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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 Apr 11. 2023

팁? 0% 줄래요.

캐나다의 팁 문화와 서버의 부담감

나의 두 번째 직장, 바로 스시집이다. 주방에는 중국인 사장 포함 3명, 홀은 서버 한 명으로 이뤄진 막 개업한 가게였다. 중국인, 멕시코인, 한국인이 일하는 일식집은 홍철 없는 홍철팀 같은 느낌이었다. 캐나다는 다문화 국가라 이런 식으로 퓨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참고로 캐나다는 연어가 정말 맛있다. 여기 식당도 연어 요리가 맛있어 보여 자주 입맛을 다시곤 했다. 참고로 손님이 없을 때가 정말 많았고, 따로 서버에게 식사를 제공하진 않았다. 그만큼 작은 개인 가게였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차에 맡은 서버직이라 꽤 떨렸었다. 디시워셔는 말 그대로 주방 뒤에서 설거지를 하면 되지만, 서버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직접 제공해야 한다. 그것도 영어로.

하지만 많이들 서버를 원하는데 이는 '팁(tip) 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식당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지만, 캐나다에서는 필수 문화이다.


팁은 보통 많게는 20%에서 적게는 10%까지 있다. 받은 서비스가 최고로 만족한다 할 때는 20%, 좋았다는 15%, 나쁘지 않다는 10% 정도이다. 어떤 가게의 경우 테이크아웃점에서도 팁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보통 10~15%를 준다. 일반 서버가 서빙을 하는 가게에서는 기본 15% 이상은 주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이것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부담스럽다. 10000원짜리 음식을 시킬 때 기본 2000원이 추가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캐나다는 외식비가 비싸 결론적으로 외식 한 번 하면 인당 3만 원 정도는 금방 빠져나간다.


이 같은 팁문화는 '서버'일 경우, 아주 이득이다. 보통 가게는 팁을 나누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이는 가게마다 다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라멘집에서는 서버가 본인팁 100%를 다 가져가고, 스시집에서는 주방직원이랑 1/N 했었다. 대신 라멘집 서버들은 기본적으로 영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그만한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내가 서버로 일한 스시집은 갓 개업한 작은 가게에 내가 캐나다에 온 지 1달 차라 언어적 장벽으로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힘들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더욱 귀를 세우고 집중해야 했다.


또, 손님 없는 가게에 사장과 일한 적 있는가. 라멘집에서는 사장이 없어서 몰랐는데 하루종일 사장이랑 같이 있는 것도 꽤 고달픈 일이었다.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민망하고, 은밀히 나를 감시하는 눈빛에 휴대전화 만지는 것도 부담스러워 시간 확인도 잘 못했었다. 




막 개업한 가게라 나는 매일 밖에 나가 호객행위를 했었다. 작게 잘린 타코야끼 위에 이쑤시개를 꽂아 가게 앞을 돌아다니며 하나만 잡숴보라 길가는 사람을 붙잡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기타를 맨 젊은 남성들이 타코야끼를 하나 집어먹고는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호객행위 성공에 신난 나는 메뉴판을 주며 주문을 받았는데 그때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이상했다. 내가 평소에 듣던 영어톤이 아니었다. 놀란 마음 숨기며 다시 물어 주문을 받았고 그 과정이 청년들은 살짝 성가셨던 모양이다. 

그 둘은 호주에서 온 사람들이었으며 살면서 호주 악센트를 처음 들어본 나는 그야말로 실수투성이였다. 애피타이저인 미소 된장국이 나왔을 때, "Enjoy your meal."이라 말했고 호주 청년들은 자기들끼리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비웃는다는 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영어를 비웃는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급속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긴장하면 영어는 더 안 들리는 법..


결국 마지막에 "팁은 몇 퍼센트로 해드릴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zero(0%)."라고 말한 호주 청년. 그 팀 뒤에 한동안 영어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기타 매고 있던데 그날 공연은 망했길 소심하게 빌어본다.


0%를 받은 날이 있으면 20%를 받은 날도 있었다. 아주 친절한 여자 남자 커플이었는데, 특히 여자분이 매우 매우 친절했다. 주문할 때 메뉴를 천천히 말해주면서 나에게 농담도 곧잘 던졌다.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결제할 때 남자친구에게 "설마 20% 안 주는 건 아니지?"라는 여자분의 말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20%를 받았다는 사실! 날숨에 행복이, 들숨엔 건강이 항상 그들에게 함께하길 먼 나라에서 바라고 있다.


팁은 0~20%까지 받았지만, 막상 내가 여기서 일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 2주 정도. 

나는 밸런타인데이 다음 날 잘렸다. 밸런타인데이 때 모처럼의 걸스나잇에 신난 나, 사장에게 오늘은 일이 있어 빨리 가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했는데.. 마감 5분 전에 친구 15명을 데려온다.

결국 주문 다 받고 이젠 정말 가야 한다며 결국 그 손님들을 끝까지 케어하지 못한 날이었다. 책임감 없는 행동은 맞지만,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과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15명의 손님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그날 그렇게 퇴근했었다. 

그런 뒤 다음날 아침,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그만 나와도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속상하긴 했지만, 내가 뿌린 데로 거둔 거라 생각해서 별 미련은 없다. 그 가게는 그 뒤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그 집 연어 참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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