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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백 Dec 21. 2023

의사의 트라우마

환자의 죽음

23.12.1


의사는 타인이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하지만

생명이 꺼져갈 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의료진이다.


담당 환자가 돌아가셨을 때

그동안의 처방이나 술기를 복기하면서

더 나은 방법은 없었는지

혹 내 능력이 부족하여 빠뜨린 것은 없었는지

고민해 본다.


애써 가라앉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괜찮은 척해보아도

며칠은 무기력해진다.


아직 살아계신 것만도 고마운 분,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신 분,

조금 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호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분,

정말 생명연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보호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분...




새 근무지에 이직하고 한 달 사이 두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한 분의 병력(질병의 과거력)을 살펴보니

파킨슨병이 오래되어

'삼키는' 기능을 거의 못하셨다.

보호자분들께서 콧줄을 거부하셔서

억지로 입으로 드리긴 하지만

흡인성 폐렴이 반복되고

영양상태도 엉망이었다.


TPN을 오랜 시간 계속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환자/보호자분들을 설득하여 콧줄이나 뱃줄을 하는 것이 낫다.


기존 병원에서 뱃줄까지 권유받았다고 하시니

(보통 콧줄을 오래 해도 호전의 기미가 없으면 뱃줄을 한다.)

아마 콧줄을 하지 않을 거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으셨을 거고,

폐렴이 그동안 몇 번은 와서 항생제를 맞으셨을 텐데 기재되진 않았다.

(의뢰서에는 오래된 파킨슨병과 항생제 치료로 인해

최근 기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고만 되어있었다.)


보호자로는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처음 진료실에서 함께 상담을 하는데

아들은 모든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겠다 하셨다.

딸은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다.


의사결정을 하는 주된 보호자분이 따님이고

가족 한분이라도 dnr을 거부하시면 당연히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우리 병원에 오신 며칠 후부터 고열이 났고 폐사진엔 염증이 가득했다.

배양검사를 기다릴 틈도 없이 항생제를 써야만 했다.


만약 이번이 처음 폐렴이라면

병전에 건강하셨더라면

영양상태가 좋으셨다면

면역력이 괜찮다면

회복하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르신은 이 모든 것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제 담당의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기도와 설득밖에 없었다.


따님에게 솔직하게 연락을 드렸다.

회복하실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항생제 쓰면서 열은 잡혔는데

기다려봐야 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신속한 검사가 가능하고

중환자실이 있는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하시는 게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따님은 가지 않겠다 하셨다.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차분했다.

그저 우리 병원에서 끝까지 모셔달라 하셨다.


오전에 회진을 돌고 나면

매번 어르신의 상태를 전화로 설명드렸다.

그때마다 옆에선 전화를 받는 엄마에게

장난을 치는 여자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딸에게 조용하라고 호통치는 소리도 없었고

전화기를 통해 주의를 주는 분위기도 못 느꼈다.

전화가 오기 방금 전까지 놀아주던 엄마의

표정이 싹 바뀌면

딸아이도 무언가를 알아채고

입을 다문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상태지만

지금이라도 큰 병원 가시겠냐고 여쭤보고,

심폐소생술은 거부하시는지 여쭤보았다.


따님은 큰 병원엔 가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심폐소생술 거부는 오빠와 상의해서 말씀 주시겠다 하셨다.

(오빠는 첫날 같이 진료실에 들어와서 심폐소생술을 거부하셨는데

비슷한 경우 딸은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게

본인이 아버님을 포기하는 것일까 봐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있다)


점심을 먹은 후, 또 퇴근하기 전

환자분 침상으로 가

'어르신, 힘내세요!

따님과 손녀가 응원하고 계십니다!'

어르신의 성함을 한번 더 불러드리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변화는 없는지 확인했다.


비슷한 상황이 며칠 동안 반복되다가

결국 산소포화도가 조금씩 떨어져

산소치료를 시작하였고 필요시 기관삽관을 고려해야 했다.

다시 전화를 드렸다.

역시나 옆에서는 딸아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기관삽관하고 인공호흡기를 달던지,

전원가시는 방법도 고려해 보라.

아니면 지금 기관삽관 등 거부하시더라도 번복하실 수도 있다...)

이대로는 오늘내일하실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편하게 가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병원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오빠한테도 연락하겠습니다.


통화 중 어느 순간부터 딸아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퇴근하는 순간까지 어르신의 상태를 지켜보다

당직과장님과 교대하는 시간에 퇴근하였다.


사망진단서는 보통 사망을 선언하는 의사가 작성한다.

하지만 어르신의 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가 작성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여

미리 작성해 놓고

인계노트에 이렇게 저렇게 써놓고

혹시 퇴근 후에 돌아가시면

사망 시간만 기입해 달라 말씀드렸다.


퇴근을 해서도 계속 어르신이 생각났다.

혹시 사망하시면 문자 연락이라도 달라고

병동에 말씀드릴걸...


아침에 출근을 해서 옷을 벗지도 않고

환자명단을 찾아보니

퇴근하고 3시간 후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더라.




숨 쉬는 걸 힘들어하다 호흡 소리 띄엄띄엄해지고

심장도 불규칙하게 막 뛰다가 조용해진다.

혈압과 산소포화도도 떨어지다 잡히지 않는다.


의사는 삶과 죽음에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담당 환자의 죽음은 그 이후로도 내내 머리에서 재생된다.

혹시 어떤 치료나 처치가 환자분에게 잘못되진 않았을까

이 검사도 해보고 저 치료도 해볼걸 그랬나?

종합병원에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시도록

보호자분을 강하게 설득해야 했나?


지난 일이지만

스스로 묻고, 가정해 보는 상황이

끝없이 반복된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최선의 다른 방법이 없고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음속 어르신을 떠나보낸다.


만에 하나 더 나은 방법이 있었다면,

그리고 다른 치료를 해볼 걸이라는 후회가 드는 경우

의사의 심장에 평생 흉터가 지게 된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본 글은 주관적 경험에 바탕한 에세이일 뿐입니다.

등장 내용이나 인물 등이 의학적 기록이나 사실과는 어떤 관련도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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