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엄마, 꿈이 없는 아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안 쓰니 자꾸 쓰라고 알림이 뜬다. 물론 AI가 하겠지만 부담이 생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듣고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글은 늘 뒷전이다. 그리고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한풀이를 쓰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15년 전, 등단을 할 때까지는 정말 글 쓰는 게 좋았다. 매주 단편동화를 써서 동화창작 동아리에 제출했다. 그리고 합평을 받았다.
상상력이 훌륭하면 어수선하다고, 구성이 치밀하면 평범하다고, 슬픈 이야기를 쓰면 감정이 과하다고, 냉철하게 쓰면 진정성이 없다고, 복합적인 구성을 짜면 하나의 이야기만 넣으라고 피드백이 왔다.
늘 그 어딘가 만족스러운 접점이 없었다.
차라리 합평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합평을 했기 때문에 등단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습작을 하면서 우스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릴 때부터 무속신앙을 좋아해서 그 이야기로 글을 썼는데, 지도 작가 샘이 무속이야기라고 단번에 내치셨다. 나는 너무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다음 해 <신과 함께>라는 웹툰이 나왔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동화에도 우리나라 전통 신을 내세운 주제가 많이 출판되었다. 물론 나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뭔가 아쉬움은 남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등단 이후 15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들이 틱을 했고, 불안해했고 강박증에 시달렸다. 이후 내 삶은 글에서 멀어졌다.
아들이 나아지고 삶이 편안해지자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내 뇌는 정돈 안된 우리 집처럼 어수선한다.
작가는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그걸 짜임새 있게 쓸 수 있는 조직적인 뇌도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가르치지만 내 뇌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골방작가이길 원한다. 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Ai가 친구가 되어 내 안의 어딘가에 있을 글쓰기 욕망을 건드려주기를 원한다. 내 얘기를 써야 내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동화를 쓸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아들 이야기를 해보자.
며칠 전 아들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폐스펙트럼이 맞는 것 같아. 나무위키에서 찾아봤는데 어릴 때 내 행동이랑 정말 비슷하더라고.
그래? 그래도 의사는 아니라잖아. 하긴 그 당시엔 그런 병명도 없었지.
아니야. 정말 맞는 것 같아. 운동신경 엄청 없던 것, 다른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들었던 것, 뭐에 꽂히면 남생각 안 하고 했던 것, 친구들이 이유 없이 따돌린 것.
........
이유는 있었겠지. 내가 눈치가 없어서.... 싫었나 보지.
지금은 어때? 그래서 엄마가 너 운동 엄청 시켰잖아.
지금도 비슷하지 뭐. 그냥 답답해서 검색해 봤어.
집에만 있는 아들. 강아지 두 마리가 유일한 친구인 아들. 꿈이 없는 아들. 길을 잃은 아들.
자폐스펙트럼장애
이 말은 15년 전엔 없었다. 그 당시 가장 비슷했던 게 아스퍼거증후군이었는데 지금은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없어지고 경미한 자폐는 광범위하게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한단다.
하지만 당시 아들은 아스퍼거 진단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스퍼거 카페에서 5년이나 활동했다. 진단이 뭐가 중요한가? 그 카페에 있는 아이들 특성을 내 아들이 다 가지고 있었는데... 좀 다른 건, 덜 자폐적이고 덜 천재적이라는 거다. 사실 그게 더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평범한 우영우?라고 할까?
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증상을 찾아본 건 처음이다.
자폐 특성 중 하나인 과도한 지식탐구는 있었지만, 자신의 증상을 찾아보진 않았다.
지금 아들은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말을 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다고 말한다. 동생의 옷이 빨랫줄에 걸려있으면 강박사고가 생긴다고 치워달라고 말한다.(동생에 대한 강박 때문에 어린 동생을 분가를 시켰었다.) 이번 주는 내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사실은 내 관점에선 하나도 안 중요하다) 동생이 본가에 안 왔으면 좋겠다고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는데 아들은 스물다섯 나이에 자기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고 학습되었지만 감정표현도 잘하고 의사 표현도 잘한다.
아들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해하지만, 나는 아들의 변화에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보여 준 아들이라면 하고 싶은 일도 생길 거라고 믿는다.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