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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0. 2023

재판관 후보들

ㅤ지난 며칠간 국회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헌법은 대통령이 각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하되,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 이번에 이루어진 재판관 지명은 대법원장의 몫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김형두 판사와 정정미 판사를 후보자로 지명했다. 최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을 향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특정한 법률가 모임에 속한 이들은 최종 지명자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특정 단체의 회원이 법원 내의 요직을 독식한다는 비판은 다소 정치적인 맥락에서 읽히는 감이 없지는 않으나, 정파를 떠나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ㅤ이번 청문회에서 부각된 쟁점은, 유감스럽게도, 재판관 후보자의 철학보다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이른바 “검수완박”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에 집중되었다. 물론 그와 관련된 내용도 후보자가 가진 철학을 엿볼 기회를 제공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과도할 정도로 반복되고 때때로 기출문제의 변형을 보는듯한 비유적 질문들은 식상함을 주는 것을 넘어서 청문회 자체의 품격마저 떨어트리는 것으로 비칠 정도였다. 게다가 더욱 못마땅했던 점은 후보자들의 틀에 박힌 대답이었다: “그건 제가 답변드리기가 조금 곤란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곤란했을까? 후보자들은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자기 견해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라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ㅤ국민을 대표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헌법재판관 지망생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헌법에 충성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순명하고자 하는 헌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보자들이 자기 철학을 숨기는 동안 시민들은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공적 토론과 심사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시민들은, 그들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통해서, 어떠한 법철학과 인식을 가졌는지 한치도 가늠할 수 없는 이들이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에 동의해야만 했다. 나는 이전에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의 전조는 법관이 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숨기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2) 이는 판결문을 쓸 때뿐만이 아니라 청문회장에서 답변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연신 “죄송합니다. 답변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말로 질문에 대답하기를 얼버무렸던 후보자가 지적받았듯 재판을 할 사람이 결정문에 “죄송하다”라고 쓸 수는 없다.*3)


ㅤ후보자의 철학을 느낄 수 있던 대목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최강욱 의원은 본인이 전직 군검사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게끔 날카로운 질문으로 김두형 후보자를 압박했는데,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장면을 놓칠 수 없었다. 청중을 사로잡은 데에는 질문 자체가 특별했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이보다도 후보자의 답변에 우려되고 경악할 만한 부분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4)


○ 최강욱 위원

: 후보자님,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책 제목.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예.


○ 최강욱 위원

: 원제는 아니었지만 적절한 번역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뭘 칭하는 거죠?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미국 연방대법원의 연방대법관들...


○ 최강욱 위원

: 한국에서는 그게 누구한테 해당될까요? 대법관인가요, 헌법재판관인가요?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어휴, 그건 제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 최강욱 위원

: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왜 어렵습니까?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고 표현한 취지가 있었고요. 그 책에서. 지금 후보자께서 늘 강조하신 것처럼 세상의 갈등 문제를 법적으로 빨리 해결해 주는 역할, 그다음에 헌법 해석을 통해서 미국 사회가 갈 방향을 정하는 역할, 이것을 연방대법원이 해왔었고, 그거와 관련해서 낙태 판결과 관련해서 미국에서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시면서 이게 누구에 해당되는지 어렵다는 말씀이... 중도라서 그렇습니까? (웃음)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웃음) 아니요. 대법원도 그 역할을 하고 헌재도 그런 역할을 하죠.


○ 최강욱 위원

: 대법원은 어디서 그런 역할을 하죠?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웃음)


○ 최강욱 위원

: 아니, 그것은 지금 그냥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무슨 알력을 구하고자 여쭈어보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관이라는 지위가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지금 지혜의 아홉 기둥에 비견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인데 …


ㅤ최강욱 의원은 입법부나 행정부와는 다른 결에서 사회가 나아갈 길을 향도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한국에서는 어떤 기관이 “지혜의 아홉 기둥”이 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그런데 김두형 후보자는 이러한 질문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다툼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즉, 그는 질문을 철학적으로 독해하지 않고 권력관계에 관한 것으로 인식했다. 후보자의 단편적인 태도만으로 그의 평소 생각을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 장면은 분명히 청중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ㅤ그러나 앞의 질문과 이어진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확실히 경악스러웠다. 최강욱 의원은 후보자 본인이 스스로 지녔다고 자부하는 소신 있는 태도와 많은 사람이 경멸하는 기회주의 사이의 차이를 물은 다음, 과거 재판개입 문제로 탄핵소추안의 대상이 되었던 신영철 대법관과 최근 모 사업가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진 재판관의 사례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5)


○ 최강욱 위원

: (전략) …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데도 신영철 대법관 임기를 그대로 채우고 마쳤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고, 이영진 재판관 지금 아무런 조치 없이 멀쩡하게 재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대법관이나 재판관이 이런 행태를 보이면?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뭐, 사실 이 부분은 이제 이영진 재판관님은 지금 현직이시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고요.


