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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Nov 21. 2023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 그래도 지구는 돈다

" 그래도 지구는 돈다" "And yet it moves" ( E pur si muove 에 뿌레 시 무아베)     


피렌체 사람이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당시 토스카나 지역에서는장남에게 성을 겹쳐 쓰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자 그는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에 대한 획기적인 관측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관측결과를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서 메디치가문의 후원을 받는 전속학자가 되었다.


이 무렵부터 갈릴레이는 자신의 천문관측 결과에 의거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믿음을 굳히게 되는데, 이것이 로마 교황청의 반발을 사서 로마의 이단 심문소로부터 재판을 받고 앞으로 지동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제1차 재판).      


그 후 코페르니쿠스와의 약속과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를 집필하여 가능한 제1차 재판의 경고에 저촉되지 않는 형식으로 지동설을 피력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달리 1632년 2월에 발간된 책은 7월에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에 올랐고 1633년 1월 그는 로마의 이단 심문소의 명령을 받고 로마로 소환되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해 가르치거나 주장하거나 저술하는 것을 금지하는 1차 재판의 명령을 위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차례의 심문을 받고, 6월에 판결이 내려졌는데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절대로 이단 행위를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제2차 재판).      


그 뒤 갈릴레이는 피렌체 교외의 옛집으로 돌아와서 시력마저 잃은 채 사랑하는 딸의 도움으로 마지막 대작인 <두 개의 신과학(新科學)에 관한 수학적 논증과 증명>을 써서 네덜란드에서 출판하였다. 이어 속편 집필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에도 재판결과의 금지로 공적인 장례를 치를 수 없었고 묘소를 마련하는 일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도 친분이 있었던 갈릴레이와 가톨릭은 원래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지동설로 인해서도 갈릴레이는 교황과의 친분으로 그나마 좀 덜 고생한 편에 속하고, 정작 가톨릭 내부의 지동설 찬성파들은 알게 모르게 그 보다 더 많은 탄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앞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대립을 거쳐 왔던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갈릴레이가 말했다고 널리 알려진 '그래도 지구는 돈다.'로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갈릴레이가 직접 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당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을 보여 주는 좋은  예시문으로 적절하였기에 이 말은 오래도록 회자되었고 더욱 자주 인용되었다.      


이 명언의 패러디로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And Yet the Town Moves 라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있다.     

아무튼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명언일화가 중요한 것은, 과학적 진실이 종교적 억압을 극복하고 이긴다는 뜻을 담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이에는 계몽주의 시대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갈릴레이를 과학적 진리의 순교자로 형상화하려는 사람들의 뜻과 의지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교황청은 어떻게든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생각되는 이 과학자를 일벌백계함으로써 그들의 교리에 대항하는 자의 말로를 본보기로 보여주려 하였고, 그럴수록 밝아오는 계몽시대의 빛 가운데 과학자들은 비밀 결사나 학회를 조직하여 이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처형되었고 갈릴레이보다 앞서 또 다른 과학순교자였던 브루노가 있었다.      


갈릴레이 초상화      로마종교재판에 직면한 갈릴레오

         


    



 브루노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크며 태양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드넓은 우주의 수많은 별 중 하나라는 소위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당시 교회와 신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천구(天球)가 우주의 전부라고 주장했고  이에 브루노는 '자기 집 작은 창문으로만 보이는 새들 외에는 어떠한 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성경을 도덕적인 부분 외에 자연과학의 해석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교회에게 무한 우주론은 지동설보다도 더 위험했다. 지동설은 그래도 우주의 크기를 보이는 하늘인 '천구'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브루노는 태양마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신의 손에서 태어난 유일한 창조물이자 지적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게 되니 교회의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브루노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론을 완전히 철회하라는 교회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그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점점 위협이 거세지자 사제복을 벗어버리고 방랑길에 올랐고, 나중에는 신교인 칼뱅파로 개종하기까지 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런 브루노를 종교재판에 세우려고 계략을 꾸며서 누군가 브루노 선생을 초청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게 한다. 초청자는 브루노의 신변보호는 물론 연구에 대한 후원도 약속하니 이를 믿은 브루노는 베네치아로 향했고 교회가 꾸민 함정에 빠져 1592년 그는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다.
 
 그는 모진 고문과 심문 중에도 하느님이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만든 우주 역시 무한할 수 있으며 생명체 또한 다른 별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계속 주장했다.
 이후 그는 사슬에 묶인 채 가로 세로 2미터인 지하 감방에 갇혔고 그가 베네치아의 감옥에 갇혀있을 때,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갈릴레오의 대학 교수 임용 심사가 열리고 있었다. 결국 브루노는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선고받고 바티칸으로 이송되어 8년을 더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16세기의 종교재판소는 '길 잃은 영혼들을 재교육해 어머니인 교회의 품으로 돌려놓는 일'이 공식적인 임무였다는데 그 '길 잃은 영혼들'을 찾기 위한 감시를 그야말로 철저히 제대로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교황이 보낸 첩자들의 감시에 시달렸기에 다빈치는 모든 글을 반대로 썼는데, 이는 그의 아이디어를 숨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처에 깔린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한다.      

