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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바람이 들어온다. 마치 누군가 낡은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방향을 바꾼다.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는 건 내 감정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창문 앞에 앉아 조용히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차이를 읽어낸다.
감정의 결, 마음의 온도, 그 조용한 움직임을.
그런데 어느 날 밤 달빛이 이상했다.
예전처럼 방안을 은은하게 채워주지 못했다.
달은 분명 떠 있었지만 그 빛은 메마르고 낯설었다.
'왜 이렇게 밋밋하지'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가 그제야 알았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그 가로등은 한동안 고장이 나 있었는데 어느새 수리가 되었고.
그 밝은 불빛이 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본 달빛은 단지 달의 빛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어둠과의 조화. 정적 속에서도 빛나던 고요였다.
가로등 불빛이 달빛을 이겼고, 달빛은 예전의 맛을 잃었다.
뭔가를 더 갖게 되면 종종 이전의 소중함을 놓치게 된다.
어둠이 밤을 더 빛나게 하는 것처럼 적막이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드는 밤.
다시 창을 연다. 바람은 또 방향을 바꿨고 달빛은 여전히 조용하다.
가로등 아래에서도 언젠가 다시 그 달빛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조용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