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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dhope Sep 30. 2024

D+11. 절대 잊지 못하는 엘켑 벽에서의 하룻 밤

El Cap - Sarathe Wall / Free Blast

2023.7.6


오전 6시

눈만 껌뻑껌뻑하며 겨우 눈커풀을 들어올렸을 때, '와! 멋있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엘켑의 거대한 벽이 내 눈 앞에 있었기 때문. 새삼 내가 엘켑 벽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감탄도 잠시, '과연, 우리가 저기를 오를 수 있을까? 적어도 오늘 안에는 El Cap Spire까지 도달해야 정상에 오르기 조금 수월해지는데..'라며 근심이 가득해졌다.


내 옆에서 밤새 따뜻하게 나를 지켜주었던 아버지도 뒤척이며 서서히 눈을 떴다.

아버지는 눈을 떠자마자, 나에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봐. 잘 쥐어지니? 어때?'라고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버지에 말대로 침낭 속에 있는 내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하는데, 맙소사! 

전완근이 빵빵하게 펌핑되어 굳었는지,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렇게나 힘이 빠졌다고..?' 

'아빠, 어제 등반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힘이 전혀 안들어가요..'

아버지는 전날 새벽부터 홀링을 위해 주마했던 게 많이 뭉쳤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긴, 홀링한다고 열심히 주마로 5피치정도를 올랐으니..안 힘든게 이상한거였다.


아버지는 이내 WY의 상태도 체크하기 위해 머리만 들어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초점 없는 희미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 더 눈을 붙이죠'라고 말했고, 나도 속으로 기뻐하며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침낭 덮고 누워서 바라 본 El Cap
잠을 자고 있는 WY과 우리의 짐들




벽에 매달려 자는 것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암벽등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나서부터 거벽 등반을 하며 포타릿지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이 나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다. 비록, 포타릿지가 아닌 바위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나의 오랜 바람은 이루어졌다.


무거운 눈을 슬쩍 뜨고 고개를 돌려보니, 마치 여러가지 색상의 물감이 푸르른 하늘에 뿌려지듯 하늘은 여러 가지 오색 찬란한 빛을 띄었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과 함께 요세미티의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서 묵직한 뭉클함이 올라왔다.

멋지다고 말하기 입 아플 정도로 황홀한 풍경의 자연 속에서 덩그러니 벽에 매달려 있는 것 자체가 감회가 새롭고 마음이 행복감으로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등반가들에게 이런 일상들은 그저 삶의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없지 않은가.


그저 대자연을 만끽하며 아침 동이 터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좋았다.

(1년이 지나 글을 다시금 정리하는 지금도, 그 때의 설렘과 뭉클함은 여전히 그 속에 머물러 있다)




팅팅 부어버린 얼굴. 그리고 눈이 좋아 꼈던 렌즈가 뻑뻑해 눈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막상 몸을 일으켜세우니, 온 몸이 두드려맞은 듯, 물 먹은 이불솜이 된 마냥 무거웠다.








아침 8시.


예상했던 시간보다 3시간 가량 지나서 겨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통조림 과일과 사과, 견과류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사라테 벽에는 벌써부터 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벽을 비추면 뜨겁다 못해 익어버릴 것 같은 날씨라, 우리 팀은 빠르게 등반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밥이었던 견과류




아침 9시. 


10피치 (약 45.7m) | 5.10b - 11c - Long Ledge


등반 준비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늦어져 불안했지만,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등반을 재개했다.

Heart Ledge에서




다행히,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은 피치였다.

그러나 이 피치를 시작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질 거라는 아버지 말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등반하는 듯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확보지점까지 올라섰다.


아버지가 도착하자마자, 두번째 등반자인 WY이 첫 홀백을 띄웠다. 아버지는 엄청난 속도로 홀링을 시작했고, 조금 지켜보다가 WY이 뒤이어 등반을 시작했다.

비교적 쉬운 피치였으나, 전날 밤 주마와 고된 등반으로 WY 역시 몸이 무척 무거워보였다.

