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마지막 이야기
사장부부는 내가 일한 첫날부터 세월에 공짜로 업데이트된 나이를 무기 삼아 온갖 갑질을 일삼았다. 오래전에 돈으로 쉽게 샀다는 영주권으로 여러 사업을 거쳤고 현재 빵집을 운영하는 그들은, 다른 한인업체 사장들이 뉴질랜드에서 일구어 놓았다는 위상에 자신들도 한몫했다며 조금도 사실로 여겨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거들먹거렸다. 어느 날은 그들의 불합리한 처사에 내 권리를 주장할 때면 한인 사회가 좁다고 다른 사업장에서도 이러면 당장에 잘릴 일이라며 침 튀기며 협박하기 일쑤였다.
"곧 애들 여름방학하지? 이번에도 4시간 나오면서 애들 홀리데이 캠프 보내려고? 그러느니 그냥 개학하면 나와~ 내가 그때 연락할게, 아니 1월 말에 연락 줄게"
곧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내 아이들을 돈 많이 드는 홀리데이 프로그램에 보내지 말고 방학 동안에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것. 안 그래도 오늘 관두겠다 말하려던 찰나, 그들이 먼저 나에게 '쉼'을 권했다. 유급휴가도 아닌 무급휴가이면서 생색을 내듯 쉬게 해 주겠다는 뉘앙스였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이상하게 친절하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아이들이 개학을 하는 전 주에 연락을 주겠다 한다.
어차피 관둘 일, 그들의 선심이 낯설고 꺼림칙하지만 알겠다 했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됐고 뉴질랜드의 뜨거운 태양을 즐기며 우리는 매일 집 앞 비치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기억하시려나요? 나 단발머리 언니에요."
"어머! 언니! 그럼요! 제가 언니를 어떻게 잊어요! 잘 지내셔요? 안 그래도 잘 계신지 매일 너무 궁금했었어요. 먼저 연락 주시고 감사해요"
"제 멋대로 연락 끊고 다시 이렇게 제 멋대로 연락을 해서 미안해요"
"무슨 말씀이세요. 충분히 이해해요. 이렇게 목소리 들으니 너무 좋아요"
"그날 이후 잠시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번갈아 다녀오느라 나도 바쁘고 정신없어 이제야 연락했네요"
"언니 저는 지금 아이들 방학이라 비치에 나와있어요"
"오? 빵집 관뒀어요?"
"잘린 것 같아요. 아이들 방학 전에 묻더라고요. 비싼 홀리데이캠프 보내지 말고 방학 끝날 때까지 쉬는 게 어떻겠냐고요, 언니도 잘 아시죠? 먼저 남을 배려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참 잘됐네요. 아니, 사실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네? 무슨 얘기요?"
단발머리 언니는 나보다 세 시간 정도 일찍 나와 빵집의 밑재료들을 준비했었다. 나보다 먼저 그녀는 빵집의 위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일을 관두며 다시는 빵집이 있는 그 동네 방향으로도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단다. 사장부부의 지독한 갑질을 당하고 있을 나와 다른 직원들이 걱정됐고 40년 가까이 뉴질랜드에서 살며 처음으로 오지랖을 부려본다는 생각에 그간의 모욕을 되갚아 줄 방법을 찾으려 의학과 법 공부를 위해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자녀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했다. 단발머리 언니는 일단 비위생과 관련된 신고와 노동법 위반에 대한 신고 절차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나에게 알렸다. 나머지 두 가지가 더 있으니 그것에 대한 증언에 도움이 필요할 때 본인이 도움을 청해도 되겠느냐 물었다. 이미 빵집을 그만둔 마당에 단발머리 언니의 부름이라면 언제든 힘을 보태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단발머리 언니는 굳이 안 겪어도 될 인생경험을 호되게 맞은 나를 안타까워했다. 더불어 뉴질랜드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 누구에게 묻지 못하겠거든 교민 웹사이트를 찾아보는 방법도 알려줬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 주변에 아는 지인이 없으면 외로울 테니 당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 한 두 명쯤 만들어 두는 게 인생 살며 큰 힘이 될 것이란 말도 해주었다. 빵집을 관둔 후로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극복하는데 그동안 자신의 모든 기력을 다 쓴 것 같아 나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했다. 나는 단발머리 언니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녀가 "우리 한번 만나요"란 말도 선뜻 꺼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좋은 어른인 단발머리 언니의 아픔이 안타깝다. 더불어 그녀가 오지랖이라 칭했지만 직접 행하는 용기에 힘을 보태고도 싶어 그간에 차근히 모아두었던 여러 가지 들을 정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름 내내 바다에 있던 우리들의 두 번째 여름은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빵집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졌지만 문득 사모님은 정말 아이들 개학 전 주에 연락을 줄까 하는 호기심도 생겨 집에 들어가는 길에 빵집이 있는 길로 향했다.
당연히 그들은 빵집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안해 나에게 선심 쓰듯 아이들 방학 때 쉼을 권하고, 불편한 아르바이트생을 조용히 내보낼 방법으로 방학이 끝나도 연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다. 하지만 빵집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줄은 몰랐다. 아니 이미 사장부부는 계획한 것 일 수 있겠다. 단발머리 언니의 신고로 사라진 것인지, 사장부부의 계획된 폐업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의 얼굴이 자꾸 생각난다.
생전 처음 본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방학이 끝나면 보자던 그 얼굴들.
숨기는 게 많은 검은 속내.
잘 지내시죠?
보고 싶진 않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영업을 하시더군요.
그곳은 부디 청결하기 바랍니다.
다시는 신고할 일이 없게 말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제야 저는 첫 번째 brunch book. [엄마도 이민은 처음이라서] 이야기를 후회 없이 마무리 지은 것 같아 얼음 동동 사이다 한잔을 원샷한 것처럼 시원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이라고, 그동안 스포를 방지하고자 댓글에도 속시원히 답하지 못하고 빼두었던 일화입니다. 사실, 단발머리 언니의 큰 용기에 힘을 보탠 일이고 어찌 보면 그녀의 상처도 담겨있기에 그녀가 제 개인적인 글을 탐탁지 않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브런치북에 덧붙이지 않았고, 발행하지 않고 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가 이민생활 중에 겪고 행한 일이기에 몇 날 며칠 고민을 거듭하다 발행해 봅니다.
시원한 사이다 결말을 기대하셨던 독자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릴 수는 있으나 이미 지나온, 바꿀 수 없는 과거인걸요. 갑질하는 사장부부에 화를 참지 않고 확 들이받고 빵집에 깽판을 치고 위생관리자와 함께 암행어사처럼 갑자기 들이닥쳤어야 속이 좀 풀렸을까요? ^^
사이다는 그냥 꿀꺽꿀꺽 마셔요 우리.
그동안 제 이야기에 함께 공감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광분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뉴질랜드 속 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