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지난해 4월, 민주당은 몇 가지 쟁점적인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기행과 꼼수를 사용해 민주적 절차를 생략했다.*1) 당시 야당의 요구에 의해 설치된 안건조정위원회는 국회법에 따라 다수당 소속 의원 3명과 이에 속하지 않은 의원 3명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하지만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자당 소속 의원인 민형배를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후에 법제사법위원장으로 하여금 그를 비교섭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하도록 하여 실질적으로 4명을 위원직에 앉혔다. 민형배는 형식상 무소속이었을 뿐, 사실상 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렇게 위원회가 기립 표결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정치적 곡예가 주는 놀라움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충격을 주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ㅤ야당 의원들은 이처럼 다수당이 주도한 회의 진행이 반대자의 심의권과 표결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배된다는 법적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어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위헌확인청구를 인용했다.*2) 다만, 재판소가 무효확인청구를 기각하여 결과적으로 법안의 의결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재판소의 결정은 관여 재판관들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지만,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이미선 재판관이 표면적으로는 결정권(casting vote)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각 쟁점마다 다른 의견을 밝혔는데,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결정할 때는 위헌의견을 냈고, 효력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유효하다는 편에 섰다. 이러한 태도는 일부 사람들의 눈에 정파적 이해나 기회주의로 비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종래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답습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입법 절차와 관련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위헌확인 결정을 내린 적은 여러 차례 있으나,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무효화한 적은 없다.
ㅤ사건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이번 결정에 대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헌법재판소를 비난했다.*3) 그러나 이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굳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술은 마셨지만 면허취소 기준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말에 가깝다. 음주운전을 판단할 때는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중요한 척도로 고려된다. 이 사안에서 위헌ㆍ무효의 측정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그것은 심각한 정도의 문제였을 것이다. 위헌의견에 가담한 재판관 5인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의 법률안 가결선포 행위가 무효로 선언될 만큼 중대한 잘못인지 검토했다. 이는 말하자면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행동이 법률에 위반되는지와 별개로 그 의도, 수법, 정황 등을 고려하여 불법성을 평가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결과 무효확인청구에 대해 재판관 4명은 인용의견에, 5명은 기각의견에 표를 던졌다.
ㅤ하지만 국가기관 상호간 쟁송인 권한쟁의심판의 특성상 사안이 지닌 “심각성”은 세간의 주된 관심사였던 법률(소위 “검수완박법”이라 불린 입법) 그 자체의 당부當否보다 청구인인 야당 국회의원의 권한이 침해되었는지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물론 재판관들이 전적으로 야당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에만 관심을 두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가령 재판관들은 “이 사건 권한 침해 사유는 단순한 국회법 규정을 위반한 것을 넘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훼손한 것으로 헌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4) 이 같은 언급은 단지 야당 국회의원의 권한이 침해되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또한, 별도로 의견을 낸 이선애 재판관은 결정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피청구인들의 이 사건 가결선포행위에 대해서는, 국회의 입법관련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의회제도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본질적으로 부인하는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5)
ㅤ이러한 주장들은 심층적인 부분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별 국회의원의 권한으로 표현된 헌법상의 원리들이다.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거론하면서도 그 배후에 놓인 조건을 전제했다: “헌법상 다수결원칙은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 이전에 합리적인 토론과 상호 설득의 과정에서 의사의 내용이 변동되거나 조정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 의원들에게 실질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의 기회가 부여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6) 이 전제는 다수결이 공정한 절차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이다. 과거 유사한 사안에서 일부 재판관은 이러한 조건이 지닌 민주적 의의를 설명한 바 있다.
