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p - Sarathe Wall / Free Blast
2023. 7. 5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달콤한 휴식을 마치니 어느덧 등반 시간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리더로서, 그리고 선등자로써 우리를 잘 이끌어나가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루트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하셨다. 이미 다녀왔던 루트이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며 더 효율적인 등반 방법이 없을까 강구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등반하기엔 우리의 실력이 부족했기에, 심리적인 부담감도 꽤 컸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아버지가 원하는 등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와 WY을 위해 온전히 희생했기에 이번 엘캡 등반도 마찬가지였다. 미안한 만큼 힘든 티 내지 않고, 열심히 등반해 보리라 다짐했다.
오후 6시. 어프로치 초입 도착
등반지에 도착하여 장비를 착용했다.
다른 짐들은 홀백에 이미 넣어놨기에, 필요한 등반 장비들만 착용하였다.
El Cap으로 가는 방향 표지판도 있고, 루트 설명 및 주의사항도 적혀 있다.
올라가는 길에, 노즈 등반을 도전하는 또 다른 한 팀을 만났다. 이들의 목표는 원데이로 노즈를 등반하는 것.
이 날 날씨가 30~40도 사이였으며, 낮에는 너무 더워 등반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많은 클라이머들이 저녁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등반하고, 낮에는 쉬었다가 해가 질 때 등반을 재개했다. 그렇지 않으면, 탈진되어 등반이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팀도 역시나 저녁에 등반을 시작해, 낮에 쉬었다가 해가 넘어가면 다시 등반을 재개하기로 계획했다.
오후 7시. 등반 준비 시작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바위의 열도 차츰 식어간다.
혹여나 사라테 코스에 다른 클라이머들이 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올라갔는데,
다행히도 우리가 등반을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사라테를 도전하는 클라이머들은 볼 수 없었다.
대부분 노즈 등반을 도전했다.
서둘러 노즈 코스를 등반하는 팀들이 여럿 보인다.
그들은 원데이로 도전하기에 별다른 짐 없이, 행동식과 물만 챙겨 등반을 시작했다.
엘캡 건너편에 위치한 미들 캐슬락도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스멀스멀 어둠이 올라온다.
장비를 점검하고, 착용하면서 굳은 결의를 다져본다.
El Cap - Salathe Wall / FreeBlast
▶️ 등반 코스 : El Cap - Salathe Wall / 35p
* El Cap(엘켑)에서 가장 긴 루트일 수도..?
*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데크가 있어, 데크까지 등반이 가능하다면, 굳이 Portaledge(포타릿지)가 필요하지 않음 (Heart Ledge - El Cap Spire - Long Ledge)
* 우리 팀은 Lunge Ledge(10p)까지 가서 하강했음(가이드북마다 피치 지점은 상이하며, 옛날 기준으로는 하트릿지가 11P)
▶️ 등반 소요 시간 : Heart Ledge까지 7시간 소요(20:00 - 03:00)
* 야간 등반을 진행하다 보니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아 시간이 다소 소요됨
▶️ 등반 장비(3명 기준)
- 60m 로프 4동(홀링 및 주마용 2동 / 등반용 2동), 퀵드로 2세트, 캠 3세트, 슬링, 개인 장비
+ 3박 4일간 3명 치 식량과 물, 비박용 장비 등
▶️ 등반 인원 : 3명
* 등반 시스템은 선등자가 로프 2개를 끌고 등반. 그리고, 선등자가 두 명의 후등자를 동시 빌레이 보는 방식으로 진행 -> 선등자의 체력이나 등반 실력이 월등히 우수하면 가능한 방식
* 아버지(선등, 후등자 동시 빌레이) - WY(선등자 장비 분담) - 소망(선등자 빌레이, 장비 회수) 순으로 등반했다.
✔️ 참고 & 주의 사항
* 각 피치마다의 길이, 그레이드는 <Rock Climbing Yosemite Valley - 750 Best Free Routes / Erik, Marek> 가이드북을 참고
* 가이드북 상으로는 30p 기준으로 기재된 'Free Salathe Wall'을 참고함
* 참고할 만한 사이트는 아래 링크 확인
Rock Climb Freeblast, Yosemite National Park
오후 8시. 등반 시작
아버지가 첫 타자로 등반에 나섰다.
1 피치 (약 62.5m) | 5.8 - 5.10c
피치마다 그레이드가 쉬워 보이지만, 요세미티의 그레이드는 한국의 바위와 차원이 달랐다.
5.9-5.10 초반 난이도가 5.11급 이상은 되는 듯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빠른 속도로 등반을 해 나가야만 했다.
WY은 선등자가 사용할 등반 장비를 나누어 메었다.
