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도 목표가 있으면 계획을 세워서 해보자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휴식도 필요했지만, 일 때문에 체력과 열정을 모두 뺏겨 한 동안 하지 못 했던 취미 생활을 본격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벗어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앞서 글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몰입과 절제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보니 제대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무엇이든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 것 같았다. 좋아하는 취미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해 내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니 엄청나게 대단하진 않더라도 달성하면 뿌듯할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목표를 정한다
계획을 세운다
실행한다
실행한 결과에 대해 회고하고 개선된 방법으로 다음 계획을 실행한다
쓰고 보니 뻔하디 뻔하지만 이 것들이 조화롭게 순차적으로 진행이 되면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이다.
✅일단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았다.
창작 소설을 써 본다
죽어 있는 블로그를 활성화한다
하나의 완성된 일러스트를 그려본다
악기 연습을 꾸준히 한다
사놓고 읽지 않은 종이책을 읽는다
✅나열된 것에 구체적인 목표를 부여해 보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D-day까지 정한다.
창작 소설을 써 본다 → 연재 플랫폼에 글을 올리고 완결까지 낸다. (1~2개월 내)
죽어 있는 블로그를 활성화한다 → 블로그 용 글을 써서 브런치 작가가 된다. (2주 후)
하나의 완성된 일러스트를 그려본다 → 팬아트 공모전에 일러스트를 완성하여 제출한다. (공모전 마감일까지)
악기 연습을 꾸준히 한다 → 곡 하나를 마스터하여 악기 동호회 카페에 연주 영상을 올린다. (2개월 내)
사놓고 읽지 않은 종이책을 읽는다 → 매일 책을 읽고 감상을 작성한다. (제한 없음)
저 목표들을 달성하더라도 내가 작가가 되거나 일러스트레이터나 연주자가 되진 않는다. 다 자기만족이다. 그래도 평소에 할 엄두도 못내던 일들을 해 볼 시간도 생겼고 도전해 볼 구체적인 목표까지 있으니 일단 해보기로 했다.
✅목표 별로 달성을 위한 작업 단계를 크게 나눈다.
각 단계 별로 완료되어야 할 세부 목표를 정의한다. 그리고 필요한 일정(m/d)을 추가한다.
각 목표 별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순서대로 거쳐야 할 단계를 나누고 각 단계마다 달성해야 할 세부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대략의 일정을 산정해 보았다. 기존의 작업 일정 자료를 가지고 산정된 것이 아니므로 D-day를 기준으로 일정을 정하되 일정이 반드시 지켜져야 되는 것을 우선순위 1위로 하고 나머지는 변경될 수도 있음을 확인한다.
예를 들면, 일러스트 그리기의 경우 아래와 같이 정했는데 이것은 프로 작가의 방법이 아님을 다시 강조한다. 일할 때 따라야 할 프로세스가 있었을 것이다. 보통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 사이에 각 단계가 있고 단계별로 여러 직군이 해야 할 일들이 정의된 프로세스가 있다. 그것과 비슷한 형태로 내가 해야 할 일감을 적어 본 것이다.
단계 1 - 구상하기
- 세부목표 1 - 주제, 인물, 배경, 분위기 구상
- 세부목표 2 - 인물의 의상, 포즈 등 상세 구상
- 세부목표 3 - 구도, 의상, 배경에 대한 자료 조사
단계 2 - 밑그림 그리기
- 세부목표 1 - 러프 2-3개 정도 작성
- 세부목표 2 - 마음에 드는 러프 골라 스케치하기
- 세부목표 3 - 스케치 바탕으로 밑그림 상세하게 그리기
단계 3 - 채색하기
- 세부목표 1 - 명암, 컬러 톤 정하기
- 세부목표 2 - 채색하기
- 세부목표 3 - 디테일 추가하기
단계 4 - 마무리
- 세부목표 1 - 보정과 편집
- 세부목표 2 - 공모전 홈페이지에 업로드하기
✅상세 계획을 작성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날짜와 결합하여 계획을 세울 때가 왔다. 아무리 백수라지만 저 5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일주일 내내 달릴 생각은 없다.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하루 8-10시간 동안 작업을 하고 주말은 버퍼 시간으로 남겨두거나 휴식을 할 생각이다.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스터디 플래너를 하나 샀다. 먼쓸리, 위클리, 데일리 순서대로 몇 달 동안 쓸 수 있는 분량의 페이지가 있다.
우선 먼쓸리 페이지를 작성하였다. 우선 해당 월에 완료되어야 할 목표의 상태를 간략히 쓴다.
각 목표의 D-day를 기준으로, 각 단계를 수행할 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달력의 주 단위로 해당 주에 진행해야 할 단계와 세부목표 목록을 작성해 넣었다.
