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Dome - RNWF; Regular Northwest Face
Half Dome - Regular Northwest Face / 5.9 or 5.12c
▶️ 등반 코스
: Half Dome(하프돔)에 위치한 Regular Northwest Face(레귤러노스페이스, 5.9 or 5.12c) / 23 피치
* 빠른 등반 속도를 위해 1~3 피치는 등반 전 날 픽스로프 설치하여 다음 날 주마로 올라감
* 19 피치 구간도 등반 진행 속도를 위해 주마로 올라감(5.12대로 코스 중 가장 어려운 피치 구간)
▶️ 등반 소요 시간 : 23시간 소요 (05:00 - 04:00)
* 어프로치 : 5시간 / 하강 & 하산 : 5시간 소요
* 현지 로컬 클라이머는 어프로치만 2시간 30분 소요된다고 함
* 초행길이라면, 길 찾는 것이 꽤나 어렵다. 길을 아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 등반 장비(3명 기준) : 60m 로프 2동, 퀵드로 2세트 이상, 캠 2세트 이상, 슬링, 개인 장비 + 간단한 식량 및 개인별 물 1.5L
- 더울까 봐 물을 많이 챙겼는데, 생각보다 많이 마시지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등반시간이 다소 길어지는 탓에 챙겨간 물은 다 마셨다.
▶️ 등반 인원 : 3명 X 2팀 - 팀끼리 등반
* 선등자가 로프 2개를 끌고 올라가, 두 명의 후등자를 동시 빌레이 보았다.
* 두 팀으로 쪼개어 팀끼리 각각 등반함(편리하게 1팀, 2팀으로 설명하겠음!)
* 우리 팀은 2팀(두 번째로 출발)으로 <아버지 - 나 - WY> 순으로 등반했다(후등자 순서는 때에 따라 바뀜).
✔️ 참고 & 안내 사항
* 주차 : Curry Villiage
* 각 피치마다의 길이 및 그레이드는 가이드북을 참고함 <Rock Climbing Yosemite Valley - 750 Best Free Routes / Erik, Marek>
2023. 7. 1. 새벽 3시 10분.
비박을 하다 보니, 밤새 뒤척거리다가 찌뿌둥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전날 힘들게 어프로치 해서 몸 컨디션이 썩 좋진 않았지만, 등반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쌀쌀한 새벽이었지만, 오늘의 등반을 위해 전투식량을 꾸역꾸역 입으로 넣었다.
다들 전날 밤 모기와 싸우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모기가 엄청났다.. 생전 이렇게 많은 모기는 처음 보는 듯했고, 밥을 먹으면서도 모기를 쳐내기 바빴다.
다 먹고 치우고 등반 짐을 챙기는데! 아버지가 남들 몰래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건 바로 공진단이었다. 미국에 와서 쉴 새 없이 등반을 한 우리는, 오늘의 긴 여정을 위해 체력을 잘 보충해야만 했다. 몰래 꿀꺽 삼켜 입안에서 한약맛을 느끼며 오늘의 등반에 대해 각오를 다졌다.
비박 장비와 무거운 짐들은 가져갈 수 없으니, 우리가 머물렀던 장소에 두고 가기로 했다.
침낭과 기타 무거운 짐들은 비박했던 장소에 두고 가볍게 등반 준비를 했다.
출발에 앞서 얼음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빙하수를 물병에 담으며, 나의 등반 차례를 기다렸다.
1 피치 (약 49m) | 5.8 - 5.11
2 피치 (약 30m) | 5.5 - 5.9
3 피치 (약 32m) | 5.8
새벽 4시 20분경.
선발대가 등반을 먼저 시작했고, 선발대의 후등자가 우리 로프를 픽스시켜 주면 픽스된 구간까지 주마로 올라섰다. 10 피치까지는 쉬운 편이었기에 등반으로 올라가도 충분했지만, 하프돔 하산 시간도 긴 편이라 등반 시간을 단축하고자 3 피치까지는 주마로 올라가기로 했다.
선발대는 눈이 있는 곳을 지나, 1 피치 시작지점으로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후발대인 우리는 새벽 5시가 한참을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후발대 중 중간자로 출발하는 나는, 이번 등반에서 주마가 처음이었다. 주마를 맛보기로만 연습하고 이번에 본격적으로 주마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웬걸? 너무 힘들었다.
