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남성이 두 달 전 일을 기억 못 할 확률
25.10.27.
내가 근무하는 곳은 병원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이 입퇴원과 외래를 거쳐간다.
오늘 오신 분은 자동차 사고 후 엉덩이가 아파서 허리 사진만 찍고 싶다고 오셨다.
차트를 보니 9월 5일 본원에서 시행한 영상이 있다.
"9월 엑스레이를 보니까 허리에 뼈는 문제없습니다만..."
"네?! 제가 여기서 엑스레이를 찍었다고요?"
여기서부터 꼬였다.
이십 수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아, 그러면 82년 x월생 누구 아니세요?"
"그건 맞는데요, 제가 여기서는 찍은 적이 없거든요?!"
"아..."
"너무 황당하네요."
"저도 당황스러운데요, 방사선실과 원무과랑 얘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차팅이나 기록이 당일 시행한 다른 분으로 잘못 올라갈 수도 있거든요."
"네, 일단 저는 이 병원에서 엑스레이는 한 번도 안 찍었습니다!"
"아, 제가 환자분이 안 찍으셨다는 게 아니고, 저희 쪽에서 차팅이랑 기록이랑 실수가 일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사진은 찍어보시고, 그 사이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퉁명스럽게) 네! 그렇게 하세요!"
젊은 환자분이 단호하게 말씀하니
우리 병원 쪽에서 실수한 건 아닌지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 걸 느꼈다.
만에 하나 잘못했다면 멱살이라도 잡힐 것 같다.
의학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
차트를 다시 보았지만, 아까랑 똑같은 내용이다.
환자분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엑스레이를 보면 대충 그분이 걸어온 인생이 보일 때도 있다.
이 분의 경우 엑스레이가 특별한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확대하고 또 보고, 판독하면서 쳐다보기 때문에 엑스레이는 익숙하다.
그날 오셔서 영상을 찍은 다른 모든 분들의 영상을 리뷰하고,
또 동명이인의 영상을 다 비교해 보아도.
대충 이분 나이대의 엑스레이임에는 틀림없다.
...
(엑스레이 결과 나왔습니다. 대기 중이십니다.)
모니터에 진료를 빨리 보라는 메시지가 뜬다.
"환자분, 허리 사진은 괜찮고요. 두 달 전에 찍은 사진과 동일합니다.
그날 오신 다른 분들이나 동명이인의 엑스레이가 잘못 올라간 건 아닙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지난번처럼 치료 잘 받으십시오."
"어, 네..."
가면서 간호조무사님에게 그러시더란다.
"내가 찍은 것 같기도 하고..."
...
자동차사고로 여기저기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다 보면 헷갈릴 수도 있나?
두 달도 안 되었는데?? 더구나 43세인데???
혹 머리를 다치신 건가? (라고 하기엔 가벼운 접촉사고였다.)
이내 생각을 달리 했다.
나도 한 달 전 점심을 밖에서 먹었는지 기억 못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