선등자가 이 많은 장비들을 착용하며 오르기에는 부담이 매우 크고, 체력도 많이 소모된다.
필요한 장비만 그때 그때 사용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주자는 서포트를 해주어야만 한다.
팀 중 유일하게 나는 배낭을 메고 등반을 진행했다. 배낭 속엔 물 비상 간식, 바람막이, 릿지화 등을 넣었는데 생각보다 무게가 묵직했다. 적어도 5kg 이상은 나가는 듯했다.
WY이 두 번째 주자로 등반을 시작했다.
그는 첫 크랙에서부터 힘겨워보였다. 재밍을 많이 연습하고 오지 않아, 레이백으로 크랙을 오르려 했다.
나도 재밍연습을 많이 하고 와,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첫 피치부터 생각보다 많은 힘을 쏟아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마지막까지 등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함께.
꾸역꾸역 아버지에게 그리고 팀원에게 민폐 되지 않게 올라갔다.
첫 피치는 어려운 크랙은 아니나, 아직 바위에 열감이 남아있어 그런지 다소 미끄러웠다.
* 급격하게 해가 지기 시작해 피치마다 촬영은 못했다.
2 피치 (약 27.4m) | 5.7
3 피치 (약 30.5m) | 5.10c
4 피치 (약 38.1m) | 5.11b/c
5 피치 (약 33.5m) | 5.10a - Triangle Ledge
6 피치 (약 36.6m) | 5.9
7 피치 (약 42.7m) | 5.8 - Half Dollar
8 피치 (약 76.2m) | 5.7 - Mammoth Treeaces
-> 8 피치에서 9 피치(하트 릿지, 데크)로 넘어갈 때, 픽스된 로프로 2번의 하강을 해야 한다.
* 비교적 Heart Ledge(하트 릿지)까지는 쉬운 편이며, 하트 릿지 이후부터 어려워진다.
-> El Cap Spire(엘켑 스파이어)까지도 어려운데, Monster 크랙(11a), 13c 루트가 나타난다.
두 피치 정도 올라왔을까?
저녁 9시가 넘어서는 기점부터 해가 빠르게 지기 시작하더니 깜깜한 어둠이 몰려왔다.
나는 헤드랜턴을 끄고, 아버지가 등반에 방해되지 않게 숨죽여 빌레이를 보았다.
(아래에서 쏘아 올린 불빛으로 선등자는 눈이 부실 수 있기 때문에 헤드랜턴을 꺼야 한다)
계속되는 야간 등반에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선등자의 모든 빌레이를 내가 봤기에 눈을 붙일 시간이 없었다.
피로가 점차 몰려오자 WY에게 선등자 빌레이를 봐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매 피치마다 꾸벅꾸벅 졸아서 그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졸음이 올수록 내 허벅지를 꼬집고, 목 스트레칭을 하며 열심히 등반 중인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고요함 속에 아버지의 해드랜턴 불빛만 반짝이며 보였다.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노즈 쪽에서 등반 중인 클라이머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때마다 힘이 났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신호인 동물 소리를 내어 간략하고 짧게, 조용하게 신호를 전달했다.
우리 팀은 그런 신호가 없어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며 전달했는데, 이내 무전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벽에 매달려 자는 팀들도 많고, 밤에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가급적 조용히 소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피곤하기는 해도 비 오듯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하다.
검은색 도화지에 빽빽하게 찍혀 있는 하얀 점들을 바라보다 보면,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한편으론,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싶으면서도 꿈속에서 등반하고 있는 것 같은 몽롱한 기분.
졸린 잠을 이겨내려 하다 보니, 더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어떻게 등반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나는 가급적 아버지가 설치해 준 확보물들을 잡지 않고 내 힘으로 올라가려고 애썼는데
그런 나를 어떻게 안 것인지, 아버지는 "소망아, 자유등반 말고 확보물 잡고 올라오면서 힘을 아껴"라고 말해주었다. 이왕 등반하는 거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 힘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지금부터 체력을 소진하는 건 아니다 싶어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할 만한데'라는 나의 느낌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이동하는 차의 불빛, 쏟아질 것 같은 별들만이 기억에 남는다.
9 피치 - Heart Ledge
새벽 3시에 하트 릿지에 도달하였다. 계획했던 일정보다는 늦게 도착했으며, 새벽은 꽤나 쌀쌀했다.
졸음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대신해 아버지는 미리 홀링 해둔 홀백에서 침낭과 재킷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두 겹의 재킷을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고자 바짝 붙어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중간에 추워서 여러 차례 깨기도 했지만, 등반의 피로도는 상당했다.
무거운 돌로 내 몸을 짓누르 듯이 힘겨웠고 계속해서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