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지막 호스트 여행기
앙제(Angers)는 갈리아 시대 안데카비족의 중심지로, 중세에는 앙주 영지의 수도로 번성했다. 고딕 양식의 생모리스 성당, 17개 탑을 가진 앙제 성, 중세 도시 구조 등 역사적 유산이 풍부하고, 전통 산업으로는 슬레이트 채석과 직조업이 발달했다. 현재 인구는 약 16만 명이다. 앙제-루아르 메트로폴로 도시권은 메인 강과 루아르강 인접, 대서양 접근성 등으로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는다.
라로셸에서 기차를 타고 앙제로 가면서 우리는 낭트를 거쳐서 갔다. 유난히 큰 짐가방을 고려하여 일등석을 끊으니 짐 넣고 내리기가 편했다. 그러나 프랑스 기차는 차표에 표기된 객실 번호와 기차 밖의 칸 번호가 달라 객실을 찾는 데 어려움도 겪었다.
앙제의 호스트 미레이는 차가 작아 우리 짐가방을 실을 수 없음으로 자신이 역으로 마중 나갈테니 함께 전철을 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내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집 앞 공사 중이니 집 맞은편에 내려달라고 기사에게 설명하라고 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나의 말을 흘려 듣고 집 가기 전 길가에 내려주었다. 공사 중인 옆길을 무거운 짐가방을 끌며 힘겹게 도착하자, 미레이가 나와 있었고 택시 기사에 대해 화를 냈지만, 우리는 무사히 도착한 것에 안도하며 웃었다.
그녀가 내어준 안방을 차지하고 잠시 쉬었다. 그녀 집에는 이미 이스라엘 친구가 와 있어, 우리 세 명의 게스트는 함께 차를 타고 시내 투어를 나갔다. 앙제는 디종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J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러운 도시라기에 기대를 품고 나섰다.
앙제 호스트 미레이
미레이는 여러 손님을 맞이해 본 경험 때문인지 전문 가이드처럼 능숙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정원을 둘러보고 시내 중심가의 오래된 주택들을 구경한 뒤, 보수 중인 대성당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니 앙제의 상징인 여러개의 탑을 가진 성이 나타났다. 우리는 천천히 둘러보며 성벽에서 메인 강이 흐르는 도시 전경을 감상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미레이는 손님 접대와 가이드까지 소화하면서도 저녁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집에 돌아오자, 우리는 거실에서 아페리티프(식전주)를 마시며 미레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스라엘 친구 A는 수십 년 만에 재회한 서바스 친구였고, 과거 그녀의 집을 방문한 한국 친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남편을 잃은 지 십수 년이 되었지만, 미레이는 도자기와 바느질 같은 창작활동으로 외로움을 잘 이겨낸 듯 보였다. 집안 곳곳에는 그녀의 수공예품과 여행지에서 모은 민속품들이 다채롭게 놓여 있었다.
환갑을 넘긴 나보다 열여섯 살 많은 미레이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의 뛰어난 운전 솜씨와 재치 있는 대화에서 그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내년 봄으로 예약한 한국여행 계획을 이야기하길래 나는 당연히 우리 집을 방문하라고 제안하였고, 그녀는 여행계획을 변경해서라도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프랑스에서 만난 인연을 한국에서 다시 이어간다면 우정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루아르 강변의 아름다운 성
이튿날 미레이는 루아르강 변과 소뮈르(Samur) 도시를 보여주고 싶다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프랑스의 루아르강 변은 예로부터 귀족과 왕족들이 성을 짓고 살았던 곳이라 누구나 한 번쯤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우리도 한번은 갈 곳으로 찜해두었으나 이번 여정에서 뜻밖에 미레이 차로 그곳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이번 프랑스여행의 예기치 못했던 득템이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강변 풍경과 함께 작은 마을들을 둘러보았고, 우연히 호박 축제를 준비하던 농부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텃밭 농사를 하는 우리에게 프랑스 시골의 가을 풍년은 마치 지리산 기슭의 우리 밭을 떠올리듯 정겨웠다.
그리고 소금 생산지와 가까운 동굴 식당에 미레이가 예약을 해두어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직접 구운 빵에 연어와 소스를 얹어 먹는 프랑스식 햄버거가 맛있었고 빵과 소스를 리필 받아 와인과 함께 먹으니 정말 배가 불렀다. 운전하는 미레이는 와인을 마실 수 없었지만, 우리가 대접하는 점심에 고마워하였다. 우리는 현지인만이 아는 숨은 보석 같은 이런 멋진 식당을 추천해 준 그녀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포도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성에 갔다. 외관만으로도 내가 본 그 어떤 성보다 아름다웠다. 성 밖 카페에서 맥주와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옆 테이블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8명의 친구가 동창회처럼 오랜만에 여행을 온 팀이었는데, 나의 한국 소개와 붙임성이 좋은 미레이의 서바스 (Servas 국제여행단체) 이야기에 모두 흥미로워했다.
저녁은 내가 한국식으로 만들겠다며 전날 미리 장을 보아 두었다. 미레이는 친구 마리 본을 초대했고, 그녀는 한국 사람을 만난 것도 처음인데 한국 음식을 맛본다며 기뻐했다. 메뉴는 보르도에서처럼 제육 볶음과 오이무침을 준비해 상추쌈과 함께 내놓자 모두 좋아했다. 프랑스인들이 쌈장에 매료된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파리 후배 말에 따르면 마트에서도 이제 대용량 쌈장이 판매된다고 하니 K-푸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지 호스트의 우정과 배려 속에 2박 3일 동안 앙제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앙제뿐 아니라 루아르강변과 소뮈르까지 알차게 둘러볼 수 있어 뿌듯한 일정이었다. 마지막까지 온정을 다해 호스트해준 그녀가 한국에 오면 같은 정성으로 맞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주고받는 정과 배려가 쌓은 국제적 우정, 이런 만남이 세계평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두루 일거삼득이 아닐까 싶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4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