○ 최강욱 위원

: 곤란한 거 알기 때문에 여쭈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소신이라는 게...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여론에 영합하지 않고[재판하는 것이 소신이다]. 이분들은 지금 소신이 있어서 본인들이 버티는 겁니까, 여론에 영합하지 않고? 이분들의 소신과 재판관 후보자로서의 소신을 구분해서 설명하실 수 있어야죠.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예... 좀 말씀드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 최강욱 위원

: 소신이 없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웃음) 죄송합니다.


○ 최강욱 위원

: 소신이 있는데 인간적인 면 때문에 밝히기가 어렵습니까?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웃음) 죄송합니다.


ㅤ김두형 후보자는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사실 어색한 미소로 때울 질문은 분명 아니었다. 이는 사법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우리 사회는 사법농단과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를 거쳐왔는데도 여전히 법관들 사이에서는 “인간적 관계”와 그것을 저해하는 발언에서 오는 “불편함”이 직업적 소명의식보다도 크고 무겁게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사법부를 향한 광범위한 사회적 불신과 비난이다. 홍길동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 탓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법관은 오히려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사명감보다 사회생활을 더 중요시하는 법관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면 그보다 더한 희극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후에 이루어진 문답은 부정적인 확신을 더했다.*6)


○ 최강욱 위원

: 법원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법원의 주인은 판사들입니다.


ㅤ이 문답이 있고 나서 한참 뒤 후보자는 다시 질문을 받았다.*7)


○ 최강욱 위원

: … (전략) 제가 자꾸 갈등이 생겨서 뭔가를 좀 확인해보고 싶어서 자꾸 여쭈어보는 겁니다. 법원의 주인이 판사라고 하셨어요. 기억나시죠? (김두형: 예예.) 헌법재판소는 그러면 주인이 누구예요?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재판권의 행사기관이 저는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강욱 위원

: 그러면 재판관이네요,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국회는 국회의원이 주인이고?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예, 그렇죠. 


○ 최강욱 위원

: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걸 [듣고] 너무 놀라웠어요. 국회나 헌법재판소나 법원이나 이게 국가기관이 국민이 주인이지 그거를 판사가 주인이다라고 생각해버리시면 (김두형: 아아, 예. 그건...) 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분들은... 아까 주인이라는 말이 문맥상에 지금 여러 가지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다 보니, 그걸 피하시기 위해서 제가 듣기로는 맞지 않는 해석을 하시느라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들렸었는데 헌법재판소도 헌법재판관이 주인이다, 국회는 국회의원이 주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 김두형 재판관후보자

: 예, 제가 지금 말씀을 잘못 드린 것 같습니다.


ㅤ이러한 답변은 아마 법관들이 자기가 맡은 직무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판사가 “주인”이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후보자의 선의에 부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 주인이라는 후보자의 견해는 명백히 헌법의 기본 전제를 망각한 것으로 보였다. 헌법은 제1조에서 명시적으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설령 헌법 제1조가 없었더라도 민주주의 헌정질서에서 주권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김두형 후보자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면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ㅤ한편 정정미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다소 철학적일 수 있는 질문”은 당사자보다 청중에게 생각거리로 다가왔다. 이탄희 의원은 후보자에게 다양성과 사회통합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이에 정정미 후보자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겉보기에는 바람직했지만 사실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다. 다양성과 통합성은 긴장관계에 있다. 만약 사회 구성원이 전반적으로 균일한 상태에 있다면 그들은 서로 통합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곧 사회 구성원이 각기 다른 처지에 있고 서로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화합하기 어렵다. 교회 안에서 신도들은 신앙을 공유하지만, 교회 밖에서 무신론자와 마주했을 때 그들은 결코 타협할 수 없다. 이탄희 의원은 다양성과 사회통합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8)


○ 이탄희 위원

: 후보자님, 제가 다소 철학적일 수 있는 질문을 한번 드려볼게요. 다양성이라고 하는 것과 통합성이라고 하는 것 두 가지 가치가 있는데, 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신 적 있으세요? … (중략) …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이 다양해지면, 그 재판 결과에 대한 승복도가 올라갈까요, 낮아질까요?… 내가 소수자인데, 나와 닮은 재판관이 저기에 들어가있다. 9명 중 1명이든 2명이든. 그 사람이 참여를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다는 상황과 내 처지에는 전혀 공감 못할 9명이 모여서 결론을 내고 나한테 [그 결론을] 받으라고 강요한다. 이를 비교해 보면 당연히 전자가 승복도가 높겠죠? 그게 바로 사회통합입니다.


