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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7. 2023

국회의원의 수는 몇 명이 적정한가?

헌법 제42조 제2항과 원리의 제약


ㅤ이듬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에 착수했다. 국회는 19년 만에 전원위원회를 열어 관련 문제를 논의한다. 핵심적인 쟁점에 대해 각 정당이 이견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 시작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어떤 선거구제를 채택할 것인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이 적당한가, 아니면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비례대표제는 병립형이 좋은가, 아니면 연동형이 적절한가? 비례대표제를 확대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그러나 다양한 쟁점들 가운데 가장 큰 논란거리는 역시 국회의원 정수에 관한 것이다. 사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선거제도를 개편한다면 국회의원의 증원 혹은 감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관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여당의 김기현 대표였다. 그는 현재 300명인 의원 수를 30명 이상 줄이자고 제안했다.*1)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제안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집권 정당의 대표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서 공개적으로 견해를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ㅤ김 대표의 주장은 확실히 여론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57%가 국회의원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국회의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이는 9%에 불과했다.*2) 그는 선거제도를 바꾸기 전에 국회의 신뢰 회복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여론은 국회를 미덥지 못하게 여기는 대중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회를 향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작년 12월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오직 응답자의 15%만이 국회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81%였다.*3) 사람들의 높은 불신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갤럽(Gallup)이 실시한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의회는 단 7%의 신뢰를 받았다.*4) 이는 재작년 12%보다 5% 더 떨어진 수치다. OECD 주요 회원국들 가운데 대통령제 국가를 두고 비교해 보아도 불신 수준은 70%를 상회한다.*5)

ㅤ다만 우리는 여론에 힘입어 펼치는 주장보다도 헌법에 기초한 논변에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제의 원리인 자유위임에 의해서 국회의원은 여론에 강제적으로 구속되지 않을 수 있지만, 법의 지배에 따라 헌법에는 복종해야 한다. 따라서 헌법이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것은, 여론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의의를 지닌다. 만일 헌법이 일정한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면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회의 결정은 무효로 될 것이다. 의원 정수에 관해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헌법적 논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우선 김기현 대표는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원 의석수를 200석으로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현행 헌법이 국회의원의 수를 “200인” 이상으로 명시한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6) 여당 최고위원인 김재원 의원은 더 구체적인 해석론까지 제시했다. 그는 국회의원 수를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조항의 해석상 국회의원의 수가 299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곧 헌법이 말하는 “200인 이상”이란 200명에서 299명까지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7)

ㅤ먼저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국회 본회의장에 앉을 자리가 너무 많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가? 만약 국회가 당장 내일 아침 “전체 국회의원의 수는 3천만 명으로 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가상의 사례는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아마 그 법률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헌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제안될 수 있다: 예컨대, 국회의원을 전체 선거권자의 수와 거의 비례할 정도로 뽑는다면 사실상 직접민주제와 다를 게 없어서 헌법상 대의제 원리에 반한다고 말할 수 있다. 1만 명은 어떤가? 이 경우에도 해당 법률은 높은 확률로 위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수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의사를 효율적으로 대표하기에 너무 부적절해서 권력분립과 대의제를 사실상 형해화한다고 볼 수 있다.

