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소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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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넌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같이 세심한 성격이야."

어릴 적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우면서도,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사실 나는 조용하고 섬세하며, 다소 소심한 성격이었다. 먼저 나서서 말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형제들과 다툼이 생겨도 나는 늘 먼저 사과했다. 혹시라도 동생의 마음이 다칠까 걱정되어, 내 감정보다 남의 기분을 먼저 살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우리는 ‘오 부자'’였다. 아버지와 네 형제까지, 집안은 늘 왁자지껄했다. 장난감 하나를 두고도 경쟁이 붙었고, 밥상머리에서는 젓가락 소리만으로도 다툼이 오갔다.


나는 그중 둘째였다. 맏형처럼 믿음직하지도, 막내처럼 귀엽지도 않은 어중간한 자리. 그래서였을까. 나는 더 조심스럽게, 더 조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가끔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네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이 집안에 여자 하나 있었으면, 살림도 거들고 얼마나 좋았을까."


그 말이 서운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말은 나를 향한 섭섭함이 아니라, 고단한 삶 속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한숨 같은 것이었다. 네 아이를 혼자서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초등학교 시절, 나는 종종 여자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저 함께 웃는 것이 좋아서,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 했을 뿐이다. 집에서는 설거지를 도왔다.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면 물 묻은 손으로라도 그릇을 닦았다. 형은 “남자가 무슨 설거지냐”며 놀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장남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원하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법적으로도 장남이 된 나는 이제 가족의 큰형이자 기둥이 되어야 했다. 동생을 챙기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책임지는 일이 나의 몫이 되었다.

그런 책임은 나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소심하다는 이유로 물러설 수 없었고, 섬세한 성격은 오히려 가족의 마음을 더 깊이 살피는 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되면서 내 성격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더 큰 변화를 겪었다. 스무 명이 넘는 소대원을 통솔하는 '내무반장'을 맡으며 리더십을 배웠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도 곧잘 했다. 정해진 규율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따르기도 했지만, 부끄럽고 소심한 나에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이후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성격은 더 유연해졌다. 지금은 가끔씩 강연도 한다. 대중 앞에서 나의 생각과 살아온 경험을 과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한편으론,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섬세함’ 덕분에 지금은 ‘글쓰기’에 빠져 지내고 있다.


소심함은 마치 하얀 도화지 같다고들 한다. 조금만 떼가 묻어도 금세 표가 나고, 자주 상처받고 흠집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하얀 도화지보다 적당한 회색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소심하면 안 되지. 남자답지 못해.”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소심함이 정말 여자만의 성격일까? 성격은 단지 사람의 결일 뿐, 남녀를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조용하고 섬세하며, 때로는 소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늦게서야 알았다. 그런 성격이 ‘남자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다운’ 것이라는 걸.

아주 가끔(?)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가 있다.

"남자가 왜 이리 소심한 줄 몰라"

그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다 장단점이 있는 거야,

그러니 함부로 예단하지 마"

내 성향을 이해해주길 나는 읍소한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는 아내는 늘 이해가 어렵다는 표정이다.

"남자니까 이래야 한다"는 말보다,

"너는 너라서 좋아"라는 말을 해주면 좋을텐데


누구나 저마다의 결이 있다. 소리 없이 주변을 살피고,

상처받을까 조심스레 망설이는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배려가 되고, 따뜻한 울림이 되지 않을까


재미삼아, 요즈음 트렌드인 성격유형 테스트를 해봤다. 그 결과 ' ISTJ'인 듯하다

그러면 어때. 나는 지금 나의 삶의 방식이 좋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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