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 차정숙'을 시청하고
23.05.03
제목에 글자수 제한 (30글자 미만)이 있어 줄였습니다.
원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은 있어도, 삶을 포기하는 환자는 없습니다!"
"닥터 차정숙"은 JTBC에서 2023.04.15부터 편성된 드라마입니다.
현재 4회까지 시청한 소감을 써볼까 합니다.
배우로서 정말 좋아하는 엄정화 님이 주연을 맡은 '한국 & 의학 & 드라마'입니다.
남편 역할의 김병철 님도 제가 아끼고, 미워할 수 없는 배우라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다른 조연분들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주연과 조연들의 관계가 잘 짜여 있어 앞으로의 스토리라인이 더욱 기대되는 드라마랄까요?
부디 시작에 비해 흐지부지 끝나거나, 결론이 훤히 들여다보이듯 분명한 한국 멜로 영화가 되지 않길 빕니다.
0. 의대 졸업 후 전업주부로 20년 이상 살아온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남편과 아들이 의사로 근무하는 병원에
전공의 1년차로 들어간다는 설정인데,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억지 이야기가 아니고,
의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부분들로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요소가 다분하여
식상한 기존 의학 드라마들과는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1.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된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찾으러 천사원에 갑니다.
빛바랜 서류철에서 본인의 아동 개인신상 카드를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죠.
"제가 버려졌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그래서 우린 ‘버려졌다’가 아니라
‘발견되었다’라고 기록합니다."
라고 수녀님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은 본인(주인공을 천사원 앞에 둔 부모?)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당사자라 하더라도 기억이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과거는 왜곡되기 십상이니까요.
그렇지만 과거 사실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것들도 많죠.
예를 들어 어떤 환자분들은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는데, '왜' 질병에 걸렸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 사업실패, 경제문제, 운동부족, 담배, 식사 등 가능성 있는 수많은 인자들 중 하나를 말씀하시면서)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안 걸렸을' 거라고 하소연하고요.
질병은 다양한 요소가 원인이지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발병하진 않습니다.
유전적, 환경적, 신체적, 심리적 모든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multifactorial)
모든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모른다(unknown)가 올바른 대답일 겁니다.
2. 또 다른 에피소드로 4회 말미에 치료를 거부하는 살인자의 얘기가 나옵니다.
처음엔 침묵으로 본인의 의지를 피력하는 것 같습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분들께서 말씀해 주실 것은 '어디 맞춰봐라, ' 혹은 '한 번 고쳐봐라.' 이런 무언의 시위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자세한 과거 병력입니다. 기억이 안 나도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만 말씀해 주세요.
그런 다음 전문의와 상의할 것은 앞으로의 치료 계획과 부작용, 그리고 치료하지 않았을 경우의 예후 등입니다.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 등을 찾는 것은 전문의의 몫입니다.
다만, 환자/가족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앞으로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의사 입장에서 환자/보호자와의 라뽀를 돌아보거나 더 적극적으로 설명드렸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 수는 있지만, 치료를 거부하는 것 그 자체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들의 살아온 흔적을 부정해서도 안되고, 누구도 대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단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든 간에,
치료를 포기하는 분은 계셔도, 삶을 포기하는 환자분들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은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누구나 소중하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질병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의사로서
환자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분들의 삶의 의지를 열렬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주인공의 험난한 미래가 훤히 눈앞에 그려지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환자들을 존중하는 훌륭한 의사의 자질을 깨닫길 바랍니다.
일과 가족과 사랑 모두 성공하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