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를 또 만났다. 앞머리가 가지런한 숱 많은 아이다. 자그마한 몸으로 아장아장 걸으니 시선을 붙잡는다. 군밤 모자라 불리는 귀여운 모자를 썼다. '엄마 마중' 그림책에서 막 나온 듯한 비주얼. 앙증맞고 깜찍한 그 입에서 종알거리듯 새어 나오는 말은 입꼬리 근육을 올리기에 충분하다.
통통 튀는 목소리에 귀가 반응했다. 발음이 완성되지 않았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점에 있는 아이다. 활짝 피지 않은 말꽃을 품었달까. 꽃을 쫓는 나비처럼 아이의 뒤를 쫒았다.
그림책이 꽂힌 책장을 익숙하게 찾는다. 그 공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꺼낼 때도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살포시 꺼낸다. 한 권을 꺼내면 자리로 돌아가 의자 위에 놓고 서서 몇 장을 펼치곤 엄마를 찾는다. 읽어달라는 의미다. 힘들면 유모차에 올라 빨대컵에 음료수를 마시고 또 다시 책장을 돈다.
눈에 삼삼했는데 한 달 만에 또 만났다. 오늘은 발목까지 오는 기다란 수면 잠옷을 입고 왔다. 처음엔 유모차에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앳된 목소리로 나직하게 읽어주는 책에 내 귀도 쫑긋 세워졌다.
어른들 책장이 있는 곳에도 테이블이 있지만 매너 불통 아저씨 덕에 자리를 옮겼다. 옆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분이셨다. 새해를 맞아 책을 읽으러 왔다고 연신 자랑하는 긴 통화 문제지만 책을 꺼내 쌓아놓는 행동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잡음을 피해 아이들 책 코너 쪽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지만 작은 의자에 어울리지 않은 엉덩이를 포개어 몰입의 순간을 맞이하던 터다. 그런데 선물같은 아이를 또 보게 됐다. 오감을 자극했던 그 꼬마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온 우주를 안은 듯하다. 내게도 저런 표정이 있었다며 잊었던 기억이 말을 건다. 밤마다 동생이 잠들면 엄마를 독차지하고픈 욕심이었을까. 책을 꺼내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한 권 두 권 읽은 책들을 옆에다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 또 읽어달라 졸랐다.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줘야 했다. 눈꺼풀이 내려오는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책장 앞에서 엄마를 독차지하는 시간을 즐겼고 도서관 차가 오면 그림책을 한 아름 빌려 집에 오는 걸 좋아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얘가 쌌잖아. 나는 아는데 내가 알려줄까 "
엄마가 읽어주는 책 내용에 아이가 반응한다. 똥'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아침마다 해가 떴나, 안 떴나를 보기 위해 땅 위로 얼굴을 쑥 내미는 두더지의 머리 위에 똥이 놓여서 그 똥 주인을 찾는 얘기다. '철퍼덕!''쫘르륵!''철썩!'등의 재미지는 의성어가 말의 재미에 빠져들게 한다. 말문 튀기 딱 좋은 책이다.
반복되는 어구에 깔깔거리던 아이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잡히지 않는 추억 속 한 페이지다. 엄마가 최고일 때 아닌가. 엄마 좋아를 매일 아침 얘기해 주던 아이가 지금은 키도 커지고 목소리도 굵어진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
옆자리에 앉게 된 아기 엄마에게 물었다. "아이가 말을 엄청 잘하는데 36개월 정도 됐어요?"
"이번 달에 32개월이에요.책에서 재미있는 말을 배우면 계속 따라해요. 말문이 터져서 하루 종일 종알종알이에요 "
물어봐 주길 기다린 것처럼 꼬마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책을 너무 좋아하니 퇴근 후 집에 오면 서점 나들이는 거르지 않는다고 본인도 책을 좋아하니 놀이터보다 훨씬 좋다는 말을 한다. 엄마의 목소리도 앳되어 애가 애를 키우는 듯한 마음이 들 정도다. 모녀의 서점 데이트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나의 삼십 대를 떠올리며 그 시간을 함께한 나의 꼬마를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훌쩍 커버려 낯선 향기를 내뿜지만 내가 찾던 아이는 내 마음에 영원히 살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날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노래처럼 그때는 힘겨웠지만 지금은 그리운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앨범을 갖고 있기에 내 하루가 소중함을 또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