ㅤ그렇다면 400명은 어떤가? 여기서부터는 논란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의원 1인당 인구수를 근거로 이 숫자가 적절하다고 여길 것이다: 가령 프랑스는 하원을 기준으로 의원 1인당 11만 명의 비례성을 보이고, 상원과 하원을 전부 합치면 의원 1인당 7만 명의 비례성을 보인다. 의원 1인당 17만 명 수준인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적다. 반면에 다른 사람은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을 예로 들며 400명은 너무 지나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미국은 인구수가 약 3억4천만 명인데도 하원의 의석수가 435석밖에 안 된다. 오히려 인구수가 5천만 정도 되는 한국의 경우에는 헌법이 정한 하한선인 200명조차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8) 이에 비교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단원제-단일국가인 한국에 양원제-연방국가인 미국의 사례를 곧바로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더 정교한 방식으로 국가별 의회 상황을 비교하여 최적의 의석수를 산출하려 시도할 수 있고, 누군가는 역사와 전통을 고려할 수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론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ㅤ사람들은 각자 헌법 논거를 포함해 여하한 이유에서 추상적으로든 구체적이로든 국회의 구성에 관해 “적정한 수”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헌법 제41조 제2항은 국회의원의 수를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산정 기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만일 헌법이 “국회의원의 수는 전체 인구수의 15만분의 1로 한다”거나 “국회의원의 수는 300인으로 한다”라고 특정한 수치를 확정적으로 정해 주었더라면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헌법이 침묵하는 부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의석수를 정할 수 있지는 않다. 3천만도 수학적으로는 200 이상에 해당한다. 하나 국회의원 수를 3천만 명으로 하자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문제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편으로 “적정한 수”에 근접할수록 논쟁의 여지는 커지며, 찬성하는 이들은 반대하는 이들 못지않게 합리적으로 생각되는 논거를 제시한다. 나는 이처럼 사고실험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약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즉, 국회의원의 수는 어떤 제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제약은 우리가 헌법상 “법 앞의 평등”에 관한 조항을 해석할 때 “평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듯이 정치도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ㅤ우리는 국회의원 수를 제비뽑기나 우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결정하고 정당화하고자 한다. 국회의원의 수를 400인으로 하자고 제안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가 “400은 200 이상의 수에 해당한다”고 답한다면, 그러한 대답은 헌법의 명시적인 문언에 어긋나지는 않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만일 그가 400인은 대의민주제 하에서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만큼 적정한 수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산정 방식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으나 이전 답변보다 흡족할 것이다. 나아가 그가 헌법 제8조에 의한 복수다당제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서 헌법 제41조 제3항에 규정된 비례대표제를 활성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행 비례대표 의원직 47석을 147석으로 늘려야 한다고 설명한다면, 우리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일단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납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헌법상 지역 간 균형발전의 원리를 실현하려면 농어산촌의 정치적 대표성을 키워야 하고 이에 따른 선결문제로서 의석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면, 마찬가지로 그의 주장이 어느 정도 옳다고 수긍할 것이다.

ㅤ다른 한편으로, 국회의원 수를 늘릴 필요는 없지만 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국회의원의 수가 줄어들면 국회의 기능은 감소하는 반면, 국회의원 개개인의 권력은 강화되어 정치적 부패와 폐단의 위험이 증가하여 헌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 보장되고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이 허용되는 한국의 통치구조상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일은 아마 국회에 대한 대통령과 행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하여 권력분립을 저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들 역시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두며 헌법 차원의 법리와 논거를 제시한다. 이는 특별할 것이 없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의회는 민주적 법치국가에 필수불가결한 중추적 기관이다. 그 구성에 관한 사항을 정할 때 장난이나 부정이 개입하는 것을 헌법이 용인한다고, 혹은 그것을 방지할 도덕적 제약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은 허무맹랑하다.

ㅤ헌법 제41조 제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즉, 원칙적으로 200인 이상의 범위에서 국회의원의 수를 법률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적정한 수의 국회의원이 몇 명인지에 대한 판단을 입법자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헌법상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입법형성의 자유 내지는 재량권을 가진다. 하지만 지금껏 살핀 바와 같이 무한한 재량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입법은 정치도덕적인 제약을 받는다. 물론 종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비추어 볼 때 국회의 재량권은 상당히 폭넓은 수준으로 보장되고, 현저히 자의적으로 행사된 경우에만 남용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의적인 사례에 해당하는가? 우리는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하나는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다. 가령 국회의원 다수가 술을 싫어하기 때문에 국회가 금주법을 제정한다면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다른 하나는 헌법의 규정이나 원리에 반하는 경우다. 국회가 농업생산성을 증진할 목적으로 농지의 위탁경영을 허용하도록 법률을 정한다면, 이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반한다.

