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

디지털 후손과 대화하다

by 김별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저녁 식사 후, 나는 가족들을 거실로 부른다.


남편은 여전히 느긋한 표정이고,
아들과 며느리는 살짝 긴장한 얼굴이다.

“오늘, 미래를 한 번 만나볼까?”


루미가 조용히 공간을 정리한다.
홀로그램 프로젝션이 작동하고,
가족 유전자 데이터와 성향 분석 모델이 연동된다.

이 시스템은 단순한 아기 합성 프로그램이 아니다.


부부의 유전자 조합, 성격 패턴, 가족력,
그리고 환경적 요소를 반영해
확률 기반 디지털 자녀 모델을 생성하는 기술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이미 계산할 수 있다.




쌍둥이의 등장


ChatGPT Image 2026년 3월 9일 오후 02_25_47.jpg


빛이 모이더니 두 아이가 나타난다.

먼저 손녀.

차분한 눈빛, 깊이 있는 표정.


나를 닮은 듯한 이마선과 집중하는 습관.
그녀는 이미 가상 도서관에서 데이터를 탐색하고 있다.

“할머니, 저는 우주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나는 웃는다.
“왜?”

“지구 밖에서도 생명은 다르게 진화할 수 있으니까요.”

역시, 질문을 좋아한다.
지적인 호기심은 유전인지, 문화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리고 손주.

아들과 며느리를 반반 닮았다.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밝은 표정.
웃으면 주변이 환해진다.

“할머니, 저 오늘 농구 시합에서 이겼어요!”


그는 신체 활동 지수가 높다.
유전자 분석상 운동 감각이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스템은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가능성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식탁 위의 미래


루미가 저녁 상을 차린다.
저당 한식 코스와 지중해식 샐러드가 함께 오른다.
가족 맞춤형 영양 알고리즘이
각자의 건강 데이터를 반영한 식단이다.


남편은 손주를 보며 말한다.

“저 녀석, 우리 집안 분위기를 다 가져갔네.”


며느리는 손녀를 보며 웃는다.

“어머님 닮아서 토론을 좋아하겠어요.”


가상 식탁이지만
웃음은 진짜다.

기술은 이미
유전자 편집, 배아 선별, 생애 예측 모델까지 발전했다.


원한다면 성향도 조정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성은 보되,
결정은 자연에 맡기기로.




정원에서의 약속


우리는 집 뒤 정원으로 나간다.
봄꽃이 만개해 있다.

디지털 쌍둥이는 잔디 위를 뛰어다닌다.


남편은 손주를 안아 올리고,
나는 손녀의 질문을 듣는다.

“할머니, 미래는 이미 정해진 건가요?”

나는 천천히 답한다.

“아니, 미래는 준비할 수는 있어도
정해지지는 않아.”


2045년의 기술은
유전 가능성을 계산하고,
성향을 예측하며,
삶의 궤적까지 시뮬레이션한다.


하지만 사랑과 선택은
아직 계산되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오며


루미가 부드럽게 말한다.

“예측 모델 세션 종료 5분 전입니다.”

아이들은 서서히 빛으로 흩어진다.


아들은 내 손을 잡는다.

“엄마, 꼭 쌍둥이일 필요는 없죠?”

나는 웃는다.

“아니, 한 명이어도 좋고 세 명이어도 좋아.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야.”


며느리가 조용히 말한다.

“그래도… 오늘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남편은 한마디 덧붙인다.

“기술은 참 대단하군.
하지만 결국 우리 집을 만드는 건 우리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특이점 이후의 시대는
미래 세대를 미리 만나게 해 준다.
유전, 성향, 가능성을 계산해 준다.

그러나 가족을 이루는 건
데이터가 아니라 마음이다.

나는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만났다.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만, 사랑은 예측되지 않는다.”


창밖의 봄밤은 고요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이미 행복하다.



금요일 연재
이전 10화기억의 살롱 : 전생 아카이브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