“국회는 국회의원 전원으로 구성되는 회의체(국회)에서 심의(제안ㆍ질의ㆍ토론)와 표결을 거쳐 다수결로 국회의 의사를 결정하여 법률제정권을 행사하고, 국회의 심의와 표결을 거쳐 결정된 국회의 의사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로 간주되고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와 기준으로 된다. … 국회의 의결이 대의효과(代議效果)의 부여에 필요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상 … 모든 국가작용과 국민들을 기속하는 대의효과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7)
ㅤ이처럼 사안을 단순히 국회의원들 사이의 권한을 둘러싼 다툼으로 여기지 않고 입법 과정에서 공정한 절차에 따랐는지를 평가하는 일로 본다면,*8) 다수당의 독단적인 의사진행의 효력을 확인하기 위한 기준은 궁극적으로 정당성(legitimacy)과 관련된다. 우리는 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준수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민주주의의 대답은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배한다는 의미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적인 정부가 정당성을 주장하고 강제력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자기 지배는 정서적으로 강력한 믿음이며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 대통령이나 총리의 행정명령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왕권신수설의 현대적 버전을 제안한들 누구라도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ㅤ정당성은 정도의 문제다.*9) 법률안이 실제 법률로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한 법위반은 장차 제정될 법률의 정치적 정당성을 감소시키지만, 그 수준은 미미하거나 중대할 수 있다. 만일 법률이 유효하게 성립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정당성의 훼손이 심각하다면, 그 법률을 적용하려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뿐더러 정부는 시민들이 이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 곧 정당성의 손상이 보잘것없을 정도로 경미하다면 결함 있는 절차에 의해 “오염된” 법률이 그에 대한 불복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25만여 표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선거에서 열몇 표가 사실 부정투표였다고 해서 그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ㅤ그러나 법적 안정성, 국회의 자율권, 정치적 형성권 등 여러 정당화 사유를 고려하더라도 정당성의 손상된 부분이 치유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심판청구가 5 대 4로 기각되었든 8 대 1로 기각되었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헌법재판소는 세간에서 “입법독주”라고 지탄을 받았던 다수당의 의사진행이 무효는 아닐지언정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우리는 자유의 부분적 손실을 뜻할지도 모르는 꺼림직한 느낌을 훗날 청산해야 할 빚으로 남겼고, 이 같은 상황은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듯 의회에서 절반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보유한 다수당은 소수당의 반대를 우회하고자 지속적으로 기행을 일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걱정거리는 아니다. 우리는 현재 민주당을 공격하는 보수당(국민의힘)조차 과거에 이른바 “날치기” 사건을 일으켜 비난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10)
ㅤ사람들은 ― 특히 선거철이 가까워질 때마다 ― 나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이들이 지배적 다수를 차지해서 향후 몇 년 동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우려한다. 그러나 위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거 이벤트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심리적이기보다는 실체적이다. 나의 정치적 도덕적 지위가 다수의 손에만 맡겨져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다수에게 그런 권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동등한 존중과 보호를 받을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은 복종할 뿐 지배할 수 없다. 발언권을 빼앗긴 이들이 잃을 것은 목소리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인민(we the people)”으로서 자치라는 공동의 과업에 참여할 기회를 부분적으로 상실한다. 헌법은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만일 헌법이 그것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가 막아야 한다.
Mar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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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또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최초발행: Mar 23, 2023)
1) 강경석, “민주, 탈당 민형배로 안건조정위 무력화… 8분만에 법사위 표결,” 동아일보 (2022년 4월 27일), A3면
2) 헌재 2023. 3. 23. 2022헌라2
3) 강병수, “與, "헌재 결정은 황당한 궤변…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 아니라고?",” KBS (2023년 3월 23일)
4) 헌재 결정(주2)
5) 헌재 결정(주2)
6) 헌재 결정(주2)
7) 헌재 2009. 10. 29. 2009헌라8등 [판례집 21-2하, 14, <82ff>]
8) 입법 절차의 공정성을 따지는 것이 국회 내부 기관 간의 권한쟁의심판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경우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권한쟁의심판에서는 입법의 공정성을 다룰 일이 없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무효로 결정한다면 그 의결사항인 법률도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인지가 문제시된다. 다만 이 점은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9) See Ronald Dworkin. Is Democracy Possible He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p.97
10) 이와 관련해서는 헌재 1997. 7. 16. 96헌라2, 판례집 9-2, 154; 헌재 2010. 12. 28. 2008헌라7등, 판례집 22-2하, 567; 헌재 2011. 8. 30. 2009헌라7, 판례집 23-2상, 220; 헌재 2009. 10. 29. 2009헌라8등, 판례집 21-2하, 14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