4월 한 달간의 목표: 일러스트 채색 전 스케치까지 완료한다
1주 차 목표: 단계 1 - 세부목표 1, 2
2주 차 목표: 단계 1 - 세부목표 2, 3
3주 차 목표: 단계 2 - 세부목표 1, 2
4주 차 목표: 단계 2 - 세부목표 3
한 주가 시작하기 전 날 위클리 페이지를 작성한다.
이미 앞 단계에서 해당 주에 진행해야 할 세부목표가 정해져 있으므로 그대로 세부 목표를 작성해 넣는다. 세부 목표가 여러 개일 경우 5일을 적당히 배분하여 써넣기도 한다. 원래 데일리 단위까지 세부 목표를 정해 놓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너무 빡빡한 계획을 세우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주단위 기준으로 세부목표를 수행하기로 했다.
데일리 페이지는 매일 아침 작성한다.
데일리 페이지는 그날 아침 세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액션아이템을 작성하였다. 예를 들어 '3-2. 채색하기' 세부목표 수행 중이라면 데일리에는 ‘인물 A, B 채색, 배경의 나무 채색’ 이런 식으로 그날 완료해야 할 것들을 자세히 쓴다.
한마디로 말해 TO DO LIST다.
각 목표 별로 이렇게 세분화해서 작성한다면 데일리 투두 리스트는 금세 개수가 확 늘어난다.
맨 처음 제시했던 5개의 목표를 동시에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면 어떻게 사냐고 의문이 들 것이다. 합리적인 의문이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목표 간 우선순위를 따져, 빠른 작업이 필요한 목표는 매일, 덜 중요하지만 마감은 정해놓은 목표는 월수금, 조금 더 느슨한 목표는 일주일에 1~2일 정도 이렇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량을 고려하여 배분하였다.
✅계획을 세웠으면 실행한다.
그냥 즐겁게 하면 된다.
✅작업에 대한 기록을 한다.
매일 아침 계획을 세우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자기 전 플래너를 업데이트한다.
투 두 리스트의 체크 표시는 작업이 완료될 때마다 해주되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업데이트해 주는 작업을 한다. 플래너는 항상 책상 위에 그날의 페이지를 펼쳐두고 메모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다 썼던 것 같다. 습관이 되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 글씨나 형식은 모두 내가 정의하기 나름이니 부담 갖지 않고 무조건 쓰도록 한다.
자, 이제 데일리 플랜을 쓰기 시작했으면 매일 아침 나 홀로 스탠덥 미팅 Standup Meeting을 한다 생각하고 이 컨셉에 집중해보자. 어제 있었던 이슈와 그에 대한 해결방안, 그에 따른 오늘의 할 일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반영한 투 두 리스트를 쓴다. 하루가 끝날 때는 리스트의 체크 결과를 보고 달성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원인과 해결책을 작성해 넣는다.
✅주기적인 회고 POSTMORTEM를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일정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는 받지 않기로 했다. 이 계획은 내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목표를 달성해 나가고 있는지 체크하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지 절대 스트레스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친구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오후 시간을 통으로 보내는 날도 있고 병원을 가거나 리프레시를 위해 외출을 하는 날도 있다. 모자란 시간만큼 밤 시간을 조금 더 쓰거나 아니면 주말에 짬을 내어 보충을 한다. 이렇게 미리 조절할 수 있는 스케줄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저장 버튼을 눌렀으나 브런치 세션 만료로 추정되는 오류로 인해 하루 동안 작성한 글을 모두 날렸다. 그날은 허탈함에 내 글을 쓰진 않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멘탈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획이 틀어지면 왜 틀어졌는지 원인을 파악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그냥 잊고 다음 계획을 수정한다.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면 다음부터는 똑같은 문제로 인해 곤란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주 단위, 월 단위로 회고를 하면 좋다. 주 단위로 할당된 세부목표가 달성이 되었는지 어떤 이슈가 발생해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엊지 못했는지, 이를 복구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생각하고 플래너에 글로 정리해 본다. 어렵고 특별한 일 같지만 매일 기록을 잘해두었다면 30분도 안 걸리는 일이다.
그리고 나 홀로 하는 회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회고를 하다 보면 지난 계획과 수행 결과를 보며 왜 이것밖에 못 했지, 왜 했는데도 퀄리티가 이 모양이지, 이런 아쉬운 점을 늘어놓는 자아비판, 반성의 시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과연 이 일을 완수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점에 대해 보완하고 개선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지 스스로 못났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못한 일에 집중하면 앞으로의 계획이 무거운 짐이 되고 의지도 떨어진다. 그러니 아쉬운 점보다 더 많이 잘했던 점을 스스로 칭찬해 준다. 내가 한 일을 곁에서 보고 잘된 점에 칭찬을 하거나 아쉬운 점에 위로해 주거나 추가적인 개선 의견을 주는 직장 동료와 상사가 없으니 내가 그들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계획했던 것 중에 이만큼이나 했네, 처음 시도해 보는 작업인데 그럭저럭 쓸만하게 잘 나왔네, 등등 영혼까지 끌어모아 잘한 건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기뻐하면 그 힘으로 또 다음 주를 열심히 달릴 수 있다.
