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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Dec 11. 2024

두루미로 위로받다

DMZ평화의 길 16코스

 이번 길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구간이라 개인적으로 가기 어려운 길이다. 사전에 안내 센터에 예약하여 그쪽에서 파견된 가이드와 함께 걸어야 한다. 걷다가 특정 구간은 센터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이 길은 평온과 불안이 극명히 대비되는 구간이다.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하기 전과 후의 기운이 대비되었고, 대북 확성기 방송과 두루미 우는 소리가 극명히 대비되었고, 무엇보다 답답함과 시원함이 대비되었다.


출발은 ‘철원 두루미 평화타운’에서 시작하였다. 평화타운은 DMZ 평화 관광 센터, 야생동물 보호센터, 평화 쉼터, 주차장 등이 모여있는 곳이다. 16코스를 걷는 사람들은 평화 쉼터에서 만나 출발한다. 삼사십 분 걸어 도착한 ‘양지리 마을’이 인상적이었다. 전원주택 단지처럼 조성된 깨끗한 마을이었다. 이 접경지대까지 전원주택이 들어서다니,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이주단지라고 했다. 원래 민통선 안에 있었는데 한 해 큰 홍수로 잠기는 바람에 아예 민통선 바깥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마을을 조성하고 택지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더 걸어 물에 잠겼던 옛 마을을 통과했는데 무너져 내리는 집이 즐비했다. 갑자기 옛 노래가 생각난다. “두껍아 두껍아! 새집 다오, 헌 집 줄게.”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이런 이주 정책도 고려해봄직 하단 생각이 들었다.

     

양지리를 지나 조금 걷자 ‘토교 저수지’ 방죽이 보였다. 철원에서 제일 큰 저수지라 방죽이 제법 길었다, 대략 1000m 정도 되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그 방죽 윗길을 걷지 못하고 아랫길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윗길을 관할하는 부대에서 보안 관계로 민간인의 통행을 허락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토교 저수지 풍광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를 놓친 것은 ‘아쉬움’이었지만, DMZ 안도 아니고 바깥인 우리 땅에 우리가 걷지 못한다는 것은 ‘씁쓸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방 아래 길은 나에게 ‘답답한 길’로 각인되었다. 다행히 그 길에서 처음으로 너구리 공동 화장실을 보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너구리는 길 한가운데, 같은 장소에, 계속 똥을 싸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하룻동안 열 댓 무더기의 너구리 공동 화장실을 지나갔다.

    

드디어 민간인 통제구역 검문소를 통과할 차례다. 검문소 바로 직전에 둘레길 센터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검문소 통과할 때 민간인의 안전 때문이라고 했다. 검문소 바로 직전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곧바로 있는 마을에서 내렸다. 걷기 전문가들이 검문소 통과를 위해, 100여 m를 가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다니 뭔가 아렸다. 또 다른 씁쓸함이다. 그 마을은 아까 말한 양지리 주민들의 옛마을이다. 이전에 났던 홍수 때문에 지금은 거의 비어 있었다. 홍수가 나도 이처럼 마을이 이처럼 폐허가 되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전쟁이나 홍수가 아님에도 텅텅 비어 가는 농촌이 많다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씁쓸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번 코스에서 나름 그림이 좋았던 곳은 ‘끊어진 금강산 전기철도 다리’였다. 옛 철교를 사람이 거닐 수 있도록 난간을 설치해 둔, 삐걱거리는 다리였다. 다리 아래로는 한탄강이 흐르고 강변은 주상절리 절벽이다, 북동쪽으로는 DMZ 경비 초소들이 보이고, 대북 방송으로 네 박자 노래가 들려온다. 평화로운 풍광에 싸우는 음악 소리라! 일행 중 한 명이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며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한다. 그 답답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 전철길 북동쪽으로 곧장 가면 금강산에 닿는다. 분단되기 전, 그 시절에도 전철로 금강산 구경을 다녔는데, 이 시대에 그 무엇으로도 갈 수 없다니, 하물며 그곳이 자기 고향일진 댄. 

    

아! 그래도 시원한 희망도 있었다. 그것은 두루미였다. 철원의 너른 평야에서 재두루미, 흑두루미, 두루미(학(鶴)) 무리를 한꺼번에 본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적 계통이 거의 같은데 생김새와 나는 폼이 조금씩 달랐다. 생기기로는 학이 가장 고결해 보였고, 날아가는 폼으로는 재두루미가 훨씬 우아했다. 전통무용 학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선비의 의연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학의 자태로 표현한 춤이었다. 그 춤에서 선비의 하얀 도포는 학(두루미)의 색에서 빌려온 것은 분명한데, 우아한 춤사위는 아마도 재두루미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재두루미가 날개를 편 채 여유롭게 오래 활공하는 모습이 선비의 의연한 풍류(風流)를 훨씬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답답한 가슴을 씻어내는 경쾌한 느낌이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DMZ 16코스는 철원의 3개 읍 땅을 지난다. 동송읍, 김화읍, 갈말읍을 한탄강과 화강이 삼등분하는 하천을 따라 굽이굽이 걷는다. 그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놓인 다리 이름이 ‘삼합교(三合橋)’이다. 다리 북쪽 지역 일부는 원래 평강읍이었는데, 한국전쟁 휴전 협상 전에 국군이 점령한 덕에 휴전선 남쪽으로 편입된 땅이라 한다. 여차하면 한탄강이 휴전선이 될 수도, 한강이 휴전선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좁은 반도에서 같은 민족이 무슨 짓을 한 겐가, 원망이 치밀어 올라왔다. 코스의 마지막 4Km 정도 남겨두고 아까 그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이번 길은 답답하고, 씁쓸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이 지배적이었다. 다행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첫째는 두루미요, 둘째는 너구리요, 셋째는 동송읍에서 아주 친절한 식당에서 먹은 닭갈비였다. 검문소를 걸어서 통과하는 날, 아니 검문소 없는 16코스를 다시 밟을 수 있기를!

너구리 공동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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