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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주 May 02. 2024

과거여행2. 다람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안 돼?

나는 살고 싶지만, 네가 같이 가자고 하면 같이 갈게. 외롭지 않게.

일주일 전, 옆단지에 사는 아는 언니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 경찰차 2대와 엠뷸런스가 와있다고 카톡을 보냈다.

설마... 하는 불안이 스쳐 지나갔지만, 요즘 아들은 거의 그런 말을 하지 않기에 마음을 다잡고 가족방에 문자를 남겼다.

- 별일 없지? 경찰차랑 엠뷸런스 왔다던데? 

- 아닌데? 

- 그래? 우리 아파트가 아닌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경찰차가 올리 없다.  더군다나 2대라니...

가정폭력 아니면 자살?

제발 가정폭력이길....

기도하며 집에 왔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이 몇 대만 때려도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한다고 하니, 가정폭력일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 찜찜한 불안이 맞아떨어졌다.

스물한 살 꽃다운 청춘이 생을 마감했다는 것...

드러난 이유는 부모님의 잔소리...

집에만 있지 말고, 컴퓨터만 하지 말고, 나가서 활동을 해라.

아이는 나간다고 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창문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관리소 소장님은 그 단지에서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햇볕이 안 드는 구조라 그렇다, 사람이 해를 안 보면 그렇다, 터가 안 좋다.

하시며 풍수 탓을 하셨다. 그 부모님이 얌전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덧붙이면서. 


그래도 미국을 가기 전에는, 미국에서 일 년 살이 동안은 죽고 싶다는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그때 아들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 정신과 약이 똑 떨어졌고, 이전에 다녔던 병원을 찾아가니 원장님이 해외연수를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법이 바뀌어 환자 본인이 오지 않으면 약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들은 우울인지 조증인지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엘 가지 않겠다고 우겼고, 나는 갑자기 약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생기니 병원엘 가자고 설득했다. 그래도 아들은 엄마가 타오라며 억지를 부렸다.

동네에 있는 병원들을 모두 돌아다녔지만, 환자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만 반복해서 들었다.

이전에 다녔던 병원 원장님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친구 병원장에게 사정 얘기를 해주겠다, 한 번 가보라고 해서 한 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갔지만 허사였다.

본인이 오세요.

급기야 나는 내가 우울한 척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래도 검사지를 속일 수는 없었는지 약한 우울증으로 나왔다며 수면제만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아들은 소량만 먹던 약도 강제적으로 끊었다.

아들은 한여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머리도 안 감고 목욕도 안 했다. 마치 원시인처럼 방에만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죽는다고 베란다로 뛰어갔다. 우리 집은 21층이었다.

이유는 늘 똑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삶에 의미가 없다. 

그래, 니 맘 이해한다. 내가 너라도 그럴 것 같다. 그래도 그냥 살면 안 될까? 다람쥐에게 물어봐라. 왜 사냐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거야. 그러니 너도 그냥 살자.

그렇게 아들을 진정시키고, 내가 타 온 수면제를 아들에게 먹여서 잠을 재웠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제는 혼자 죽지는 못하겠다고 엄마랑 같이 죽겠다고 부엌에서 작은 창칼을 들고 왔다.

나는 이미 칼을 숨긴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 부엌에는 창칼밖에 없다. 그것도 끝을 부러뜨려 뭉툭한 것으로.

남편은 방에 있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내 말을 참 잘 듣는다. 남편은 아들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악화만 시키기 때문에 밖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그래도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창칼을 들고 있는 아들과 마주 앉았다.

지금도 나는 그때 아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사냥꾼과 마주친 짐승처럼 아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래, 같이 죽자. 엄마도 너 없으면 못살아. 그러니까 같이 죽자. 근데 피 흘리며 죽는 건 싫으니까 좀 더 근사하게 죽을 방법을 찾아보자. 엄마가 찾아볼게. 고통을 느끼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아들은 칼로 나를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무섭지? 무섭지? 엄마는 죽는 거 무섭다며? 죽기 싫다며! 사는 게 좋다며!

맞다. 참, 이상하다.

나는 그 세월을 겪으면서 왜 죽는 게 싫었을까? 왜 삶에 미련이 많았을까? 어쩌면 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인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죽는 게 싫은가?

맞아. 엄마는 서영이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죽는 거 싫어. 외할머니는 딸을 하나 잃었는데 또 딸을 잃게 할 순 없어. 그래서 죽기 싫어. 그래도 네가 죽는다면 엄마는 같이 죽을 거야.

아들이 바라본다. 두 눈에 의심이 어린다. 이 아이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설마 아직도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일까?

아들이 칼을 내리고 운다.

칼을 내 손에 쥐어주고, 엄마는 살아, 나만 죽을 게. 그러면서 운다. 칼을 맞은 짐승처럼 운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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