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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주 Jul 07. 2024

현재4: 생각을 말하면 들어줘야 돼

아주 아주 짧은 방학


딸이 방학을 했다.

반갑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딸은 본가에 내려오고 싶겠지만 아들이 그 긴 시간을 허가해 줄지 의문이었다.

이제 3학년 1학기를 마친 딸은 아직도 사춘기 상태에 있었다. 늘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랑 있고 싶어 한다.

오피스텔에서 3년을 혼자 지낸 기간 동안 딸은 늘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는 듯했다.


아들은 처음 3일은 그런대로 잘 지내는 듯했다. 같이 산책도 가고 동생에게 말도 걸었다. 

내가 일을 하므로 딸은 집에 와서도 나를 따라 밖에 나와있거나 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딱 3일이었다. 아들이 참을 수 있는 시간은.

딸이 아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은 저녁시간뿐이었는데도, 아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딸이 언제 서울에 가냐고 닦달했다. 동생이 한 공간에 있는 그 자체로 불안하고 식은땀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 어쩌면 당연한 거야. 3년을 떨어져 살았잖아. 집은 오롯이 네 공간이었는데, 서영이가 있으면 불편하겠지. 네 마음 이해해. 서영이가 너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서영이도 3년을 떨어져 살았잖아. 가족 옆에 있고 싶지. 그러니 조금만 익숙해져 보자.

그렇게 매일 딸 모르게 아들을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지냈다.

딸은 엄마랑 같이 요가를 배우고 싶다, 회원권을 끊을까? 슬쩍 묻는다.

어차피 8월엔 신문사 일로 올라가야 하니 딸이 쉴 수 있는 시간은 7월 한 달. 그 시간을 딸은 엄마와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

- 엄마는 요가 힘들어. 산책이나 해. 엄마가 다음 주부터 강의가 많아져서 매일 나가야 할 것 같아. 서울에 언제........ 갈래?

차마 말하고 싶지 않지만 말해본다.

- 다음 주 화요일에 갈까?

그렇게 화요일까지 3일을 남기고 올 것이 왔다.

남편과 딸과 커피숍에 간 게 문제.

아들은 우리 셋이 어딜 가는 걸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가족에게서 왕따를 당했다고 말하곤 했는데, 본인은 나가기 싫으면서도 우리 셋이 나가면 극도로 불안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셋이 나가는 걸 피했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답답하다며 커피숍에라도 가자고 한 게 사단이었다. 

아들은 전화를 걸어 몸이 아프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신체화반응이 나타난다. 내가 일주일을 참아줬으니 서영이도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며 막무가내였다.

오늘은 일요일, 이틀만 있으면 딸은 즐겁게는 아니어도 스스로 서울에 갈 계획이다.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 오빠가 많이 힘든가 봐. 

유튜브를 보던 딸이, 웃던 딸이 침묵한다. 고개를 숙인다. 운다. 

예견했을 것이다. 늘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언제 아들이 서울 가라고 행패를 부릴지 몰라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있고 강아지들이 있어서 그 불안을 마음 한편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못 본 척했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했을 것이다. 날짜가 가면서 어쩌면 오빠가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감정이 서러움이 되어 폭발한다.

- 가긴 뭘 가! 무시해! 괜히 하는 소리야.

남편이 화를 낸다. 늘 당신이 문제야, 왜 말을 전해? 당신이 커트하면 되지, 당신이 다 받아줘서 그래.

그러 눈빛으로 남편이 바라본다.

- 정한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너희 둘이 3년을 떨어져 살았잖아. 서로 어색한 상태고. 네가 말 걸어도 받아주지도 않고. 아니,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또 딸의 역린을 건드린다. 네가 좀 살갑게 굴어주면 좋았잖아.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걸 참는다.

- 정한이가 이번에 일주일을 견뎠잖아. 늘 3일 정도 있다 갔으니 정한이한테도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정한 이 가 부탁을 할 때 들어줘야지. 다시 폭주하고 그게 무서워서 해결을 해주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그리고 결정권을 그 아이에게 주게 돼. 그러니 이번엔 그 아이 말을 들어주자. 갔다가 일주일 있다가 다시 오면 되잖아. 아니면 이모네 집에 있을래?

재작년에는 옆동네 사는 언니네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월부터 금까지 있다가 주말부부하는 형부가 금요일 저녁에 오기 때문에 금요일엔 서울에 갔다가 월요일에 내려왔다. 언니가 밥을 해주거나, 내가 반찬을 해서 날랐다. 저녁은 거의 남편이랑 사 먹었다. 

한참을 울던 딸이 가겠다고 한다. 이모네 집도 불편하다고.

- 마트에 들러 갈치 사가지고 가자. 엄마가 갈치 조림 해줄게. 바쁘다고 맨날 사 먹었잖아.

- 아니, 밥 안 먹어. 집에서 밥 먹기 싫어.

기차표를 끊고 집에 들러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한다. 소면을 만들었는데 아들이 거실에 나오니 방에 들어간다. 감자를 구워서 간신히 먹게 한다. 남은 감자랑 자두를 싸서 가방에 넣어준다.

역까지 가는 내내 딸은 말이 없다.

- 이대로 가면 엄마 속상해. 

딸이 간신히 웃는다. 엄마 잘못은 아니잖아. 받아들인다.

아들이 또 전화를 한다. 왜 안 오냐고?

딸의 기분이 또 나빠진다. 

- 엄마, 나는 내가 젤 불쌍한 것 같아.

- 그래, 일주일 있다가 와~ 빨래 곰팡이 났나... 도 보고. 습기 차서.....

딸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 엄마, 정한이가 뭐라 해서 서영이 서울 갔어.

- 할 수 없다. 그것도 서영이 팔자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팔자일 수도 있지. 그만 애들 떼어놔라. 네가 마음에서 떼어놔야 애들도 떨어진다. 언제까지 끼고 살래?

정말 내 문제일까?

아이들 마음을 알아준다고.... 자꾸 개입하는 게 아이들을 독립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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