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이 아파서 쓰러진다면... 하는 불안이 종종 찾아왔다. 남편은 자주 아프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 앓는 몸살도 나는 불안했다. 실제로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지 못한 날도 여러 날이었다.


경조사로 생활비가 다 털린 5월을 보낼 때, 통장에 있는 돈들이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아닌 카드 결제금인 걸 알았을 때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살면 내일도, 10년 뒤도 다를 거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점점 더 가난해질 거란 것 알았다. 아이들의 성적과 남편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남편은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꿈꾸는 여유는 TV 속 드라마에만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아프면 쓸 병원비는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과 적어도 다른 사람의 기쁜 일이 우리 집 생활비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끝에 의미 없이 적기만 하던 가계부를 뒤집어보았다. 어제 얼마, 오늘 얼마가 아닌 어디에 얼마의 지출이 있는지 숫자로 확인했다. 언제나 불쑥 생기는 경조사비를 미리 조금씩 모으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정비와 변동비를 줄여야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재테크 카페에서 짠돌이로 사는 방법을 익혔다. 

전기 먹는 하마인 전기밥솥을 버리고 가스레인지에 솥밥을 해 먹었다. 대기전력 차단하는 멀티탭을 쓰고 냉장고 외 가전제품들 플러그를 뽑아 놓고 생활했다. 수도꼭지는 항상 냉수 쪽으로 돌려놓았다. 외식 말고 집밥을 먹어야 식비를 줄일 수 있었다. 

남들이 좋다는 말에 사두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로 가득한 집은 청소도 정리도 어려웠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를 미니멀라이프가 알려주었다.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들은 여기저기서 버리기 아깝다며 얻어온 것이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들이 9할이었다. 멀쩡한 옷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이사 때마다 전국을 돌던 옷들을 후원단체에 몇 박스를 보냈다. 그곳에도 보내지 못한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비우는 일도 엄청난 수고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물건을 함부로 살 수 없었다. 물건을 살 때는 우리 집에 둘 곳이 있는지 생각하고 물건을 샀다. 살 수 있는 것보다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불편함은 순간이었다.


집밥으로 식비를 조절하고 필요한 것 외에 사지 않으니 돈이 조금씩 모였다. 경조사비 말고 다른 항목의 돈들도 조금씩 통장에 쌓이기 시작했다. 가계부 쓰기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 집 생활비는 여유가 없다. 여전히 모자란 듯이 살고 있다. 남편 나이도 10살이 더해져 이제는 정말 퇴직 연수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게 되었다. 큰 아이는 내년에 대학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내 돈을 관리하는 능력이 생겼고 그동안 모아서 투자한 자산들이 있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불안하지 않다.


가계부를 쓰면서 삶이 정돈되었다. 남들이 좋다는 것에 귀가 커지고 눈이 갔던 예전에는 내 기준이 없었다. 지르고 후회하기 일쑤였고 남들 같이 살지 못함에 속상해했다. 지금은 우리 집에 필요한 것들과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다.


내 삶에 필요한 금액을 아는 과정, 그 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가계부 쓰기다. 가계부를 쓰면서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내일은 불안이 아니라 희망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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