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화해의 교회에서 울려퍼진 힌국의 노래
화해의 교회는 분단과 평화의 상징으로 동독에서 탈출하다 희생당한 138명의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자 분단의 희생자를 기리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교회는 1885년에 세워졌다. 동독지역으로 분리된 곳이었지만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많은 주민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에 왕래가 어려웠지만 서베를린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동베를린 사람들이 탈출하는 곳으로 이용될 위험으로 인해 1985년, 동독 정부는 이 교회를 아예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세로 지어진 화해의 교회 벽은 붕괴된 화해의 교회에서 나온 잔해들과 점토를 섞어 만들었다. 원래 이 교회의 건축가는 내부 벽을 콘크리트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으나 콘크리트는 베를린장벽의 재료였기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했고 결국 재료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거의 교회의 잔해를 현재의 교회가 품었다.
정면에 보이는 십자가는 원래 교회에 있던 유품이다. 그 밑으로 작은 유리창이 나있는데 원래 교회의 초석을 볼 수 있다. 긴 나무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외부벽인 이곳 역시 원래는 유리로 설계되었으나 나무로 그 재료가 바뀌었다.
햇빛이 뜨거웠다. 마음이 뜨거워졌기 때문일까? 그 역사적 현장에 서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기도 했다.
어릴때 TV로 보던 그 장면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사람들이 기뻐하던 장면 말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도심의 관광지로 남겨 전 세계 사람들이 찾게 만든 독일정부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통일....대한민국과 북한에게도 그런날이 반드시 오겠지?
베를린 장벽에서 버스킹을 하던 그 울컥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화해의 교회에서 무언가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건물이 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리라!
화해의 교회 옆으로 베를린 장벽이 보인다. 이 교회가 세워진 곳은 노동자들이 많은 사는 노동자지구로 1884년, 독일 여왕에 의해 만들어질때부터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서로 화해하라는 의미에서 화해의 교회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하한다. 다른 의미로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베를린에서 외식이란?
상상초월 비싼 저녁 식사를 했다. 물값이 움료수 가격보다 비싼^^ 베를린 시내에서 이탈리안 식당 저녁 메뉴는 한국식당보다 살짝 비싼 정도다. 그 살짝 이란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한국은 음식을 주문하면 20분 내로 테이블에 올려진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난리가 난다. 한국인의 정서상 8282는 생활화 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그런데 베를린의 식당은????? 30분..40분....50분을 기다려 식사가 가능했다. 서둘러서도 안되고, 짜증을 내서도 안되는 그런 매너를 발휘해야 했다. 인내심.....
음식 맛은... 훌륭했지만... 짜다. 독일에서 맛본 모든 음식이 짜다. 내 기준으로는 말이다.
마리엔 필데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던던지.....
베를린 장벽에서의 버스킹 공연, 그리고 화해의 교회의 공연에 대한 여운이 남는 귀가길이었다.
베를린 에서 22명이 함께 움직이며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그렇게 삼일째가 되는 날..
우린 어느새 베를린 대중교통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첫날의 그 낯선 풍경이 아닌 자연스러움에 나조차도 놀랐다.
환경에 따라 사람이 적응해 간다는 말을 실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