힘겹게 천천히 오르던 그가 확보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두번째 홀백을 띄웠다.


그런데, 아뿔싸!!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지 허공에 메단 홀링 자일과 내 등반자가 서로 꽈배기처럼 엉겨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자일이 서로 꼬일 것이라는 걸 생각지 못하고 홀백을 띄워버려 그랬던걸까?

서로 엉킨 자일로 인해, 나는 등반을 시작할 수도 홀백을 당길수도 없고 매우 난감한 상태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아버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계속 대기를 했다.

바람으로 인해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 심지어 홀백은 바위 턱에 걸려버려, 상황이 점차 악화되었다.


아버지를 믿고 조금 기다리니, 홀백도 무사히 바위 턱을 빠져나와 나도 등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나는 빠르게 올라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은 코스라 속도를 내며 올라가는데, 여전히 내 전완에는 힘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부터였을까? 우리 등반이 여기까지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오르는 동안 해는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내 등 뒤가 후끈해져갔다.








10피치 확보 지점


10피치에 도달한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쳐다 보았다.

아버지 눈을 바라보니, 힘이 빠져보였다. 등반 경험도 부족한 두명의 팀원을 데리고 오르다보니, 손발의 합도 맞지 않고 선등부터 뒤처리까지 다하다보니 허탈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이상 진전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기를 쓰고 가면 등반하겠지만, 몇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한 피치를 오르는 데 2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앞으로 남은 20피치를 무사히 등반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더군다나, 이 이상 오르다가 중간에 탈출하게 되면 탈출 루트도 까다로울 뿐더러, 우리의 장비를 많이 버려야만 했다. 

* 10피치까지는 탈출이 쉽게 가능하나, 이후부터는 트레버스 구간이라 장비를 버리면서 탈출을 해야 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아버지를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빠, 괜찮아?'

날 보던 아버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버지는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소망아.. 더 이상 등반은 힘들겠지?' 

'응. 이 이상은 아빠가 너무 고생해. 우리도 힘들거야.'

'그래. 내려가는 게 좋겠다.'



내려간다는 생각에 속상하다는 마음과 기쁘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꿈같던 요세미티에서의 거벽 등반을 이리 허무하게 멈춰야하는가 싶다가도, 내려가면 편하게 쉴 수 있겠다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내가 고집부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힘든게 싫었다. 이번 등반은 아버지의 등반이 아닌, 철저히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팀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마냥 고집부린다고 될 게 아니었다.



WY에게도 내려가자고 전달했다. 그도 너무 아쉬운 기력이 역력했지만, 더 이상의 등반이 힘들다는 걸 속으로는 알고 있었을까? 빠르게 수긍했고, 우리는 필요없는 물들을 확보지점에 빼서 짐을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내러가기 위해 짐을 재정비하며, 아버지가 사용했던 장비는 내 등반 배낭에 넣어두고, 다른 짐들은 모두 홀백에 넣어두었다.

뜨거운 해가 강렬히 우리를 비추어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지만, 엘켑피탄 벽 뒤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요세미티하는구나!




예전에 아버지와 승민오빠는 FreeRider를 자유등반에 성공한 한국 최초의 클라이머이다(물론, 요세미티에서 자유등반을 한 최초이기도하다).

이 때 당시, 아버지와 승민오빠는 1피치부터 하트 릿지(9피치)까지 자유등반으로 2시간만에 올랐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실력차이가 엄청나다는 걸 크게 깨달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등반은 10피치부터이며, 엘켑 스파이어까지 난이도가 두배가량 올라가는데, 엘켑 스파이어부터 정상까지는 10배 이상으로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섣부른 판단으로 사라테에 등반하러 왔구나 싶었다.


내가 승민오빠처럼 등반을 더 잘했더라면, 엄마처럼 아빠를 확실하게 서포트를 할 줄 알았더라면, 

체력이 더 좋아서 홀링을 잘했더라면 정상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뭇내 남았다.

