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화가의 제자 — 작은 악마, 살라이
기억의 살롱 시리즈는 현실 경험과 전생에 대한 가설, 철학적 질문, 그리고 미래 기술이 함께 작동하는 하나의 SF 에세이다. 나는 실제의 삶에서 건져 올린 감각과 사유, 그리고 상상을 엮어 시간을 건너는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전제가 있다.
영혼은 물질처럼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흐르고, 나뉘고,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전생이 클레오파트라나 선덕여왕이었던 사람도 여럿이다.
전생 리딩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들의 영혼이 오랜 시간 동안 분파되어
수백수천의 다른 영혼으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살라이였던 부분 또한 마찬가지다.
2045년
나는 기억 복원 시스템을 통해 또 하나의 기록을 호출한다.
“루미, 기억 아카이브 실행.”
잠시 후 화면에 한 문장이 떠오른다.
기억 재현 가능성 68%
르네상스 화가의 제자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 이번에는 그 시대군.”
홀로그램이 열리자 공기가 바뀐다.
젖은 석회 벽의 냄새, 안료와 아마인유의 향.
나는 곧 알게 된다.
나는 지금
르네상스의 공방에 서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있다.
Leonardo da Vinci.
내 이름은
잔 자코모 카프로티.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살라이(Salai).
작은 악마.
나는 열 살 때
그의 공방에 들어왔다.
그를 처음 본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밀라노의 흐린 오후였다.
공방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아마인유와 안료 냄새가 흘러나왔다.
젖은 석회 벽에서 프레스코의 냄새도 났다.
나는 한참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배는 고팠고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러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한 남자가 종이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길고 검은 옷, 약간 흐트러진 머리,
그리고 세상을 전부 관찰하는 듯한 눈.
나는 잠깐 생각했다.
저 사람은 세상을 그리는 사람인가.
하지만 사실 내가 더 관심 있던 것은
탁자 위에 놓인 빵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거기 서라.”
나는 얼어붙었다.
고개를 들자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화가 난 사람의 눈이 아니라
흥미로운 생물을 발견한 사람의 눈에 가까웠다.
그가 물었다.
“이름이 뭐지?”
“자코모입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탁자 위의 동전을 하나 집어 들었다.
“자코모.
내 공방에서 일할 생각이 있나?”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일보다 빵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곱실거리는 머리,
장난스러운 눈,
그리고 뻔뻔한 표정.
잠시 후 그가 웃었다.
“그래… 너는 문제를 많이 일으킬 것 같군.”
그리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재미있겠어.”
그날 밤
그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한 소년을 들였다.
도둑질을 잘하고 거짓말을 하며 식탐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살라이, 작은 악마라 부르기로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꽤 말썽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나를 내쫓지 않았다.
나는 사고를 치고
그는 화를 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나에게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보게 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화가였지만
그림만 그리지 않았다.
새의 날개를 연구했고
인체를 해부했고
기계를 설계했고
강의 흐름을 관찰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어떤 날은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예술은 자연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그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색을 단순한 색으로 보지 않았다.
빛의 움직임으로 보았다.
나는 종종 그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곱슬머리,
눈의 그림자,
입술의 미묘한 곡선.
그리고
그 미소.
그는 말했다.
“빛이 없으면 형태도 없다.
너는 나의 빛이자
내가 관찰해야 할 그림자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가 그릴 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그림 속에서
나는
소년이기도 했고
성인이기도 했으며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미묘한 아름다움을 이렇게 부른다.
훗날 사람들은 말한다.
다빈치가 그린
〈세례 요한〉
그 그림의 모델이
나라고.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 손가락,
그 미소,
그리고 어딘가 장난스러운 눈빛.
그것은
내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완벽한 제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림보다
세상이 더 재미있었다.
연애도 했고
술도 마셨고
도박도 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 스승은 실패한 것이다.”
나는 웃었다.
나는 그를 넘어서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빈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자극했다.
나는 그의 질서를 흔들었고
그의 완벽주의에
조금의 혼란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그에게 나는
필요한 무질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시를 옮겨 다녔다.
피렌체
밀라노
로마
그리고 프랑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았다.
새로운 기계
새로운 빛
새로운 얼굴.
나는 그 곁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다.
1519년
프랑스의 작은 성.
그의 숨이 점점 약해졌다.
곁에는 또 다른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있었다.
멜치는 완벽한 제자였다.
성실했고
충직했고
지적이었다.
하지만 스승은
우리 둘을 모두 사랑했다.
멜치에게는
지식과 기록을 남겼고
나에게는
그의 그림들을 남겼다.