내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자꾸 누워지는 내 몸뚱이. 그걸 일으켜 세우는 나. 주마를 꽉 잡고 올라가는데, 장갑을 끼지 않아 물집까지 잡혀버리고 말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쪽 팔에 펌핑이 올 때마다 손을 바꾸어가며 주마질을 했다.
내가 올라가야 다음 주자인 WY이 올라올 수 있기에, 쉬지 않고 주마를 이어나갔다. 드디어 고지가 보일 때쯤, 아버지는 다시 두 번째 피치 주마를 시작하고 있었다.
드디어 한 피치를 끝내고, WY에게 올라오라고 신호를 주었다. WY은 나보다 선등 경험도 많고, 주마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는 잠시 1 피치 확보지점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2 피치 주마를 대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동은 빠르게 트기 시작했고, 1 피치를 올라오는 WY은 조금 힘들어 보였지만 주마질에 능숙해 보였다.
그런데, 아뿔싸!!!!!
그가 사리면서 올라오던 자일이 바위 틈새에 끼는 바람에, 다시 내려가서 풀고 올라와야 했다. 그는 거의 1 피치 스타트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줄을 풀고 다시 주마를 해 올라왔다. 만일, 나였다면.. 차마 다시 내려가지 못했을 지도.. 정말 힘들었기에 그가 대단했다..
그가 1 피치 확보지점에 올라선 후에, 아버지는 우리 줄을 끌어올려 픽스해 주었고 나도 다시 2 피치 주마를 시작했다. 2 피치 주마도 참 힘들었다. 새벽에 제정신이 아닌 채로 주마를 반복하는데, 혼이 나가버렸다.
2 피치에 들어서자마자 손바닥에는 물집 여러 개가 잡히기 시작했는데,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3 피치는 약간 오버행이지만, 잡고 가기에 쉬운 편이라 등반과 주마를 섞어가며 올라갔다. 그래도 힘든 건 매한가지. 오히려, 주마하며 올라가는 게 더 힘들었다.
3 피치까지 올라서니, 서서히 밝아지고 동이 트기 시작한다.
4 피치 (약 36m) | 5.10 - 5.11
4 피치 구간은 5.10대에서 11까지 그레이드가 매겨지는 구간으로 쉽지 않은 피치이다.
핸드재밍이 될까 말까 한 좁은 크랙에 레이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었지. 아버지는 작은 캠 위주로 설치했고, 최대한 자유등반으로 가려고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턱을 넘어서기만 하면 쉬운 코스로 이어진다.
5 피치 (약 30m) | 5.9 - 5.11
무난하게 넘어왔던 코스였지만, 피치의 길이가 우리나라보의 두세 배는 되는 편이라 힘은 들었다.
무엇보다 하프돔이 고도가 높은 편이라 그런지 숨이 쉽게 가빠져왔다.
최대한 체력을 안배하며 등반 템포를 조절하면서 등반을 진행했다.
5 피치에서 확보를 한 후 잠시 숨을 돌리는데, 아래에서 다른 팀들이 올라와 등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과 우리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지만 안심할 수 없어 등반 속도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6 피치 (약 44m) | 5.8 - 5.9
6 피치도 쉬운 코스라서 어렵지 않고 빠르게 넘어왔다.
5 피치까지만 해도 우리 팀은 선발팀과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사실 각자 팀의 페이스에 맞추어 등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등반 스피드는 크게 중요치 않았지만 최대한 멀어지지 않게 거리를 조절하려고 했다.
쉬운 피치에서는 우리도 속력을 높여 선발팀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6 피치가 되니 앞서 나간 선발팀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약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생각보다 해는 빠르게 우리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뜨거운 햇빛 속에서 등반할 생각에 점차 두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래에서 출발하던 다른 클라이머 팀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따라잡고 있었다.
그들은 2인 1조 남성팀이었는데, 롤링락과 어트랙션을 이용해 동시등반을 하고 있었다.
오전 8시 45분경. 6 피치 확보지점에서.
6 피치의 확보지점은 테라스가 넓은 편이라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래 쫓아오는 다른 팀들의 속도가 빨라, 우리는 그들을 먼저 보내주고 등반하기로 했다.
7 피치 (약 41m) | 5.5 - 5.8
7 피치 등반을 시작하는 선발팀.
선발팀 등반을 대기하는 동안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데, 우리 뒤편으로 엘케피탄(El Capitan) 바위가 보였다.
선발팀 등반도 기다리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있을 때쯤.