ㅤ전자는 입법의 목적이나 이유가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를 따지는 것인 반면, 후자는 법규범적 의미에서 자의적 입법을 금지하는 사례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의 평등”이 입법자에게도 정의(justice)와 형평(equity)의 원칙에 합당하게 합헌적으로 법률을 제정하도록 명하므로, 국회의 입법이 정의와 형평에 반하거나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위헌성을 지닌다고 판시한다.*9) 따라서 입법자가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갖는 영역에서도 헌법규정이나 헌법상의 제 원리에 반해 자의적으로 행사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한 남용으로 헌법에 위반된다.*10) 물론 현실적으로 양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가령 헌법상 평등의 원칙이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차별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에 의하면 특정한 차별취급을 규정한 법률이 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위헌인지를 판단할 때 합리적 근거가 존재하는지를 심사하게 된다. 이처럼 헌법상의 원리가 입법에서 합리적 근거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과 원리에 반하는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ㅤ어찌되었든 우리의 관심은 헌법의 규정과 원리가 부과하는 제약이다. 그런데 전술한 사고실험에서 보았듯 적정한 수의 국회의원이 모두 몇 명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기란 어렵다. 199명은 문언상 분명히 위헌이다. 그럼 300명은 위헌이고, 299명은 합헌인가? 수학뿐만 아니라 법학에서도 숫자는 머리를 아프게 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의 기탁금을 2,000만원으로 정한 법률이 위헌이지만, 1,500만원으로 정한 법률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1,500만원의 기탁금은 다른 재산이 전혀 없는 통상적인 평균임금을 수령하는 도시근로자가 그 임금을 6개월 정도 저축하면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는 정도”라는 사실을 그 사유로 들었다.*11) 왜 국회는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왕 저축하는 김에 2개월 더 모아서 2,000만원을 채우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는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으로 볼 때 500만원이 그렇게 큰 차이인가?

ㅤ기탁금 외에 또 다른 사례로는 선거권자 연령에 관한 사안이 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선거인 연령의 결정권을 입법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국회는 “선거권을 갖기에 적정한 나이가 몇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다만, 신생아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거나 망백(望百)의 노인부터 선거권을 가진다고 답해서는 안 된다. 적정한 국회의원 인원수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황되게 높거나 낮은 수는 헌법이 부과하는 제약에 의해 거부될 것이다. 과거 선거인 연령을 만 20세로 규정한 선거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문제시된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12)


“… 선거권연령의 구분이 입법자의 몫이라 하여도, 선거권연령에 이르지 못한 국민들의 선거권이 제한되고 그들과 선거권연령 이상의 국민들 사이에 차별취급이 발생하므로, 이에 관한 입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이념과 연령에 의한 선거권제한을 인정하는 보통선거제도의 취지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에 터잡아 합목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아니한 자의적 입법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선거권연령은 선거권행사에 요구되는 정치적 판단능력의 수준을 설정하고 일정 연령집단의 정치적 판단능력의 보편적 수준을 파악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대의민주제에서 선거권행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치적 판단능력의 수준과, 또 일정 연령집단의 정치적 판단능력의 보편적 수준을 계측할 객관적 기준과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의 판단에 관하여 우리 재판소가 입법자보다 고도의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재판관들은 자의적 입법이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합리적인 선거인 연령을 정하는 것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제약이 어떤 질문의 답을 산출하는 연산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리는 추상적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 헌법의 규정과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게끔 하거나 그것에 반하지 않도록 진지하고 성실하게 논증을 구성하는 일이다.

ㅤ그런데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제약이 가해진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앞서 다음 질문으로 서두를 열었다: 국회의원의 수가 너무 많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가? 이제 질문은 바뀌었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철학적 사유에 기초하고 있으며, 헌법적 수준에서 어떤 합리적 근거와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국회에 무제한적인 재량을 부여하거나 논쟁을 회피하려고 이 견해를 거부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잭팟(jackpot)을 연상케 하는 기분 좋은 숫자라는 이유에서 국회의원의 수를 777명으로 늘리거나, 동료 의원들의 이름을 외우기 힘들기 때문에 200명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ㅤ전체 국회의원의 수가 줄어든다면 의원 한 사람이 담당하게 될 업무량은 증가할 것이고, 그 결과 업무 과중으로 인해 국회의 능률이 떨어져 입법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가 낮아질 우려는 커진다. 또한, 줄어든 인원수에 알맞게 선거구를 새로이 획정하면서 지역 간의 불균형이 부각될 것이다. 만일 기존 선거구에 배정된 의석은 지역대표성을 보존하기 위해 남겨둔 채 비례대표 몫으로 할당된 의석만 희생한다면 군소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소수는 더 이상 선거에 희망을 걸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선거를 통해서 소수파의 대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렇듯 국회를 대상으로 한 구조 조정은 단순히 나태해 보이는 선출직 공무원에게 투입될 세금을 절약하는 문제가 아니다.*13) 따라서 이에 관한 결정은 대의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정한 헌법의 기본이념과 제도의 취지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에 입각해 합목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결정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 이러한 의문이 항상 국회의 결정을 자의적 입법이나 권한 남용으로 평가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데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정당성(legitimacy)을 저해한다.