그중에는
그 유명한 그림도 있었다.
모나리자.
홀로그램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다시
2045년의 거실에 앉아 있다.
창밖에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한 번의 생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생에서는
르네상스 공방의 작은 악마였고
지금의 나는
그 기억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나는 다빈치의 제자였다.
나는 완벽한 학생이 아니었지만
그의 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그림자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제자일지도 모른다.
다만
붓 대신
문장을 사용하고 있을 뿐.
작품후기)
우리는 보통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단순한 선형 구조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가 전생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소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작업은
서로 다른 시간들이 평행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시간의 중첩’ 가능성을 이야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 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사유를
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해 보려는 실험에 가깝다.
우리가 익숙하게 머무는
3차원의 물질 세계를 넘어,
시간을 매개로 한 4차원의 인식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을 넘어선 에테르적 차원까지.
그 확장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상과 사유는
이미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가 마지막으로 보낸 프랑스 클로세성 방문기가 있는 여행기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561
*대문사진- 다빈치가 그린 '세례자요한'-출처 위키백과
*안드로지너스(Androgynous)
그리스어 *안드로스(남성)*와 *지네(여성)*의 합성어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조화를 이루는 양성적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러한 미를 완전한 인간의 형상으로 보았으며,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종종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흐리는 신비로운 얼굴을 지닌다. 제자 살라이는 이러한 미학을 구현한 대표적 모델로 여겨진다.
당시 플라톤 철학이나 연금술적 사고관에서 '양성의 결합'은 분열되기 이전의 원형적인 완벽함을 의미했다.
오늘날 패션이나 예술계에서 말하는 '젠더리스(Genderless)'나 '유니섹스(Unisex)'의 시초가 바로 다빈치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성별에 갇히지 않는다. 진정한 미는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하나로 녹아든 찰나에 존재한다."
다빈치의 마지막 걸작 중 하나인 세례 요한의 모델이 살라이라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는 '모나리자(Mona Lisa)'가 'Mon Salai(나의 살라이)'의 아나그램(철자 바꾸기)이라는 주장인데 루브르 박물관의 분석 결과, 모나리자의 밑그림과 세례 요한(살라이)의 이목구비가 매우 유사하다는 연구도 있다.
*다빈치의 유산상속
다빈치는 평생 독신이었고 인간관계에서 매우 절제된 모습을 보였지만, 살라이 앞에서만은 무너졌다고 한다. 살라이는 다빈치의 엄격하고 논리적인 삶에 '생기'와 '혼란'을 불어넣는 존재였고 다빈치는 살라이의 변덕을 받아주며 정서적 위안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519년 다빈치가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 그는 가장 아끼던 포도밭의 절반과 최고 걸작인 <모나리자>를 포함한 여러 그림을 살라이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이는 살라이가 다빈치의 삶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한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다빈치와 살라이의 관계를 단순한 사제 관계 이상인 연인관계로 보는 썰도 있다. 다빈치가 남긴 스케치 중에는 살라이를 모델로 한 에로틱한 드로잉들이 존재하며, 이는 두 사람의 깊은 유대감을 뒷받침한다.
결국, 살라이는 다빈치의 '인간적인 약점'이자 '예술적인 완성'이었다. 완벽주의자였던 거장이 유일하게 허용한 무질서가 바로 살라이였던 셈이다.
*서로 다른 두 제자
다빈치의 인생에 살라이가 '격정적인 번뇌'였다면, 멜치는 '평온한 안식'이었다.
살라미가 하층 노동자계급 출신이었다면 멜치는 밀라노 귀족가문으로서 지적이고 성실했다.
멜치는 1506년 무렵, 15세의 나이로 다빈치의 제자가 되어 다빈치의 방대한 지식을 체계화하는 데 헌신했다. 다빈치가 노년에 마비 증세로 글을 쓰기 힘들어질 때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고
마지막으로 1519년 프랑스 클루 성에서 다빈치가 숨을 거둘 때, 그의 곁을 지키며 눈물을 흘린 사람은 살라이가 아닌 멜치였다.
다빈치는 살라미에게 물질적 유산을 남겼다면 '영혼의 아들'인 멜치에게는 모든 원고, 도구, 연금, 그리고 '화가로서의 권리'인 지적유산을 남겼다.
우리가 오늘날 다빈치를 '천재 과학자'로 기억할 수 있는 것도 80% 이상이 멜치의 덕분이다.
결국,
살라이는 다빈치의'현재(Sensuality)'를 채워준 연인이자 뮤즈였고, 멜치는 다빈치의 '미래(Legacy)'까지 완성한 아들이자 수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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