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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Jan 02. 2024

새해 데이트

책과의 동행

일출을 기다리던 그날.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를  주문처럼 외우니  계란 노른자 같은 말간 해가 쏘옥 고개 내밀었다.  산고의 고통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처럼  곱게  떠오른 해가 주변을 밝히는 정경은  경이롭다. 매일 뜨는 해중 오늘의 해를 으뜸으로 치켜주는 건 바라보는 이의 눈 속에 담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 아침 해맞이를 특별히 하진 않았으나 지인이 보내준 일출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충분한 수면 덕에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니  가뿐했다. 유예된  희망 리스트를  수첩에 적고  눈꺼풀을 배려해 주길 잘했다고  칭찬했다.  


새해 첫 끼니를 위해 쌀 포장을 뜯는다. 하나 20킬로의 무게감을 과소평가한 탓에  쌀통에 담기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진 쌀알이  상당했다.  웬만해선 흘리지 않는데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함이 아쉬웠다. 바닥에 떨어진 쌀알들을 남김없이  주워본다 반주 먹이 넘었다. 쌀들 사이에 섞여진  불순물을 빼내기 위해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굼 질했다. 몇 번의 동작을 반복하니  밥이 될 재료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됐다.


쌀 포대에서 해방되며 쌀통 속에 안착되지 못한 쌀알들은  불안감을 느꼈을거다.  알뜰하게 주워 담은 주인장의 손길로 제일 먼저 한 해의 첫 밥알이 될 행운을 갖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침에 밥을 잘 먹지 않지만  오늘은  반해 주먹만큼의 쌀알을 위 속에 넣어야지 생각한다.  잡곡을 준비하지 못해 흰쌀밥을  지어주니 아이가 좋아했다. 흰쌀밥에 들어간 당분을 각설탕의 양에 견주어 얘기했던 프로그램을 본 적 있어 여간해선  흰밥을 짓지 않는다. 오랜만에 흰쌀밥이 어제 뭉치던 눈덩이 같다고 좋아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눈처럼 하얀  밥을 여러 번 씹어서  삼켰다.


든든한 속을  달래고  새해맞이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작년과 같은 곳. 새해를 즐기기 위해  택한 이곳의 내음이 좋다. 책을 고르며 희망을 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기득이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

"책 읽을 결심을 위해 모여들어서 그렇지 "


부녀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곳은 학업 시기를 놓쳐  천일 독서로 독학의 길을 걸었던 창립자가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 그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통해 삶의 방향과 꿈을 키우는 곳이란  얘기를 딸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


대형서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한곳에 오래서 서 책을 읽거나 꺼내 읽은 책을 사지 않는다 해도

눈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서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사유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해마다 연초에  루틴처럼 자리 잡은 서점 데이트를 오늘은 혼자 했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았다.  희망을 품게 한 일출 사진과  하얀 쌀밥이 준  든든함이  있었기 때문일까.


희망을 품은 나만의 서점 데이트는 올 한 해도 힘차게 살아가자고  매일의 마침표를  열심히 찍어 선을  만들어 가자는 결심을  다지게 했다.

올해는 서두르지 말고  멈추지도 말고 책을 벗하자 마음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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