사형 선고가 내려졌을 때, 브루노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은 채 자신을 기소한 사람들에게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나 자신의 두려움보다 당신들의 두려움이 오히려 더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1600년 2월 17일, 예수회 사제들은 브루노의 턱을 쇠로 된 재갈로 채우고, 쇠꼬챙이로 혀를 꿰뚫었으며, 또 다른 꼬챙이로 입천장을 관통시켰다. 그러고는 망토를 입은 집행관들이 이끄는 수레에 실린 채, 그는 구경거리가 되어 로마 거리를 끌려다녔다. 그러고 나서 예수회 사제들은 그를 발가벗기고는 거꾸로 매달아 불태워 죽였다.    

훗날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당대의 유럽 지식인들은 브루노를 기리며 1899년에 그가 화형 당했던 로마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


 조르다노 브루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다. 가톨릭 교회의 역사 잔재 청산을 호소하며 사회 운동이 시작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브루노에 대한 재판 과정을 다시 조사하도록 명령했고 그 결과 "사형 선고는 부당"이라는 재심 판결이 내려졌다. 브루노가 처형된 지 무려 379년 만이었다.  

    

교황청이 갈릴레이를 공식 복권시키기까지도 350여 년이 걸렸다. 197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실수였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특별위원회를 소집했고 1992년 10월 31일 자로 갈릴레이는 교회에서 복권됐다.     


이제 갈릴레이의 이름은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1989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를 통해 발사된 목성과 그 위성 탐사선 이름은 갈릴레오호 다. 유럽연합이 미국의 GPS에 대응해 추진하는 새로운 전 세계 위성항법시스템 프로젝트 이름도 갈릴레오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또 다른 울림으로 내게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러다이트 운동(1811~1817)은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도 부른다.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기계가 우위를 점하게 되자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수공업자들은 몰락하게 되었다. 집과 공동 작업장에서 노동해 온 그들은 이제 기계로 인해 실업자가 되든지 자본가의 강제 아래 일하는 공장 노동자가 되든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기계야말로 이 모든 갈등의 원인으로 보고 기계를 파괴하려 했다. 그러나 자본가와 결탁한 정부는 계속되는 강경한 탄압으로 대응했고 대공업 시대로 나아가면서 러다이트 운동은 끝났다.

방직기계를 부수는 노동자들

이 운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과 사회 발전의 법칙을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시위이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이 분출한 분노의 반자본주의 운동이자 초기의 노동 운동이라는 데에 의의를 두기도 한다. 흔히 러다이트 운동을 기계를 파괴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어리석은 민중들의 감정적 폭동으로 잘못 여기기도 하지만, 실상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맞서 싸운 계급투쟁적인 노동운동이었다.


이렇게 러다이트 운동이 여러 사회, 경제적인 의미도 있지만 내가 이 부분을 떠올리게 된 것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배려차원의 도덕적인 공감이 아니라 일단 특정 기술이 개발되고 나면 더 이상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신기술 개발과 그의 사용에 대해서 과도기적으로 어떤 반발이나 저항이 거셀 수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 시대적 조류인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순 없다는 것이고 그를  역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재확인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맨 처음 자동차가 발명되어 나오자 영국에서 마차를 몰던 마부들의 투쟁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처럼 마부들의 농성이 자동차 시대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에는 주로 운행하던 마차가 자동차가 등장하며 일자리를 잃게 된 영국 마부들의 사회적 저항이 거세지자 의회는 1865년 '붉은 깃발 법'으로 번역되는 적기조례(Red Flag Act)를 만들어내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본 마차업자들이 하도 불만을 토로하니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이 허락 한 것으로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걸어가며 차가 온다는 것을 알리게 했다. 

그러면 자동차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리게 달린다. 이 우스꽝스러운 법이 마차운행의 안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잠시 영국의 자동차 생산과 보급을 늦추게 해서 영국 자동차 산업을 조금 더 뒤처지게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동차로의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거나 가로막진 못했다.     




  

<제3의 물결>은 미국의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쓴 책이다.


앨빈 토플러가 제안한 이 물결이론은 현대 정보사회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다가오는 정보혁명과 정보사회를 예견한 걸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토플러는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에 이은 제3의 물결로서 정보혁명을 논했다.     


우리는 그의 예언대로 지금 정보화 시대의 급물살을 타며 변화해가고 있다. 그 예로서 대표적 4차 혁명의 아이콘인 AI는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눈뜨자마자 날씨 알려주고 뉴스 틀어주고 조명, 커텐 켜주고. 이렇듯 집 안에서부터 자율 주행 자동차, 커피숍, 식당, 병원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용 중이다.      


