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여행 3: 처음 병원에 갔을 때
틱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불안, 강박
4개월 전, 늘 약만 주던 병원에서 상담을 조금 해주는 병원으로 옮겼다.
요즘은 포털에 병원 이름만 치면 리뷰가 나와서 좋은 병원을 찾기가 그래도 수월해졌다. 글쎄... 수월해진 게 맞는 건가?
어느새 이 도시에도 정신과가 많이 생겼는데, 코로나 이후로 예약하기가 힘들어졌다. 기본 한 달에서 길면 6개월, 거의 대학병원 수준이다. 어쩌면 포털의 리뷰 때문에 좋은 병원을 고르다 보니(리뷰가 좋은 병원) 그런 느낌이 든 걸 수도 있다.
아들은 약을 타야 해서 조금 악플이 있고 조금만 기다리는 병원을 선택하고, 리뷰가 좋은 병원은 별도로 예약을 해놓았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기존에 다니던 병원도 악플이 많이 있었다.
정신과라는 게, 한 번 발을 들이면 병원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이전 검사지가 있어도 병원을 옮기면 다시 같은 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검사비용이 적게는 5만 원에서 많게는 70만 원 정도 든다. 또한 이전 기록지도 가져와야 하고 누적된 증상을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사와의 라포형성도 무시 못한다. 그래서 처음 병원을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
이전 병원을 선택할 때는 아들이 상태가 안 좋아서 상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주로 약처방만 빠르게 하는 병원을 선택했는데, 이제는 상담을 좀 받고 싶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병원을 옮긴 후 4개월...
의사 선생님이 아들 증상이 '자폐스펙트럼'이라고 하신다. 의심가는 게 아니라 맞다고.
지금은 사라진 병명인 아스퍼거증후군에 가깝다고 하신다. 아스퍼거 포함 광범위 자폐성향을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한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스퍼거 카페에서 5년 동안 활동했고요. 그런데 병원에선 아니라고 해서....
- 어릴 때는 진단을 잘 하지 않아요. 지금은 성인이잖아요. 자폐 특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등급 받기는 힘들 거예요.
- 장애등급은 받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 정신은 멀쩡하니까요.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합니다.
- 약은 꼭 드셔야 해요.
- 본인도 약은 잘 챙겨 먹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초등 4학년 때 틱장애가 생겼다.
아는 지인이 소개를 해줘서 옆동네 정신의학과를 갔다. 서울대병원 의사출신이며 수도권 체인점이었다. 50여만 원을 주고(13년 전이니 꽤 비쌌던 것 같다) 검사를 했을 때 진단은 '틱장애'였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고 미술치료를 하라고 했다. 틱장애에 많이 처방하는 아빌리파이가 신약으로 처음 나왔을 때였다. 보험도 적용이 안되어서 약값이 2주에 12만 원 정도 들었다. 문제는 약값이 아니었다.
소량을 먹일 때는 틱도 좋아지고 예민함도 줄어서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약 먹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약을 올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이빨이 도망갔다.' 동생이 소파에 앉아있으면 '동생 발톱이 자신을 할퀴는 것 같다.'며 동생 발을 담요로 덮어달라고 요구했다.
한 밤에 의사에게 메일로 "약 부작용이 아니냐? 약을 줄이고 싶다."했는데
의사의 대답은 "그럴리가 없다."였다.
그럴리가 없다니...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병원을 왜 계속 다녔는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그 많은 검사를 다시 받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예약한 날, 의사 선생님에게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줄여달라 했더니 약을 줄이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당시 내가 논문을 좀 찾아봤는데, 정신과 약은 계속 올리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유지하다가 약을 줄이는 일종의 룰같은 게 있었다. 이후 10년이 흐른 후에는 그 방식이 모든 환우에게 적용되는 게 아닌지 그렇게 약 처방을 하지 않고 일반 내과약처럼 약이 효과가 있으면 그 용량으로 멈춘다.)
의사가 그게 맞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아마 6개월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이후 의사는 '할로페리돌'로 약을 바꾸었다. 이 약은 가장 오래된 조현병 치료제로 먹으면 그냥 잠만 자는 약이었다. 식욕도 좋아지고, 살찌고.(조현병 환우들이 약을 끊는 이유가 살이 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 조현병이나 틱장애, 충동조절제로 리스페달(리스페리돈)이라는 약이 있었고, 할로페리돌의 부작용인 수면욕구를 감소시킨 꽤 괜찮은 약이 있었는데, 왜 그 약을 처방해주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아들은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수업시간에도 잠만 자서 결국은 약을 끊고 서울대 병원만 기다렸다.
병원을 다니면서 시작한 미술치료는 계속 받았다. 샘과 라포 형성이 잘 안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자폐성향이라 그런 것을 미술치료 선생님도 몰랐으니 서로 답답해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병원 가기를 거부했는데, 그게 무슨 마법이라도 되는 양, 어르고 달래고 협박을 하면서 병원을 데리고 다녔다.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정도 가는 곳인데, 아들이 불안이 높았던 때라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을 잘 설명 못하는 아이이니 그냥 가기 싫다고 떼를 부렸고, 나는 "그 정도도 못 가냐고? 왜 싫으냐고" 화를 냈던 것 같다. 사실 비용도 꽤 비싸서 나는 나대로 짜증도 났다.
설상가상 8개월 만에 샘한테 마음의 문을 조금 열였는데, 샘이 출산을 하러 갔다. 그리고 미술치료샘이 없다고 놀이치료샘으로 프로그램이 바뀌었다.(그 당시는 이런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고 전문가도 많지 않았다)
놀이치료가 인지치료라는 것도 모른 채 아이를 맡겼는데 아이는 점점 안 좋아졌다. 인지치료라는 게 게임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사회성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놀이치료 샘은 그냥 말 안 듣고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아이쯤으로 보았는지 라포형성도 안된 상태에서 규칙만 강요했다.
결국 놀이치료 샘은 약을 먹이면서 치료를 해야한다고 상담을 거부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병원을 그만 두었다.
그 당시 아이가 자폐성향인 걸 샘들이 알았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맞는 심리치료를 했다면 좀 더 좋아졌을까?
지능검사에서 동작성지능과 언어성지능의 차이가 9점이면 아스퍼거로 진단을 한다는데 아들은 6점 차이가 났다. 그러므로 아스퍼거는 아니다. 자폐성향도 아니다. 그냥 불안에서 오는 틱이다. 이렇게 진단을 하면 끝인가?
아무튼 이후 동작성지능을 높이려고 배드민턴이랑 수영을 시켰고 수학 학원을 끊었다.
공부에서 멀어진 게 이때쯤인 것 같다. 그때는 초등 수학은 학원을 안 다녀도 잘하는 수준이어서 일단은 틱증상을 완화해야 했기에 학원을 안 보냈는데, 어쩌면 아이는 '내가 아프면 엄마가 학원을 안 보내는구나.' 이런 부정적효과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엔 자폐성향은 생각도 못했고, 아스퍼거를 의심했던 것도 사춘기가 왕성한 중1 때부터였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아들이 나를 이용한다, 골탕 먹인다, 말을 안 듣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늘 못된 소리 비난하는 소리로 아들 가슴을 후벼 팠다.
무식한 게 죄는 아니지만, "나는 좋은 엄마인데 네가 나빠!"로 일관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