닉과 잭이라는 남성 2인조 클라이머가 우리가 있는 피치까지 도달했다. 그들은 이 날 링크 등반을 도전하려 고하며, 로컬 클라이머라고 했다. 이 중 닉이라는 친구는 노즈 등반을 7시간 안에 했다고 말했다.
닉과 잭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쳐 올라갔고, 우리는 그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닉과 잭이 다 통과한 이후에 등반을 재개하였고, 앞에 선발팀과 닉&잭 팀이 7 피치 확보지점에 몰려있었기에 우리는 그전에 확보를 했다.
8 피치 (약 37m)
* 우리 팀은 상황에 따라서 피치를 끊었기 때문에 개념도와는 약간 상이할 수 있다.
7 피치 확보지점보다 조금 전에서 출발해 8 피치까지 길게 등반을 이었으며, 60m 자일이 아주 팽팽하게 딱 맞아떨어졌다.
8 피치도 쉬운 편이라 어렵지 않았는데, 바위 부스럼이 조금 떨어졌다. 8 피치부터는 하프돔 정면 바위로 등반을 시작한다.
선등자인 아버지 빌레이는 내가 계속 봤다. 사실, 나도 빌레이를 다른 팀원과 번갈아 보며 쉬고 싶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아버지 빌레이는 내가 봐야 마음이 편했다. 또한, 빌레이를 보면 선등자가 어느 방향으로 등반을 하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그다음 등반자인 내가 어디로 가야 편안한지 알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특히나, 우측으로 길게 트레버스 하는 구간이다 보니 더 신중하게 보았다.
자일이 팽팽하게 늘어날 만큼 등반 길이가 아슬아슬했는데, 아버지는 최대한 캠을 적게 설치해 가며 자일 길이를 확보하려고 했다. 또한, 트레버스 구간에서도 최대한 수직으로 등반을 이어나갔다.
아버지의 빠른 판단력 덕분에 자일 길이가 딱 알맞게 맞았고, 뒤를 이어 나도 조심스럽게 등반을 진행했다.
8 피치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등반하며 올라왔다. 자유등반으로 시도해 볼 만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본격적인 등반은 9 피치부터였다.
9 피치부터는 볼트 따먹기를 해야 하는 인공 구간들이 몇 피치 있었으며, 난이도도 올라갔다.
오후 12시 20분경.
9 피치 (약 30m)
10 피치 (약 24m) - Robbins Traverse
우측으로 약간의 트레버스와 함께 볼트 따먹기가 시작되는 인공구간이다. 두 피치가 연달아 볼트 따먹기 코스로, 각도도 센 편이라 어려움이 느껴졌다.
수직 벽에 볼트와 슬링에 의존해 매달려 있는 게 생각보다 아찔했다.
한국에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순간만큼은! 요세미티에서만큼은 꽤나 두려워졌다.
이렇게 인공등반으로 볼트 따먹기를 제대로 시도해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아직 등반 테크닉이 많이 부족했기에, WY이 막자로 장비 회수하며 올라오는 역할을 자처했다.
내가 이러한 테크닉이 잘 갖춰져 있다면 번갈아 해서 체력을 서로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선발팀도 인공등반이라 등반 속도에 지체가 생겼다. 그 김에 우리 팀은 경치 구경하며, 비상간식을 꺼내 먹으며 틈틈이 체력 보충을 했다.
사실, 이때부터 살짝 지치기 시작했다. 체력이 지친다기보다는 끝없는 기다림에 지쳤다..
아버지와 나는 등반 페이스가 빠른 편인 데다가, 등반이 늦춰질수록 흐름이 끊겨 힘들어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선발팀과 같이 등반을 진행하다 보니 등반 페이스가 맞지 않아, 생각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기다리면서 많은 체력이 소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발팀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연히 같이 등반하면 서로의 페이스를 맞춰가며 해야 하는 것이고, 그저 그들과 우리의 등반 속도가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뭐라 할 게 못된다.
선발팀의 선등자가 출발하면, 아버지는 그 템포에 맞추어 등반을 재개했고
선발팀의 후등자들이 모두 다음피치로 등반을 시작하면, 나 또한 등반을 시작했다.
볼트 따먹기도 미국에 와서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보다 볼트 따먹기를 하는 데 많은 힘이 들었다. 그나마,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져 갔다. 다만, 내가 사용한 확보줄의 굵기가 매우 얇은 편이라 확보줄을 당기며 이동하기엔 손아귀에 힘도 많이 들어가고 다소 불안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등반을 하며 올라갈 수 있었다.
오후 2시경.
