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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없이사는사람 May 17. 2023

나의 독서 습관

집중력과 지구력은 떨어지지만 다독 욕심은 많은 사람의 독서 습관

나는 한 가지를 진득하게 오래 하질 않는다. 그래서 소위 드라마 정주행이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다. 온 나라에 열풍이 불었던 드라마도, 취향 저격인 긴 시리즈의 외국 드라마도 한 번에 몰아본 적은 없다. 매일 한 편씩 , 정말 재미가 있으면 두 편 정도 보는 스타일이다. 여러 편을 연달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야기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몰입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접해보고자 하는 욕심은 많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조금씩 읽는다


이러한 성향은 10대 때부터 자각하고 있었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바뀌거나 하진 않았다. 성격이나 성향의 단점을 일찍이 스스로 알고 있고 고치려고 노력은 하지만 100% 완전히 없애거나 할 순 없었다. 단지 100 정도의 성향을 80으로 내린다거나 다른 장점을 덮어 씌워 60 정도로 만들거나 하는 정도다. 아무튼 이러한 성향 덕분에 독서 습관도 비슷한 모양새로 든 거 같다. 나는 책 한 권을 몇 시간씩 읽어 하루 또는 이삼일만에 다 읽지 못한다. 그럴 경우 오히려 너무 많은 내용이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와 제대로 각인이 되지 않는다. 다 읽고 책에 대한 생각을 천천히 해보기도 전에 질려서 책장을 덮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책은 하루에 조금씩 정해진 분량만, 대신 조금 긴 시간에 걸쳐서 읽게 되었다.


이 경우 한 권의 책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삼주에 걸쳐 읽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날짜로 따졌을 때 남들과 비교하여 극히 적은 개수의 책을 읽게 된다. 그것은 나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뭐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걸 좋아하고 또 그 동시에 접하는 창작물을 비교해 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 보통은 3권, 많을 때는 동시에 4~5권의 책을 읽은 적도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권 당 욕심내지 않고 적당량을 나눠 읽어야 하다 보니 책을 읽는 장소와 시간도 각각 달라졌다.


나름의 규칙은 있다


- 출퇴근 시간 또는 장소 이동 시간은 가볍고 무난한 내용의 책을 읽는다. 주로 장르 소설이다.

- 화장실에 볼일 보러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불행히도 나는 활자 중독이기 때문에 책이 없으면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책을 들고 간다. 대신 언제 덮어도 되는 에피소드 형식의 웹툰이나 한 장이 몇 페이지가 되지 않는 에세이류, 또는 실용서적을 읽는다.

- 제일 시간을 넉넉히 많이 쓸 수 있는 낮 시간, 또는 주말 오후의 한가한 시간에는 진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인문, 과학, 사회, 철학 분야의 책들을 읽는다. 소위 말하는 두꺼운 무기 같은 책들. 또는 초반 적응이 필요한 외국 문학을 읽는다. 예를 들면, 지금 읽고 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같은. 

- 자기 전에는 진지한 분위기의 소설 또는 실용서적을 읽는다. 소설은 읽다가 여운을 느끼며 잠들기 좋고, 실용서적은 졸릴 때 언제든 덮을 수 있다. 


이렇게 시간대에 따라 분류를 하기도 하고 또는 나의 일정에 따라 책을 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월, 수, 금 학원을 간다던지, 매주 2번 병원을 간다던지 할 때, 가는 길에 읽기도 하고 가서 대기 시간에 읽기도 한다. 


내용이 헷갈리지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인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애초에 동시에 읽을 책을 선택할 때, 분야나 장르를 다양하게 선정해서 읽곤 한다. 읽을 책을 골라 조합하는 것 자체가 책을 읽기 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아주 가끔 우연히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동시에 읽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즐거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문체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 등에서 작가 별 차이점을 비교해 가며 읽으면 그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매번 정해진 시간, 장소를 정해서 읽다 보니 그 시간이 도래하거나 장소에 있게 되면 벌써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오히려 몰입하기에 좋다. 물론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이러한 규칙들을 무시하고 읽고 싶을 만큼 더 읽기도 한다. 당연히 강제되는 규칙은 아니며 독서의 즐거움이 무엇보다 1순위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잘 끝내는 방법


이렇게 읽어 하나의 책이 끝나면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여 기록하고, 만약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고 겉돈다면 한 번 더 읽기도 한다. 대신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빠른 속도로 읽는 편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 이해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자주 멈출수록 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끝까지 다 읽고 바로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았다. 물론 처음 읽을 때 메모가 필요하거나 꼭 다시 체크해 봐야 할 부분이 있으면 표시를 해놓는다. 나는 포스트잇을 한 장 해당 줄에 붙이는 것을 선호한다. 다 읽고 포스트잇이 여럿 달려있는 책을 보면 뿌듯하다. 표시해 둔 부분을 나중에 찬찬히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해석과 감상이 내 머릿속에 저장 완료될 때 포스트잇을 한 장씩 떼어내는 것도 기분이 좋다. 


6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다 읽었는데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책의 내용에 흥미가 있어 어떻게든 소화를 하고 싶다면 위의 방법대로 몇 번 더 읽는다. 필요한 경우 다른 사람의 감상문을 읽어 보거나 해설을 찾아보는 식으로 외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었는데도 영 재미가 없거나, 미처 한 권을 다 읽기 전에 뒷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그만 읽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왜 읽다 말았는지를 기록해 두고, 아주 나중에 다시 호기심이 생길 때 읽는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보니 유치함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일반 책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가슴을 저리게 했던 감성이 지금은 무향무취일 수도 있고, 어릴 때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활자만 읽었던 이야기가 지금은 마치 내 얘기인양 공감할 수도 있다.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그에 비해 인생은 짧다. 알맞은 타이밍에 나에게 잘 맞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죄책감 느끼지 말고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린다. 




서두에 얘기했듯이 영상도 마찬가지다. 보고 싶은 시리즈가 여럿 줄 서 있다면, 매일 한 편씩 여러 작품을 동시에 본다. 스릴러 장르의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면 미드를 한 편 보고, 그다음엔 코미디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한 편 본다. 이런 식으로 머리를 리프레시해 가며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곤 했다.


나의 방식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방법이라서 소개한 다기보단,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려운 사람이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고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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