❕투 두 리스트 작성하는 방법
목표에 대한 투 두 리스트는 명확하지만 나는 그날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소한 것들까지 추가로 다 적는 편이다. 공과금 납부, 쓰레기 버리기, 빨래 돌리기, 친구와의 약속, 부모님께 연락하기, 게임 어디 어디까지 하기 등등.
하루의 투 두 리스트는 보통 목표에 대한 액션 아이템 2개 정도에 나머지는 일상적인 것들 6~8개 정도이다. 물론 전체 리스트 중에서 목표에 대한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간단하게 리스트 옆에 ★ 표시를 해두었다.
할 일을 완수하고 체크 표시를 해나가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자 동력이 된다. 마치 게임에서 일일퀘스트 받아 놓은 목록을 모두 완료하여 반납하고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완수한 날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좋은 기분이 내일도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게 된다.
❕반복적인 일은 루틴으로 만들기
투두 리스트와는 다르게 반드시 해당 날짜에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습관처럼 하면 좋은 일들은 어떻게 할까?
나는 루틴을 만들었다. 안 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마치 아침에 세수를 하는 것처럼 습관화되면 좋은 일들을 하나의 타래로 묶어서 실행을 한다.
아침 루틴은 아래와 같다. 익숙해지니 아침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다 하는데에 1시간도 안 걸린다.
일어나면 베란다 커튼을 걷고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아 명상을 하며 잠을 깬다. 마사지 볼을 밟아 발바닥 마사지를 하고 다친 어깨를 위한 재활 스트레칭을 한다.
물 한잔과 유산균을 먹는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머리를 말리면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다.
플래너에 오늘의 투두 리스트를 작성한다.
낮의 루틴은 다음과 같다.
30분 정도 목표한 책 읽기
30분~1시간 악기 연습
동네 산책하며 6천보 정도 걷기
5개의 목표 중 책 읽기와 악기 연습은 차라리 매일 루틴에 넣는 것이 더 좋을 거 같아 루틴화 하였다.
낮의 루틴 실행은 투 두 리스트를 수행하는 중에 잠깐 환기가 필요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한다.
자기 전 루틴은 다음과 같다. 취침 시간을 지키기 위해 자기 전 루틴은 정해진 시간에 했다.
샤워하기
유튜브 동영상 보며 홈 요가 또는 스트레칭하기
벽에 다리 올려 붓기 풀어주기
루틴 자체가 강제성은 없으므로 그날그날 되는대로 수행을 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다른 일로 시간을 많이 썼다면 스킵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그다음 날은 이변이 없다면 루틴을 지키려고 했다. 어딘가에서 보니 무조건 14일 정도만 꾸준히 하면 습관으로 만들기가 쉽다고 한다. 나도 매일 아무런 거부감 없이 기계처럼 하는 경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지만, 정해진 시간에 루틴을 수행하니 귀찮아서 잘하지 못했던 스트레칭도 최소 일주일에 4회 이상은 하게 되었다.
거창하게 글을 쓰고 말았는데 어쩌면 다른 이들은 이미 다 이렇게 시간관리를 하며 스스로 일을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냥 휴식을 하는 것이 퇴사의 목적이었으면 이런 시도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특별한 목표가 있었기에 회사 업무처럼 계획을 세워 실행해보고자 했던 시도의 후기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게다가 채찍질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한 없이 게으르고 그 게으름의 결과가 불쾌한 자기혐오로 빠지게 되는 인간, 집중력이 떨어져서 뭔가를 시작하더라도 금방 손을 놓고 미루는 인간을 잘 다독여 일이 진행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나온 방법이었다. 스스로의 단점을 너무 잘 알고, 그 단점을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래도 어찌어찌 잘 굴러가지 않겠는가. 게으름뱅이 자아가 있으면 그 게으름뱅이를 다독여서 움직이게 하는 자아가 있다. 이 후자의 자아가 좀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기 위한 수단이었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물론 목표 자체의 재미도 중요하다.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는커녕 하는 게 괴롭고 힘들다면 과감하게 목표를 백지화하고 다시 한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사무실로 출근만 안 하지 재택 근무하는 사람처럼 생활해 보니 밤에 잠도 잘 오고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잘하고 있다. 회사와 달리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시간 소모도 없으니 내 일에 집중하여 하기도 좋다. 아직까지는 목표롤 향해 달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즐거운 시간이다. 목표가 하나씩 달성이 될 때마다 후기 글을 또 작성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