10 피치 확보 지점에 위치한 Robbins Traverse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 테라스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는데,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길 것만 같았다.
평상시 등반하면서 두려움을 못 느끼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발 밑이 엄청나게 높은 낭떠러지이면서 고도감이 확 느껴 저 겁이 났다.
선발팀 기다리면서 챙겨둔 비상 간식을 다시 꺼내어 먹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등반이 점차 길어질 것을 예상했는지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공진단을 꺼내어 내게 먹여주었다. 이외에 우리 팀은 체력 회복을 위해 에너지겔을 틈틈이 먹으며, 기력을 보충해 나갔다.
11 피치 (약 18m)
11 피치는 크랙으로 이어졌는데, 중간중간 턱이 있어 등반이 어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미리 크랙 연습을 하고 온 덕분에 배운 기술을 써먹으며 수월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만일, 크랙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올라온 사람들이라면 꽤나 많은 힘을 쓰며 올라왔을 것 같다.
생각보다 등반을 잘하고 있는 나를 보며 묘한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WY은 주마로 올라가면 더 빨리 올라갈 수 있다고 하여, 주마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등반하는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미 지치고 있는 그는 등반 템포가 점차 늦어지기 시작했다.
12 피치 (약 49m)
쉬지 않고 등반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2 피치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리쬐는 햇빛에 얼굴은 익어가면서 따끔따끔해오지만 햇빛을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12 피치에서는 로프가 바위 틈새에 낄 수도 있으니 두 피치에 끊어 등반을 했다.
오후 7시경.
도대체 어디서부터 등반이 더뎌진 걸까?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12 피치 확보지점에 도달해 넓은 테라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과연, 오늘 안에 정상에는 도달할 수 있을까?
아버지도 예상치 못하게 등반이 길어져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의 예상대로라면, 적어도 오후 5시면 정상에 도달했어야만 했다.
예상보다 늦어진 등반에 아버지는 저녁이 되면 몰려오는 하프돔의 추위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등반 속도를 높이려고 애썼다.
다들 지쳤는지, 말이 줄어들었고 WY도 매 피치마다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급 피로감이 몰려왔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뭐 죽기나 하겠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이 나오겠지.' 싶은 생각과 함께 남은 등반에 집중하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12 피치인지 잘 몰랐다. 한 18~19 피치 정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 앞으로 4~5 피치만 더 가면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12 피치라니..!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꽤나 절망스러웠다.
23 피치인 하프돔은.. 앞으로 11 피치나 남았다니. 이제 절반 밖에 안 왔다니. 후퇴도 못하고 참 난감했다.
이후부터는 해가 빠르게 지기 시작하더니, 배터리 잔량도 얼마 남지 않아 후반부에는 핸드폰을 꺼두고 등반했다.
13 피치 (약 30m) | 5.7
해가 저물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깜깜해지는 하프돔이었다.
우리의 불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해는 빠르게 산 너머로 저물어가기만 했다.
그래도 지는 해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프돔 바위에 매달려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후부터는 헬맷에 렌턴을 장착하고, 그저 어둠 속에서 등반을 이어나가기만 했다.
해가 저문 하프돔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추워져갔고, 챙겨 온 모든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맨 채 등반을 했다.
14 피치 (약 21m) | 5.7 - 5.9
15 피치 (약 30m) | 5.9
16 피치 (약 30m) | 5.9
17 피치 (약 37m) | 5.7 - 5.9 / Double Crack + Big Sandy
18 피치 (약 30m) | 5.9 - 5.12a
19 피치 (약 37m) | 5.12a - 5.12d
20 피치 (약 12m)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깜깜한 어둠 속의 바위에서
5.12 구간은 주마로, 이외 다른 피치들은 등반으로 올라갔다.
또한, 상단 부분에는 작은 캠들이 많이 필요했기에 선발대와 협업해 같이 등반을 했다.
하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선발대에게 우리의 작은 캠을 넘겨주면서, 서로의 캠을 사용해 가며 등반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소형 캠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어갔다. '뭐지? 회수를 못한 건가?' 이상함밖에 없었다.
소형캠을 설치해야 하는데, 소형캠이 없는 상황까지 발생한 거다.
막자로 회수하며 올라오는 WY은 다 회수했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건네받는 캠의 수는 피치가 올라갈 때마다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캠을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실정.
자정이 넘어가면서 다들 비몽사몽 한 상태라 캠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싶었다.
