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진이네 Oct 19. 2023

사진을 찍는 이유

여행을 갔다 오면 기념품과 쇼핑한 것들 못지않게 많은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자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온다. 똑같은 사진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 똑같은 사진들 중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하는 것은 왜 이렇게 또 힘든지. ‘사랑과 전쟁’이 아니라 ‘사진과 전쟁’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사진을 남기는 걸까.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왔지만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5월에 가족여행으로 캐나다를 다녀왔다. 밴쿠버→재스퍼→밴프→밴쿠버 이렇게 한 바퀴 도는 여행이었는데 역시나 다이어트시켰던 사진첩에 요요현상이 왔다.


캐나다 로키 산맥 중 밴프(Banff)라는 곳을 가면 밴프 곤돌라를 탈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걸 타고 올라가면 산 아래 마을 전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장관이다. 보통은 그런 곳에 가면 열심히 사진 찍고 내려오기 바쁜데 그날따라 아주 작은 사이즈의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 전광판에는 5분 뒤에 영화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었다. 길이는 대략 15분. 와 본 김에 뭔지 한 번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짧은 영화를 통해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진을 찍는 이유는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그 순간의 모습들과 내가 뭘 했고, 뭘 먹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사진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진 찍는 이유 첫 번째.

다양한 사진들을 통해 서로의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 똑같은 곳에 있더라도 사람마다 찍는 스타일이 다르고, 찍는 대상이 다르다. 때문에 서로 다른 사진을 보고 서로의 다른 시각과 관심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별 거 아닌 얘기 같아도 누군가의 사진이 그의 시선을 대변한다는 생각까지는 잘 못해봤던 거 같다. 그동안은 사진을 보고 “오 잘 찍었네, 이쁘네?” 정도의 감상평이 다였다. 그런데 영상을 보고 나니 다른 사진을 보며 ‘이 사진은 왜 찍었을까? 이 사람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이 사진을 찍었을까?’라는 질문들을 조금씩 해보게 된 것 같다. 사진이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찍힌 결과물이라는 인식을 넘어 찍은 사람의 시선과 의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니 사진에 조금 더 폭넓게 접근할 수 있는 시도를 해 볼 수 있게 된 거 같다.


둘째, 추억하기와 비슷한 맥락인데 사진을 통해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쉬운 예로 우리가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옛날 8,90년 대의 모습들을 알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를 지키신 독립운동가분들의 모습을 알 수 있었을까. 영화에 보면 독립운동가분들은 중요한 일을 하기 전 사진을 남기셨다. 단순히 기념하기를 떠나서 그 당시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가 그들과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사진을 남긴 것은 아닐까. 사진이 없었다면, 우리가 공룡시대의 모습을 추측만 하듯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고, 앞으로도 기억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앞으로 ‘눈’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로키 산맥의 눈들이 조금씩 녹아 없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해하고 추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진을 그렇게도 많이 찍는 것일지 모르겠다. 보통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나도 의도치 않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사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나의 사진첩은 불어난 몸무게에 허덕이고 있다. 사진첩을 불리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도 많이 담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기억도 할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Kelly Sikkema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마라톤이란 비유가 지겨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