ㅤ현재 국회의원의 머릿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합리적인 근거나 원리는 무엇인가? 그 답은 놀랍다.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비교정치학적 분석이라고 이름 붙이기 민망한 단편적인 수준의 자료를 제시하거나 이론적 타당성을 결여하여 이미 대다수 헌법학자에게 거부당한 설익은 해석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미국에서 대표자의 인구 비례성이 1 대 62만이므로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프랑스의 경우 1 대 7만이므로 오히려 이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만큼 초라하다. 헌법상 “200인 이상”이라는 문구가 “200인 이상 299인 이하”를 의미한다는 견해는 미흡하며 근거가 없다.*14) 제헌국회가 200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토대해 헌법조항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 또한 설득력이 없는데, 오히려 역사는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의석수 상한선이 없어지고 최소치가 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국회의원 증원을 반대하려면 더 계명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합당한 논거를 요구하는 물음에 대해 아마 그들은 다시 한번 여론에 호소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민주주의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론은 중요하다. 특히 민주주의에서 입법과 정책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공통된 의견과 선호로부터 영향을 받는 문화적 도덕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게다가 오늘날 세계 각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의제의 실상은 개개인의 시민적ㆍ정치적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경험적 의사, 이른바 민의(民意)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15) 따라서 그들은 여론이 헌법의 규정이나 원리만큼 강력한 제약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ㅤ그러나 무엇이 국민의 뜻인가? 다수가 말하는 바가 국민의 뜻인가? 그렇다면 다수는 국민이고, 소수는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다수가 어떤 소수를 멸시하고 차별하는 데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그런 일이 부정의할뿐더러 정당하지 않다는 견해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는,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법령은 설령 다수의 지지를 받았더라도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민주적인 정부는 모든 사람의 정부이고, 주권자인 “우리 인민(We the people)”은 지배적 다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치(self-government)라는 공동의 과업에 참여하는 모든 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16)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치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존중을 받아야 하고 이에 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은 바로 여기에서 역할을 한다.*17)

ㅤ나는 지금 소수에게 불리한 여론이 항상 그 자체로 불공정하다거나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자 이 같은 설명을 부연한 것이 아니다. 여론은 실재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때로는 위협적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헌법적인 수준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단지 다수가 누구의 편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자료로서 여론조사 결과는 결정적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여론에 의한 지배는 헌법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인민에 의한 지배(rule by the people)이며, 따라서 여론은 규범 차원에서 부과되는 민주주의적 제약이라고 할 수 없다. 즉, 현실에서 정치적 경험으로 체감되는 여론이 지닌 의의를 간과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규범적 제약이 아니므로 헌법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정당화를 제공하지 못한다.

ㅤ국회의원을 감원하는 데 찬성하는 정치인들은 더 계명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최소한 그들은 의석수를 줄이는 경우에 발생하게 될 잠재적 손실을 정당화하고, 그러한 조치가 헌법의 요청에 부합한다는 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의 지위와 권한은 언제나 헌법 아래에 있다. 하물며, 꼭 헌법이 이를 문제로 삼지 않더라도 논증에 충실한 태도는 정치적이고 공적인 책임에 비추어 중요하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타당한 이유의 부재는 단지 설득력이나 철학적 사유가 빈곤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수사학(rhetoric)을 제외하고, 정치인이 구사하는 웅변 속의 논리는 그의 진실성과 진중함을 가늠하는 척도다. 현명한 군주는 신하의 말이 아첨인지 정언인지 가려듣는다. 그리고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서 영예로운 국왕 폐하는 시민들이고, 그들의 충성스러운 신하는 공직자들이다.


