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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Dec 07. 2023

우박을 만난 날

심술궂은 적란운

시험이 어려웠어요. 공부 안 하고 찍은 애들과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답도 밀려 쓰고 결정적으로 배점 높은 주관식을 틀렸어요. 공부할 맛이 안 나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시험 보기 전날은 자신만만했는데 본인이 자신 있어 하던 과목을 첫날 본다고 좋아하더니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전화로 속상한 마음을 내비친다. 이번엔 열심히 했는데 생각만큼 성적이 좋지 않으니 속상하단다. 괜찮다고 다음에 잘 보면 되니까 내일 볼 과목을 신경 써보자 다독였다.

열심히 했는데 모처럼의 노력에 점수가 화답하지 못했으니 낙담할 만하다. 잘 보지 않아도 성취욕을 느낄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했는데 마음이 쓰였다. 비가 올지 모르니 우산을 챙기라고 화제를 돌렸다.  천둥도 친다고 이미 챙겨 나왔단다.

 

전화를 끊고 바깥 날씨를 살핀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기세다. 성남과 광주의 지역적인 시간차가  있으니 여기는 아직 비가 오지 않는다  생각할 즈음 갑자기 천둥소리가 났다.


오후에 약간 내린다는 예보와 달리 어둑어둑해지더니  소나기처럼 내린다. 쉽게 그치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거리는 천둥 소리를 앞세운다. 관리실 앞 넥산에 다다닥 다다닥 소리가 리듬을 탄다. 비라고 하기엔 소리가 둔탁하다. 강한 소나기도 이런 소리가 나진 않는다. 요란하다는 단어를 연상시키게 되자. 바깥을 살피고픈 마음이 생긴다.

 

어 이게 뭐예요? 바닥이 점점이 하얀색으로 메꿔지기 시작하니 놀라움에 다들 소리를 지른다. 짖눈 개비도 아니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손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얼음 같은 알갱이가 만져진다. 혹시. 우박인가. 이거 우박 맞아요? 손바닥으로 만져본 우박은 비비탄 총알같았다.

 

우박이 이렇게 요란하게 떨어지는 건 처음 보네요. 차량을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왔다는 입주민은 지난번에 우박이 떨어져 자동차 유리가 깨지는 걸 봤다고 하셨다. 지금 내리는 우박은 알갱이가 작지만 천둥 치면서 내리는 게 심상치 않다고 걱정 담긴 목소리가 이어졌다.

 

바닥을 하얗게 뒤덮은 것의 정체가 우박이라니. 눈이 아니라 다행이라 하셨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 기상예보를  확인한다. 생경한 장면이라  마음도 풀어줄겸 우박이 바닥을 덮은 사진을 아이에게 찍어 보냈다. 기온이 낮지는 않아 다행히 얼어붙지 않겠다고 안심하던 차에 때마침 강한 비는 우박을 녹이기 시작했다.


우박이 생기는 이유를 검색해 본다. 구름 속은 기온이 낮아 얼음이 만들어지는데 높이에 따라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가 섞여있단다. 작은 얼음 알갱이는 물방울의 도움을 받아 더 큰 얼음으로 성장하고 무거워지면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떨어지는 얼음 알갱이는 눈이 되고 떨어지다 녹으면 비가 된다. 하지만 그런데 적란운과 같은 강한 상승기류를 만나면 우박이 되는 거란다.

 

적란운의 상승기류가 마음에 꽂힌다. 적란운 때문에 우박이 된다니. 이 녀석의 심술이 빚어낸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든 비든 계절에 맞게 평범하게 내리면 그만인데 가끔 우박처럼 뜻하지 않은 변수를 만나게 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운명의 장난인가 싶을 정도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우박 사진을 본 아이는 자기도 우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에 속상해 하는 열다섯 사춘기에게도 오늘은 우박이 떨어진 날이란다.


평범한 인생도 적란운의 기류를 탄다면 우박같은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우연히 만난 우박 때문에 삶의 한 단면을 생각해 본 날. 현실의 우박을 만나게 되면  심술궂은 적란운의 장난이라 생각해 보련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자신을 토닥여 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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