ㅤ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연상하게 하는 이 주장은 부적절해 보였다. 그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연구결과를 제시했지만, 그것은 주로 의회나 선거제도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사법부의 구성 사례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의문이 들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는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의회에서 대표되어야 하고, 국회의원은 그들을 포함한 전체 국민을 대표할 책무가 있다. 국회가 다양한 사회계층에 속한 구성원으로 채워진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의 입장을 세심히 배려하는 정책이 생산될 개연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법관은 정책을 입안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 만일 법관이 국민을 대표한다면, 그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그러한 차이보다도 통계적 다양성에 집착하는 태도에 있다. 전술한 질문이 있고 난 뒤에 이어진 문답은 이탄희 의원의 주장에 포함된 그릇된 전제를 강화했다.*9)


○ 이탄희 위원

: 서면답변서 중에서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121페이진데, 제가 읽어드릴게요.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의 다양성은 성별, 출신, 경력 자체가 아니라 가치관이나 철학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데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이 있는데, 이게 혹시 후보자님 개인의 답변이십니까, 아니면 기관의 답변입니까? 제가 일부러 이렇게 묻는 취지가 있어요. 다양성을 강조하시면서도 성별, 출신, 경력이 아니라 가치관, 철학이 중요하다?


○ 정정미 재판관후보자

: 그 이야기를 쓴 것은 기계적인 다양성을 지양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제가 여성 법관이니까 여성의 입장을 반영할 수도 있는데 그것만으로 모든 다양화를 끝낼 수는 없다는 취지로...


○ 이탄희 위원

: 추가로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성별, 출신, 경력이 다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 정정미 재판관후보자

: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 이탄희 위원

: 상상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상력보다는 경험이 더 강합니다. 그렇죠? 경험 중에서도 간접 경험보다 직접 경험이 더 강합니다. 그러니까 후보자님도 인사말씀에 직접 경험한 내용을 쭉 쓰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을 명심해 주십시오.


ㅤ이탄희 의원은 소수자로서의 삶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소수자의 권익을 잘 대변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에 근거한 사회적 지위가 소수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이 충족해야 하는 조건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헌법재판소이지, 단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 그 자체가 아니다. 구성원의 과반이 여성 재판관인 가상의 헌법재판소가 여성차별적인 호주제를 합헌이라고 결정한다면, 도대체 “여성” 재판관이 많고 적음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또한, 어떤 신체적 장애를 가진 가상의 “소수자” 출신 판사가 다른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옹호한다면, 우리는 그가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 결코 다양성이나 사회통합을 이유로 그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라틴계 여성 상원의원이 되고 싶다”는 한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10)


“우리가 모든 형태의 차별을 끝내기 위해 싸울 동안,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싸울 동안, 라틴계 남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실현되기를 나 역시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라틴계 여성입니다. 나에게 투표하세요.’라는 말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라틴계 여성이 이 나라의 노동자를 대변하고 금권세력에 맞설 것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은 미국이 한 걸음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거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영자라면 그 사람이 흑인이건 백인이건 라틴계이건 전혀 무의미한 이야기입니다.”


ㅤ통계적 다양성의 환상은 깨지기 쉽다. 이를테면, 국회의원은 최대 300종류의 스펙트럼을 구성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단 한 사람만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남성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이어야 하는가? 혹은 동성애자여야 하는가, 아니면 트랜스젠더여야 하는가?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헌법재판관이 누구여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은 장차 재판관이 될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에 관한 것으로 새겨야 한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소수자가 소수자를 대표한다는 단순한 견해나 어떤 상징성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현명하다. 물론 이탄희 의원이 이러한 점을 무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 헌법재판소나 법원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는 재판관 중 일부가 장애인, 동성애자, 여성 등 소수자여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ㅤ반복하건대, 우리는 호주제를 합헌으로 판결하는 여성 재판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판결은 우리 사회와 여성들에게 통합의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몰락을 의미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주장을 펼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누가 스스로 소수자로서 힘든 삶을 체험했는데도 사회적 약자한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비록 한국의 사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한 대법관을 알고 있다.*11)


Apr 1, 2023


* 대표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이 글은 또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최초발행: Apr 1, 2023)


1) 대한민국헌법§111③


2)  성전환자를 배려한 법원의 결정은 비민주적인가? (2022년 12월 31일), 36문단을 보라.


3) 국회방송, 김형두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023년 3월 28일), 1:46:32;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임시회의록), 제404회-법제사법 제3차(2023년 3월 28일), 17면. 이하는 해당 동영상을 기준으로 필자가 속기한 내용이며, 발언이 수록된 임시회의록 페이지를 함께 표기했다.


4) 국회방송, 영상자료(주3), 1:41:45; 회의록(주3), 16면


5) 국회방송, 영상자료(주3), 1:45:28; 회의록(주3), 17면


6) 국회방송, 영상자료(주3), 1:47:11; 회의록(주3), 17면


7) 국회방송, 영상자료(주3), 6:51:30; 회의록(주3), 43면


8) 국회방송, 정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023년 3월 29일), 4:42:10;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임시회의록), 제404회-법제사법 제4차(2023년 3월 29일), 23-24면


9) 국회방송, 영상자료(주8), 4:48:00; 회의록(주8), 25면


10) GBH Forum Network, Bernie Sanders: Our Revolution—A Future to Believe In (Nov 22, 2016), 39:20


11) See R. Dworkin, “Justice for Clarence Thomas,” The New York Review (Nov 7, 1991). 이 기사는 Freedom‘s Law (Havard University Press, 1996)에 수록되었다. 번역서의 경우 자유의 법 (서울: 미지북스, 2019), 495면 이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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