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계 Apr 11. 2023

윤선생도 안 해 봤는데 영어로 전화주문받기.

캐나다 일자리 추천

내가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한인 스시집이었다. 노년의 사장님 두 분이 하는 초밥집인데, 동네 장사가 쏠쏠하게 잘 되는 편이었다. 그때 한창 코로나가 시작할 무렵이라 대부분의 주문은 togo(포장)로 받았고 이 말은 무엇이냐. 대부분 전화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사람과 만나서 하는 주문은 비교적 쉽다. 상대방이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켜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모르면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다. 고갯짓, 표정에서 알 수 있는 비언어적 표현도 내가 주문을 받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전화 주문? 오로지 영어 실력과 눈치로만 해결해야 한다. 토익 리스닝도 안 해봤는데 바로 실전에 던져지는 느낌이란.. 게다가 한국인 주인 사장님은 조금 엄격한 편이었다. 코로나로 매출이 줄어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자꾸 나에게 본인의 경험담을 말해주며 겁을 주셨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일하던 알바생이 전화주문 할 때 10개를 100개로 잘 못 알아들어 100개 양의 스시가 나간 적이 있다. 그걸 다 알바생이 메꿨다..라는 그런 괴담(?)을 자랑하듯 말하며 나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협박하셨다. 그 눈빛에서 아, 진짜 그 알바생이 다 메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했다(참고로 80만 원 정도). 

전화 주문은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도 쉽지는 않았다. 우선 다인종 국가답게 발음이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에겐 내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 듯, 초집중하고 질문에 질문을 던져야 겨우 주문이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홀 주문과 전화주문은 각각 다른 장단점이 있다. 먼저 홀주문은 주문받기는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메뉴판을 통해 주문을 받을 수 있으며 표정을 확인하기 쉽다. 대신 계속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중간중간 부족한 것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물이 떨어지면 바로 채워줘야 하며 가끔 스몰토크를 거는 사람들의 니즈도 바로바로 파악해야 한다. 

전화주문은 주문 자체는 비대면이라 어렵다. 주문이 잘못 나가면 안 되니 계속 집중해서 듣고 더블체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포장이라 셰프가 만들어준 음식을 포장만 하면 된다. 그 뒤에 손님이 찾으러 오면 맞는 음식인지만 확인하고 바로 보내면 끝. 뒤에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다.


여기 초밥도 맛있어서 가끔 포장해서 먹곤 했다(물론 내 돈으로). 일 자체는 내가 지금까지 일한 곳 중 가장 수월했는데 코로나로 경영이 힘들어지면서 나포함 대부분의 알바생이 잘리게 되었다. 물론 나도 그 당시에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 중이라 별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떠났었다. 그 집 초밥도 참 맛있었는데.. 주인 부부 얼굴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집 초밥이 가끔 생각난다.

작가의 이전글 팁? 0% 줄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