2016년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린 후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에서는 이후에 알파제로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알파고는 사람들이 바둑을 둔 기보를 보고 학습해서 인간을 이겼는데 알파제로는 바둑의 기보조차 학습하지 않고 룰이 입력된 후 스스로 바둑을 학습해서 알파고와 대결했는데 알파제로가 알파고에게 압승을 거뒀다. 이런 식으로 특정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을 넘어섰고, 또 그 인공지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중에서도 아마 요즘 가장 핫한 것이 바로 Chat GPT일 거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인공지능 연구소, Open AI에서 공개한 언어 인공지능인데 실제 몇 가지 키워드를 넣으면 작문을 해주고 질문을 하면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해 준다. 그런 Chat GPT는 언어뿐 아니라 이제는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창작소설까지 써 주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2045년쯤이면 올 거라 예언한다. 일론 머스크의 OpenAI, 마이크로소프트의 Github, 우리나라에서는 ETRI를 비롯해서 네이버, 카카오 등 많은 곳에서 AI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에 이전 SF영화에서나 봤던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 

( *특이점  singularity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그래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이제 내 귀에는
 ‘그래도 AI 세상은 온다’로 들린다.    

 

   



일부에서는 이런 AI 위험성에 대해서도 말들이 나오고 있다. 허나 한 면으로는 그 말들이 마치 종교재판소에서 무릎을 꿇으면서도 부인할 수 없었던 지동설과 러다이트 운동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산업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올 것은 언젠가는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막연한 불안감... 그러니 무조건 거부하거나 찜찜한 마음으로 불안해하기보다는 가능한 미리 직시하고 (그로 인해 우려되는 점이나 위험한 면에 대해서 ) 미리 준비하는 것이 미래를 살아가는 자세로서 더 현명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글을 정리하면서 AI 검색하니 아래 기사내용이 뜨서 가져와 봤다.


"취재하며 AI 위험성 느껴, 빨리 규제책 마련해야"

 KBS 1TV <시사기획 창> 최성원 기자 이영광(kwang3830) 23.08.06      


기자- 처음에 취재는 뭐부터 하셨어요?


 "처음에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몇 가지 철학을 가지고 접근했는데요. GPT를 이용해서 프로그램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구성안을 챗GPT에 부탁했습니다. GPT가 다큐멘터리의 구성안 작성하고 전문가들 추천하고 인터뷰 내용도 작성해 줍니다. GPT는 한 단락의 줄거리를 어떻게 갈지도 구상해서 조언해 주거든요. 예를 들어 '카이스트 로봇 AI가 있는데 국제대회에서 우승했어. 교수님과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로봇 AI를 시연하려고 하는데 스토리를 짜 줄래?'라고 물으면 챗GPT가 세부 스토리를 짜 줍니다. 심지어는 영문 이메일도 완벽할 정도로 잘 작성해 줍니다. '미국 USC 대학 로스쿨 조나단 최 교수님에게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아주 정중한 톤으로 작성해 줄래'라고 프롬프트에 입력하면 완벽한 수준의 이메일을 영문으로 바로 작성해 줍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기자 - 인간이 AI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을까요?


 "저는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쿠팡이라든가 아니면 넷플릭스라든가 아니면 배달 앱이라든가 유튜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앱들을 열었을 때 우리가 전체 메뉴를 다 검색하진 않거든요. 우리가 먹고 즐기고 보는 것들은 이미 대부분 사람이 추천 메뉴에 의존하거든요. AI는 이미 나보다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 메뉴를 눌러 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가 AI의 지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생성형 AI가 돌풍인 거 같은데 왜일까요?


 "생성형 AI의 특징은 인간이 처음으로 인간 아닌 것들과 대화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GPT랑 대화를 시작하면 굉장히 재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초창기 버전과 다르게 상당히 챗GPT를 다시 강화 학습 시켰더라고요. 그러니까 무리한 대화를 하지 않도록 챗GPT를 강화 학습 시켜놨어요. 그래서 인간이 느끼기에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빠져들어요.....
창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AI가 오히려 더 잘하는 거예요. 관련 업계에 있는 미국 작가협회에서 챗 GPT의 출시와 동시에 미국 대도시에서 지금도 시위하고 있어요. GPT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기자 - 어떻게 하면 인간과 기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완벽한 조화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얘기고요. 저는 AI 기능 자체가 인간의 생명이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서 정말 완벽할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AI가 창작하고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자율 주행 시스템이 완성되고 있고 하는데도 규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에서도 각종 편견과 차별적인 내용들이 발견되는데도 마땅한 규제 방안이 없어요.
 저는 그래서 AI 개발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알고리즘 내에 편견과 차별, 혐오가 존재하지 않고 AI는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하고요.


 기자-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AI의 위험성이에요. AI가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진화하고 있고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AGI의 출연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가 AI와의 공존이 시작됐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싶었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AI에 대한 더 깊은 인식과 공감대 그리고 AI 개발에 대한 윤리적 문제, 기준 마련을 위한 논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     






결국 과학기술의 정점이 만들어낸 AI와 핵 개발, 그 둘 다에 대해서 윤리적 기준과 제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류문명의 끝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어렵지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기술은 과학이 이뤄낼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의 가치에 관한 정신적 문제는 여전히 기술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편리를 위한 기술문명, 경제적 이득을 줄 수 있는 기술개발보다는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가운데 인류가 함께 상생, 공존, 행복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더 우선한다 보기에.      


전편에서 언급했던 종교와 과학은 그래서 여전히 우리가 함께 조화롭게 병행하며 가야 할 두 영역이라 본다.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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