나도 20 피치에 올라서니, 계속된 등반에 지치고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면서도 낭떠러지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더불어 추위가 몰아닥치니 콧물을 계속 나오고 저체온증이 올까 두려워 몸을 연신 떨며 움직였다.
21 피치 (약 27m) | 5.9 - Thank God Ledge
RNWF 코스 중 유명한 부분 중 하나인 땡스 갓 릿지(Thank God Ledge)에 도달했다.
낭떠러지 구간을 네발기기 자세로 무릎을 꿇어 조심스레 넘어가야 하는 구간이다.
이미 아래는 어두컴컴해 절벽인지조차 구별이 안 갔지만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중간 틈에 아버지가 캠을 설치해 두었지만, 추락하면 예상보다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두려웠다.
내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이지 않은 어둠을 향해 '아빠! 줄 좀 팽팽하게 봐줘! 잘 봐'라며 허공에 소리쳤다.
22 피치 (약 27m) | 5.6 - 5.12
22 피치는 슬랩과 트레버스가 섞인 구간으로, 중간에 자일을 갈아타서 넘어가야 하는데 어둠 속에서 길 찾기는 꽤나 어려웠다. 헤드 랜턴을 끼더라도 당장 앞만 보이지 멀리 보지 못하기에 매우 답답했다.
나는 후등자였기에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순차적으로 등반을 하며 진행했는데, 선등자로 온 아버지와 선발팀의 SJ가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기만 했다.
22 피치의 확보지점에서 막자인 WY을 기다렸다. WY이 무사히 자일까지 회수해야 내가 다음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있었고, 계속 졸음에 빠졌다.
확보줄 마저 제대로 결착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식겁했다. 회수해야 하는 장비들도 많기 때문에, 나는 그를 먼저 보내고 나는 홀로 어두움 속에 남아 장비를 회수했다.
23 피치 (약 37m) | 5.7 - 5.8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구간인 23 피치였다.
초반에 슬랩과 페이스로 구성되어 있어 넘어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WY에게 내 자일을 잡고 올라가라고 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어둠 속에서 사라졌고, 나도 등반 장비를 잘 회수했는지 여러 차례 확인 후에 마지막 등반을 위해 준비했다.
무전기로 "출발"이라고 말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무응답과 함께 내 줄은 여전히 느슨했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버지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슬랩인 만큼 줄이 팽팽해야 하는데, 자칫 미끄러지면 턱에 걸려 발목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더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당겨지지 않는 줄을 바라보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슬랩 구간을 넘어섰다.
이후 첫 번째 확보물 설치를 회수하려는 데 캠이 어찌나 빡빡하게 들어가 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캠이 빠지지 않아 두고 왔다(다행히도 이 캠은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캠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다.
어영부영 큰 바위들을 타고 넘어가다 보니 저 먼 곳에서 헤드랜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더니, "소망아, 고생했다!"라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얼굴도 보였다.
'정말 끝이 나긴 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급 피곤함과 함께 남모를 한탄을 아버지께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옆에서 뒷정리를 도와준 SJ 덕분에 빠르게 정리하고 다른 팀원들이 있는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 새벽 4시경.
다들 한 곳에 모여 하프돔의 추위를 이겨내려 애썼고, 다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동이 트지도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날이 밝으면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하기 전까지 잠시 지친 몸을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위에 눕혀 잠을 청했다.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버지 품 속에서 꼭 붙어 쪽잠을 잤다.
눈을 붙인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서 노란색과 주황색 빛이 스멀스멀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지.
우리는 간단하게 장비 정리를 마친 후, 빠르게 하프돔을 하산하기로 했다.
멋진 정상 사진이 아니라 다소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천천히 위험천만한 하프돔의 정상을 내려가 전 날 밤 머물렀던 비박 장소로 향했다.
비박 장소에서 따뜻한 라면을 끓여 첫 끼를 먹는데 도무지 목구멍으로 라면이 넘어가질 않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그저 쉬고 싶을 뿐이었다. 남들은 배고파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남은 라면은 아버지에게 토스한 후에 장비 정리하고 빠르게 하산했다.
이렇게 등반만 꼬박 23시간, 어프로치만 10시간. 도합 총 33시간의 여정이 끝이 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던 하프돔 등반이었지만,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스릴 넘치면서도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한 경험은 신비로웠다. 마냥 힘들지만도 않았고, 돌이켜 보면 '잘 살아 돌아와 다행이다.'싶으면서도 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려갈 때는 다시 활력이 생겼는지, 5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상에 내려올 수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 때문일까.
아,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이번 등반이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