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시오랑의 강렬한 문장들은 세상에 가닿아 아포리즘이 되었다. 미처 닿지 못한 글은 버려졌고 남은 글은 염세와 고독이 되었다. 아포리즘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을 만큼 그의 짤막한 단상은 인간과 세상 사이의 통찰을 보여 준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거처를 프랑스로 옮긴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자신의 모국어를 등지고 불어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간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찬 그의 작업은 추동하는 세계 안에 가리워진 모순을 비장한 문체로 발가벗기는 일이었다. 뒤늦게 익힌 불어로 써 내려간 책들은 그에게 영예를 안겨줬지만, 모든 상을 마다하고 자신의 쓸쓸한 다락방에서 평생을 은둔한 채 숨어 살았다. 궁핍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다 간 그는 마흔이 다 되도록 소르본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을 견디다 84세의 나이로 죽는다.
이 지독한 염세주의자의 절절한 기록들은 서른네 권의 수첩으로 남았고 그가 떠난 단칸방을 살피던 평론가 시몬 부에가 서랍 속에서 찾아낸 서른네 권의 수첩을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수첩 1957-1972는 뜻하지 않게 시오랑의 유작으로 남겨졌다. 살아있는 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자살을 삶의 보물 삼아 하루하루를 견디며 써 내려간 묵시록적 기록들. 젊은 시절 나치를 찬양했고 문인으로서도 끝내 시대와 화해하지 못한 채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지만, 뒤늦게 익힌 타국의 언어로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전인미답의 길을 걸었던 이 걸출한 문인의 염세적 아포리즘은 외려 삶을 더 사무치게 만든다.
고작 200자만으로도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파헤치는 그의 문장들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이따금 그의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가 유산으로 남긴 아포리즘은 그의 생전에 삶이 얼마나 서글프고 호젓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지만, 이 지독한 염세주의자는 뜻밖에도 자신의 삶을 사랑했노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