Apr 17, 2023


* 대표이미지 출처: 대한민국 국회

** 이 글은 또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1) 이윤태ㆍ황성호, “김기현 “국회의원수 최소 30석은 줄여야”,” 동아일보 (2023년 4월 7일), A3면 1단.


2) 갤럽리포트 데일리 오피니언 제535호-2023년 3월 4주, 한국갤럽 (2023년 3월 23일)


3) 전국지표조사 리포트 제86호(2022년 12월 3주), NBS (2022년 12월 15일)


4) Jeffrey M. Jones, “Confidence in U.S. Institutions Down; Average at New Low,” GALLUP (Jul 5, 2022)


5) 정영훈ㆍ박상훈 편. 국회 신뢰 제고 방안 연구 (국회미래연구원, 2019), 30면을 보라.


6) 김연정ㆍ박형빈, “김기현 "의원수 감축 논의해야…최소 30석 이상 줄일수있다",” 연합뉴스 (2023년 4월 6일)


7) 이우호, “김재원 "국회의원, 299명 이하로 하루빨리 개정하는 게 헌법 정신",” 매일신문 (2023년 3월 20일)


8) 김유민, “홍준표 “국회의원? 80명이면 된다” 50석 증원 논의 반대,” 서울신문 (2023년 3월 19일)


9) 헌재 1992. 4. 28. 90헌바24, 판례집 4, 225<231ff>


10) 헌재 1995. 4. 20. 91헌바11, 판례집 7-1, 478<487>; 헌재 1995. 11. 30. 94헌가3, 판례집 7-2, 550<557> 등 참조


11) 헌재 2003. 8. 21. 2001헌마687등, 판례집 15-2상, 214<227>


12)헌재 1997. 6. 26. 96헌마89, 판례집 9-1, 674<680>


13) 23년 전 국회는 국회의원의 정원을 299명에서 273명으로 약 10% 감축한 바 있다. 한 실증적인 연구는 당시 축소 조정이 실제 의도와는 달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김도종ㆍ김형준, “국회의원 정수산출을 위한 경험연구: OECD회원국들과의 비교ㆍ분석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vol.43, no.3, 2003), 76면 이하를 보라. 이 연구는 대표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때 오히려 299명보다 늘어난 368~379명을 적정한 수로 산출한다.


14) 한때 국회의원 정수를 300인으로 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문제시된 적이 있다. 헌법학자들 가운데 이른바 “300인 위헌설”을 지지하는 이들로는 성낙인 교수와 이종수 교수가 있다. 성낙인, “시대변화에 순응한 공직선거법제의 정립,” 헌법학연구 (vol. 18, no. 2, 2012), 65면; 김선화, “국회의원 정수의 적정성과 위헌논쟁,”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 no.391, 2012), 2면을 보라. 위헌설은 의석수를 200인대로 보는 관행이나 일반적 인식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다수 학자가 지적하듯 그런 사실이 존재하는지는 불분명할 뿐더러, 위헌설의 해석은 헌법의 문언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헌법 제41조 제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의석수를 정함을 국회의 입법재량에 맡기고 있다. 학계 다수설은 합헌설이다.


15) 헌재 1989. 9. 8. 88헌가6, 판례집 1, 199<224ff> 그리고 헌재 2003. 10. 30. 2000헌바67등, 판례집 15-2하, 41<52ff>를 보라.


16) See Ronald Dworkin. Justice in Robes (Havard University Press, 2006), p.134; Justice for Hedgehogs (Havard University Press, 2011), chap.18


17) See Ronald Dworkin, “Equality, Democracy, and Constitution: We the People in Court,” Alberta Law Review (vol.28, no.2, 1990), pp.324-346. 또한, 나의 글 “성전환자를 배려한 법원의 결정은 비민주적인가?” 25문단 이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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