(아버지와 오빠는 요세미티에서 최초로 자유등반을 했고, 아버지와 엄마는 엘켑의 대표 코스인 노즈를 11시간만에 등반에 성공했다. 어마무시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까지 이 기록들을 뛰어넘는 등반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도 아버지와 함께 한 획을 긋고 싶었으나, 내 실력을 잘 깨닫고 후퇴를 했다..)

탈출하기 전, 벽에서 마지막 휴식



아버지가 픽스지점까지는 하강 포인트를 찾고자 첫번째로 하강했다.

그나마 체력이 남아있던 내가, 한 번 더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고 마지막 주자로 하강하기로 했다.


하강 시, 아버지와 WY이 각각 본인들의 홀백을 벨트에 매달고 내려갔다.

그러던 중 WY의 홀백이 꽉 잠겨있지 않았는지 우리의 침낭(아버지가 매우 아끼는 비싼 침낭)이 아래로 떨어졌다..떨어지면서 엄청나게 큰 '팡'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9피치 테라스에 떨어져있어 무사히 회수할 수 있었다.

9피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 어젯밤 우리가 잠을 청했던 장소.




10피치 확보지점에 물을 두고,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는 비록 못 마셨지만..목 마른 누군가가 잘 사용했길 바란다.




후퇴해야하는 나의 서글픈 마음을 알아차린건지, 힘내라고 화창한 날씨로 응원해주는 요세미티.




하강할 때도 등반할 때만큼 신중해야했다.

홀백 무게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홀백을 메고 하강하면 몸이 뒤로 뒤집힐 수 있어 부상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 사이에 홀백을 끼고, 확보줄에 고정해 매달고 가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9피치에서 하강




내려가면서 내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이게 정녕 끝인가 싶으면서도, 내려간다는 안도감과 쉴 수 있다는 행복감이 계속 충돌했다.




픽스된 로프를 타고 하강하는 것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고정로프가 매우 빡빡하게 설치되어 있어 확보기구를 결착하는 것이 어려웠고, 힘이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모든 힘을 쥐어짜내 한 로프씩 번갈아가며 하강을 진행했다.



힘겹게 하강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지상에..! 발을 딛었다.







하강하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다 빠졌다. 아버지가 홀백에 손을 넣고 여기저기 휘젓더니 과일 통조림을 꺼내 주었다. 우리가 준비한 식량들은 안타깝게도 바위에 매달려 먹지 못하고, 지상에 내려와서 먹어야만했다.


과일 통조림을 조심스레 꺼내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닦고 과일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달콤한 설탕물과 과일을 먹으니, 바닥이었던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는 듯했다.

여태까지는 '당 떨어졌을 때 초콜릿 하나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비로소 지금에서야 그 말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니, 다시금 고개를 들어 사라테 코스를 쳐다 보았다.

애초에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던 코스였지만 막상 내려오고나니 아쉬움이 크게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

실력이 어떻든간에 객기로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실전 경험이 너무 부족했고, 등반만 따라갈 수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모든 어려움과 책임감을 지고 우리를 이끈 아버지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하강하고 낼려가는 길




그래도 누구 하나 별 탈 없이 안전하게 내려와서 다행이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다들 내려와서 오히려 더 기운이 나는 듯 했다? ㅋㅋ

지금 내려가면 당분간은 등반은 하지 않고 푹 놀고 쉬어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일단 빨리 아이스크림 한개가 너무 먹고 싶었다.




우리 팀의 사라테 등반 도전을 끝이 났다.

프리 블라스트(Free Blast)까지만이라도 등반하면서, 벽에 매달려 하룻밤을 자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남들은 도전에 실패했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곳에 오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안 오르는 것이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등반은 특별했고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요세미티의 벽은 정말 높다는 것과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여러가지 마음들이 샘솟았다.


개인적으로 등반도 재미있지만,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밤에 지칠 때까지 벽을 오르다가 침낭 속으로 빠져들어가 잠에 빠지는 그날 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황홀한 요세미티의 풍경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런 경험들을 다시 느껴보고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곳을 오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큰 벽에서 우리 팀을 묵묵히 이끌어준 아버지께, 팀원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좋은 원동력이 되었던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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